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17-28) 
 
1.
목사님이 새로 등록한 성도의 집으로 심방을 갔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 직장 상사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등록한 성도가 자신의 상사에 대해 큰 불만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직장 생활이 고통스럽다고 하소연하였습니다. 이에 이야기를 듣던 목사님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그럼 높은 데 계신 분께 아뢰시지요.” 그러자 성도가 답합니다. “그 선에서는 해결되기 어렵습니다.”
 
이에 목사님이 다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그 보다 더 높으신 분께 말씀드리세요.” “이사(理事)라도 이런 일에 관여하기는 어렵습니다.”
 
목사님은 답답하신 듯 목소리에 힘을 주고 아예 손을 뻗쳐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아니! 더 높이 계신 분 말입니다.” “아 예, 사장님은 이 일을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그런 일을 가지고 사장님에게까지 말씀을 드릴 수가 있습니까?”
 
목사님은 정말 답답하신 듯 억양을 높여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그 분 말고 아주 높이 계신 분 말입니다.” 그러자 그 성도가 그러더랍니다. “에이 목사님도, 그런 일을 어떻게 회장님에게까지 이야기 합니까?”
 
뭔가 핀트가 맞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끼리의 대화인데도 뭔가 잘 맞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삶의 중심, 마음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의 대화엔 신앙인답게 그 마음 한가운데 신앙심이 자리 잡고, 그 신앙심에 근거하여 대화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왕십리중앙교회 성도들의 대화엔 늘 예수님이 자리 잡고, 믿음과 소망, 사랑에 관한 대화가 풍성하기를 바랍니다.
 
2.
오늘 본문에도 뭔가 핀트가 맞지 않는 대화가 나옵니다. 대화는 하는데, 뭔가 통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그런데 그 예루살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수님은 이미 다 아십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 일에 살아나리라.”
 
당신이 받을 배신, 그리고 모욕, 채찍질, 죽음, 심지어 부활까지 예수님은 이미 다 아십니다. 그러니까 그 길,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사실 피하고픈 길입니다. 대의명분은 분명하지만, 그러나 고통의 길이기에 예수님은 그 길을 피하고픈 심정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런 수모를 당하고, 고통을 당할 것임을 말씀하시면서도 제자들에게는 그 어떤 단도리(단속)도 하지 않으십니다. 조심해라, 정신 바짝 차려라, 때가 되면 다 도망가거라, 나를 잊지 마라 ... 아무런 대비책을 말씀하시지 않으십니다. 그저 앞에 그런 일이 있을 것이다만 말씀하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당신부터 피하고픈 심정인데, 무슨 멋진 말을 할 것인가요?
 
마음이 착잡하셨습니다. 마침내 그 일이 코앞에 다가왔을 때, 겟세마네에서 이렇게 마음을 표현하십니다.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마 26:37b-38)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런 심정조차 없다면 예수님은 인간도 아닙니다. 그러면 인간이 아니기에 그분이 받는다는 고통은 의미도 없습니다. 예수님도 맞으면 아픔을 느끼시고, 채찍질을 당하면 극도의 고통을 느끼는 단순한 인간이십니다. 먹지 않으면 배고프고, 잠 못 자면 정신 분란이 오는 평범한 인간의 몸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런 분이 자기 앞에 그런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맨 정신에 그 길을 가야할 때 얼마나 맘이 힘들었겠습니까?
 
이때, 주님을 가장 많이 이해하고, 따른다고 하는 그의 제자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렇게 심적으로 힘들어하실 때 가장 가까이서 가장 많은 위로와 힘을 줄 수 있었던 제자들은 뭘 생각하고 있는가요?
 
아주 놀라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분명 예수님께서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의 마음은 분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으응? 이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고?”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예수님이 공식적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신다는 것은 메시아로서의 당당한 예루살렘 입성으로 곧 권세를 잡을 때가 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왜 그들은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분명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넘겨주어 조롱당하며, 채찍질당하며, 십자가에 못 박힌다”고 하셨는데, 어째서 그들은 이 말들은 머리에 담지도 않고 “예루살렘”만 담았을까요?
 
가게가 즐비한 길을 지나갈 때 우리들이 기억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있는 것들만 눈에 들어와 기억됩니다. 본다고 다 보는 게 아니고, 듣는다고 다 듣는 게 아닙니다. 마음에 없는 것들은 보아도 보지 못하는 것이요 들어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평상시 우리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가요? 그것이 우리의 모든 감각 기관을 통제함을 잊지 마십시오.
 
돈에 쪼들리고, 그것에 집착하는 사람은 설교 시간에 ‘돈’ 소리만 나와도 목사님이 설교 내내 돈 소리만 한다고 느낍니다. 왜? 그의 마음에 온통 그것으로 차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있는 것들을 점검합시다. 불필요한 것들, 내 생각과 감각을 온전치 못하고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잘못된 것들, 불필요한 것들, 세속적이요, 육신적인 것들을 제거합시다.
 
