서울 근교의 산을 등산하려면 가능하면 공휴일이나 토요일은 피해야 한다. 한마디로 너무 붐비기 때문이다. 도시인들에게 등산은 가장 적은 비용으로 즐기며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등산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대도시 부근의 산들은 사람들로 몸살을 앓는다.

예전에는 그래도 토요일은 등산객이 많지 않았었다, 그러나 주5일 근무제도가 정착되면서 지금은 토요일도 등산객이 넘쳐난다. 그렇잖아도 북적거리는 도시의 삶에 지쳐있는데 와글거리는 산행이라니, 그래서 가능하면 피하려고 했던 지난 토요일 검단산을 올랐다. 같이 가는 동료들이 굳이 토요일 등산을 원하여 할 수 없이 토요등산에 참가한 것이다.

검단산은 서울에서 양평으로 가는 길에 팔당댐 오른편에 불쑥 솟아오른 산이다. 왼편에는 예빈산과 예봉산, 오른편에 검단산이 있어 한강이라는 협곡을 만들어 낸 산이기도 하다.

검단산 등산로는 대체로 하남시 창우동 안창모루에서 호국사와 유길준 묘로 이어지는 코스와 산곡초등학교 쪽에서 오르는 코스를 많이 이용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대중교통이용이 불편하여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지 않는 아래배알미에서 오르는 코스를 택하기로 하였다.

우리 일행 여섯 명은 9인승 승합차를 팔당댐 조금 못미처 아래배알미 주차장에 주차시키고 등산길에 올랐다. 날씨는 바람도 강하고 싸늘했지만 가파른 산을 등산하기에는 땀을 많이 흘리지 않아 오히려 좋은 점도 있었다.

산의 북쪽 길이어서 등산로 옆 계곡은 올겨울 유별나게 적게 내린 눈이 녹아, 조금씩 흘러내리는 물이 그대로 두껍게 얼어붙어 있었다. 특이한 것은 상당히 높은 곳까지 무덤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었다. 산은 평지에서 불쑥 솟아오른 산이어서 경사가 상당히 심한 편인데 등산로 초입부터 보이던 무덤들은 산 중턱까지 올라와 있었다.

어느 전망 좋은 무덤 옆에는 제사용으로 썼던 과일이 그대로 놓여 있어 저녁이 되면 산짐승의 좋은 먹이가 될 것 같았다. 가파른 산길은 올라 갈수록 점점 경사가 심해져 초보 등산객들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코스일 것 같다. 쩔쩔매는 동료 한 명을 밀고 끌며 한 시간 넘게 허위허위 올라가니 능선에 다다랐다.

능선에는 안창모루 쪽에서 올라온 등산객들이 많아 벌써 길이 붐비고 있었다. 뒤돌아보니 맞은편에는 예빈산과 예봉산이 한강 협곡을 사이에 두고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거인들이 마주보고 서 있는 것 같다.

팔당댐 위로는 한강의 넓은 물줄기가 펼쳐져 있고, 해발 1000m가 넘는 양평의 용문산과 백운봉 능선이 산맥처럼 아스라이 뻗어 내린 것이 오히려 검단산 보다 낮아 보인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지는 두물머리 좌우편으로는 여전히 얼어붙은 한강이 하얗게 뻗어 있어 겨울강의 정취가 차가움으로 다가온다.

능선길을 따라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아주 쉬운 코스다, 능선에서 자란 몇 그루의 멋있는 소나무를 감상하면서 멀고 가까운 경치에 취할 수 있는 여유로운 길이다. 사람들이 많아 좀 불편하긴 했지만 약간씩 오르내리며 걷노라니 가끔씩 휘몰아치는 차가운 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듯 추워져 옷깃을 여미게 한다. 추위를 떨쳐버리려고 부지런히 걸어 북능암석전망대에 올라서니 사방의 시야가 망망대해처럼 시원하다.

조금 더 걸어가니 검단산 정상이다. 정상은 제법 넓은 공터가 있어 등산객 백여 명은 넉넉히 수용하고도 남을 것 같다. 광장 한쪽에는 정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조망안내도가 비치되어 있었다.

