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으로의 정권교체가 확정되고, 2008년 1월 3일이었습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업무보고 때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 한마디 했는데 순식간에 검색어 1위로 떠올랐습니다. 바로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물론 김창호 처장의 그 말은 한나라당 정부에 코드를 맞추려는 얄팍한 공무원 사회를 풍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의 원저자는 따로 있었습니다.

 

미국의 행정학자 랠프 험멜(Ralph P. Hummel)입니다. 그는 1977년 ‘관료적 경험’에서 이 말을 썼습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공무원의 속성은 매한가지였습니다. 이상합니다. 공무원은 왜 정치권력 앞에서 영혼을 탈착해야 하지요? 대한민국 헌법 7조에 보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데요. 그러나 그것은 법조문일 뿐입니다. 공무원은 정치권력에 철저히 복속돼 있습니다. 공

무원의 유일한 로망인 ‘승진’에 목매 있기 때문입니다.

 

승진 누가 시켜줍니까? 그래서 공무원은 기표소 안에서만 정치적 입장을 드러

내야 합니다. 게다가 2009년 이명박 정부 시기에 개정된 공무원 복무규정(1장 3조)에 따르면 “단명·연명으로 또는 단체의 명의를 사용하여 국가의 정책을 반대하거나 국가 정책의 수립·집행을 방해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돼 있고, 지금도 개정됨이 없으니 공직자의 몸과 마음에 족쇄가 되고 있습니다. 법으로도 공무원은 영혼을 거세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10·29 참사는 경찰과 소방 등 국가 치안의 수장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 지방자치단체장인 서울시장 오세훈, 용산구청장 박희영의 책임입니다. 물론 이 책임자들 머리 위에 ‘총책임자’인 대통령 윤석열이 있고요. 이들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당연히 하부의 담당자 문책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은 서울 이태원 일대에서 벌어진 10·29 참사의 책임을 실무자에 떠넘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권한을 명문화하고 계급 따라 권한을 나누는 관료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료제에서는 중간단계의 공무원이 임의로 책임을 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대통령 윤석열 씨는 “상황에 대한 관리가 안 돼서 대규모 사고가 났다고 하면 그것은 경찰 소관”이라며 “이걸 자꾸 섞지 말라”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책임을 전가 당한 한 사람인 용산경찰서 경비계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이 사태에 즈음한 한 경찰 공무원의 내부망 발언을 옮겨봅니다. “우리 수뇌부는 왜 제대로 말을 못 하냐. 대통령 경호 경비에 치중하느라 이태원 지역 축제에 신경을 잘 쓰지 못했다고. 그리고 안전사고 책임자는 서울시장과 용산구청장이라고…”

 

박원순 서울시장 당시 서울시 인사기획비서관이던 민경국 씨는 “인명 사고가 나면, 박 시장은 그 규모에 관계없이 다른 일정 중이라도 서둘러 현장에 방문하셨다”라며 “그런데 그러한 수고로움은 (...) 구성원들에게, 행동의 방향이자,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민의 안전과 보호, 이것은 가장 근본적인 공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안전은 근본적인 공익입니다. 마치 권력에 있어서 공기와도 같습니다.

 

반면 대통령 윤석열 씨는 지난 6월, 원전 부품업체를 찾아가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박원순이 떠나고 윤석열이 세도를 누리는 시대의 안전은 관료적 사고이자 버려야 할 가치가 됐고, 이는 공무원에게 행동의 방향이자 판단의 기준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10·29 참사는 예견된 것일 수 있었겠습니다.

 

선거로 권력을 얻는 정무직과 달리, 일반 공직자는 한 번 ‘문책의 표적’이 되면 수년 또는 수십 년간 수고한 노력이 물거품 됩니다. 회생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가족을 등지고 개인의 모든 욕망도 부정한 채 충성해 온 모든 공로는 부정당합니다. 그래서 책임지는 일 절대 안 하려고 하지요. 복지부동(伏地不動)도 다 그들만의 사는 법입니다. 감사원 특별감사에 왜 모든 공직자가 벌벌 떨겠습니까?

 

‘당해본 사람들’ 말로는 끔찍하고무서운 공포와 좌절의 정도는 죽음보다 두렵지 않을 정도라고 합니다. 오히려 ‘죽으면 그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라고 생각하기 에 극단적 선택은 어려운 결정이 아닐 것이라고 합니다. 공직자 여러분에게 한마디 합니다. 설령 허물이 있어도 극단적 선택은 마세요.

 

책임은 명실상부하게 최고 권력에 있잖아요. 그들이 희생양이 필요해 여러분을 사냥하는 건데, 맞서 시시비비를 가려야지요. 왜 꼬리 자르기가 목표인 그들만 좋게 합니까? 살아서 불명예 를 씻읍시다. 지난 정부 때는 이러실 여러분이 아니었잖아요.

 

/‘쩌널리즘’ 발행인, 평화나무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