굽이굽이 한강은 말할 것도 없고 날씨가 맑은 날은 서울의 도봉산 북한산과 남쪽의 청계산도 보인다고 한다. 빙 둘러보니 검단산은 멀고 가까운 조망이 정말 좋은 산이다. 발아래 하남시가지가 가지런하고 남한산성 쪽으로 뻗어나간 산줄기들이 웅장해 보인다. 동쪽으로는 고추봉(566m)과 용마산(589m)이 뻗어내려 종주 등산로가 이어지고 있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주변 경관을 감상하노라니 북쪽을 바라보는 곳에 사람들이 몰려 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한 등산객이 손바닥 위에 땅콩을 한 줌 펴들고 바로 앞의 나무에 앉아있는 새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참새보다 약간 더 크고 색깔이 고운 날개와 깃털, 눈이 예쁜 새 몇 마리가 나무 위에서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탐색을 하다가 한 마리가 잽싸게 날아와 손바닥의 땅콩을 물고 날아갔다. 곧 이어 눈치를 보던 다른 새들도 한 마리씩 날아와 땅콩을 물고 날아가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특별히 그 사람하고만 친한 새들인가 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나도 땅콩 몇 개를 손바닥위에 펼쳐들고 새들에게 내밀었더니 예외 없이 새들이 날아와 물고 가는 것이 아닌가. 새들은 사람들이 손바닥 위에 얹어 내어주는 먹이에 익숙해 있는 것 같았다.

누가 먼저 시작했을까. 등산객이 많은 검단산에 사는 한 종류의 이름 모를 새들이 겨울 추위 속에 먹을 것이 부족하여 굶주리다가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에 맛을 들인 것이리라. 사람들과 야생동물들의 가까운 만남이 참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오지만 걱정도 된다.

설마 그런 일이야 없겠지만 혹시 어느 불량한 사람이 있어 사람들을 믿고 먹이를 받아먹는 새들을 해치기라도 할까봐서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귀여운 새들과의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며 하산길에 올랐다.

정상을 떠나며 하산은 어떤 코스를 택할까 잠시 의논을 하였다. 나는 역사의 격동기에 개혁을 꿈꿨던 한 지식인의 묘가 있는 창우동 코스를 택하고 싶었다. 유길준(1856-1914)은 조선조 말 철종 임금 때에 한양 땅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일본 유학을 하고 일본으로 망명하기도 하여 친일파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약소국 조선을 둘러싼 주변 열강들의 각축과 서세동점(西勢東漸)이라는 위기의식에 빠져있던 당시 역사적 현실에서 정치개혁뿐만 아니라 경제와 교육을 통한 국가건설을 추구한 그의 사상과 행동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는 갑오개혁 때 외무참의를 역임하였고 김홍집 내각에서는 내무협찬으로 최익현 선생을 유폐하는 우(愚)를 범하기도 하였다. 아관파천 때는 일본으로 망명하여 친일파라는 오해의 소지를 제공하기도 하였지만, 치욕적인 정미 7조약을 반대하였고, 대한제국이 국권을 잃은 후 일본정부가 내려준 남작이라는 귀족 대우를 거절한 양심과 기개가 있는 정치인이자 학자이기도 한 것이다.

그의 저서로는 미국과 유럽지역 순방 후 귀국하여 개화파의 인물로 지목되어 구금되었던 1885년부터 시작하여 10년 동안 집필한 “서유견문록”이 유명하지만 “대한문전” “구당시초” “노동야학독본”과 많은 저서를 남긴 당대의 지식인이자 저술가다.

그의 무덤이 있는 창우동 쪽 하산길은 우리일행이 주차해 놓은 아래배알미 쪽에서는 상당히 먼 거리여서 아쉬움을 접고 일행들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올라갔던 길을 되짚어 내려가는 산행은 참 재미없는 일이다.

독자 여러분이 만일 검단산 등산을 하게 되면 창우동이나 산곡초등학교 쪽에서 시작하여 정상을 넘어 고추봉과 용마산을 종주하는 코스를 권하고 싶다. 날씨 좋은날 건강하고 등산에 어느 정도 자신 있는 사람들이라면 말이다.

 

/홍익교회 장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