제자들은 맘이 급해졌습니다. 이제 예루살렘 입성을 하는데, 때가 되었는데, 한 자리 잡아야 하는데, 선수를 쳐야 하는데, ... 모두들 맘이 급해졌습니다. 그러더니 급기야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20절,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그때에는 언제를 말하는가요? 제자들이 맘이 급해졌을 때. 예수님이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간다고 말씀하신 그때에. 누가 등장하는가요?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 즉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입니다. 이 엄마가 예수님께 나아와 말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무슨 뜻인가요? “주의 나라”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칭하는 걸까?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우의정, 좌의정이 어디 있는가요? 그러니까 이 말은 세속적인 정부, 세속적인 권력 구조하에 우의정, 좌의정을 말합니다. 이 엄마는 정확하게 예수님께 요청하는 것입니다. 내 두 아들을 세속적 권세의 자리에 앉혀 주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말투가 명령조입니다. “주의 우편에,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도대체 이 여인은 무슨 권위로 예수님께 명령하는가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는 인간적인 관계에서 ‘이모’입니다. 그러니까 이모의 권위로 조카에게 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주위에서도 이런 친인척 비리와 인사 청탁이 들어올 정도이니, 정치인들의 측근 문제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른 제자들은 야고보와 요한이 엄마를 대동하고, 예수님께 ‘이모의 권세’로 인사 청탁, 압력을 넣었다는 사실에 모두들 분노하였습니다.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이들은 왜 분히 여겼을까요? 정의감에? 천만에! 자기들의 지분이 없어질까 봐, 자기들도 그런 욕심과 욕망이 있었으나 자신들은 그런 백이, 줄이 없어서 가만있는데, 저것들이 먼저 선수를 치다니 ... 분노하였습니다.
 
3.
예수님은 기가 막히셨습니다. 당신이 뭘 생각하는 지, 뭘 고민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제자들, 그 주변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는 설령 그런 위아래의 관계로, 세속적 권세의 관계로 너희를 대한다 할지라도 너희는 그러면 안 된다 하시며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하셨습니다.
 
입신양명(立身揚名)이란 한문이 있습니다. 출세해서 이름을 날리는 것! 그것이 부모에게 효하는 것이라고 효경(孝經)에도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다 입신양명하기 위해 힘을 다합니다. 그러기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까지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입신양명하는 방법은 조금씩 다른 것 같습니다. 배우는 연기를 잘해야 하고, 가수는 노래를 잘해야 하며, 학자는 배움의 깊이가 남달라야 합니다. 정치인은 상황을 잘 살펴야 하고, 직장인은 줄을 잘 잡아야 합니다. 축구 선수는 손홍민 만큼은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으로 입신양명, 그야말로 신앙의 세계에서 출세하여 이름을 남기는 길은 뭔가요? 하나님께서도 인정해 주시고, 교회에서도 존경받을 만한 이름으로 남을 수 있는 길은 뭔가요?
 
예수님께서 아주 분명하게 기독교인의 입신양명의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그리스도인으로 크는 길은, 으뜸이 되는 길은, 높아지는 길은 낮아지는 것입니다. 섬기는 것입니다.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 길이 최고입니다. 여러분, 이 신앙공동체, 교회 안에서 큰소리치는 이들을 무시하십시오. 언제나 지시만 하고, 명령만 하려는 이들을 무시하십시오. 언제나 자기가 중요하다고 목소리 높이는 이들을 무시하십시오.
 
도리어 우리가 존경하고, 존중해야 할 이들은 아무 말 없이 스스로 낮은 곳에서 봉사하는 분들, ‘나 같은 것이 뭘’하는 분들, 누가 보든 안 보든,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꾸준히 주님을 섬기듯 교회를 섬기고, 성도를 섬기는 분들, 큰소리치는 이들이 있으면 곁에서 조용히 미소 짓는 이들, 그런 이들을 존경하십시오.
 
누가 뭐라 해도 예수님의 겸손을 갖고 신앙 생활하는 이들을 존경하십시오. 그게 신앙공동체, 교회 안에서 가장 높아질 이들입니다.
 
어떨 때는 교회도 너무 세속적인 면에 집중합니다. 세속 지위가 높다고 교회에서도 높여주고, 재물이 많다고 높여주고, 세도가라고 고개 숙이고, 말 잘한다고 높여줍니다. 교회들마다 하는 소리, 집사 때는 겸손하다 장로가 되면 교만해져 교회를 어지럽히고 목회를 힘들게 하는 이들이 있다고들 합니다.
 
아닙니다, 진정으로 겸손한 자, 겸허한 심령의 사람을 교회는 존경해야 하고, 세워줘야 합니다. 교회에서 입신양명할 수 있는 자, 신앙의 세계에서 모든 이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는 철저하게 겸허한 사람입니다. “너희를 섬기는 자,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왜 우린 그걸 귀담아 듣지 않습니까?
 
섬기는 성도들이 되기를! 교회에선 모두들 종이 되기를! 그리하여 낮은 자를 높이 드시는 주님의 손에 이끌려 가장 진실하고, 멋진 그리스도인으로 본이 되기를!
 
4.
왜 우리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28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님조차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복음서를 묵상할 때마다 받는 큰 은혜가 있습니다. 아무리 잘못한 죄인이라도, 비록 윤락녀라 할지라도, 도적이라 할지라도, 사기꾼이라 할지라도 주님께 나아와 무릎 꿇는 이들을 주님은 책망하신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무슨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그들을 대하는 주님의 태도는 섬기는 자세입니다. 따뜻한 한마디, 따스한 미소, 포근한 격려, ... 마치 그 죄인들이 스스로 일어서기를 기다리는 섬기는 자세입니다.
 
물론 교만한 자들, 위선자들에 대해선 무서운 책망을 하십니다. 그러나 ‘나는 죄인입니다’하는 이들에겐 그게 무슨 죄이든 상관치 않으시고, 그들을 섬기십니다. 넘어지지 않도록 지탱해 주십니다. 격려해 주십니다.
 
그러기에 어떤 죄인이든 예수님을 만나면 환하게 살아납니다. 랍비를 만나고, 선생님을 만나고, 제사장을 만나고, 때론 목사님을 만나면 더 심하게 좌절하고 쓰러지는데 반하여 예수님을 만나면 그 어떤 죄인이라도 다 살아납니다. 왜? 예수님께서 섬겨주시기에, 그 섬김에 감격, 감사하여, 용기백배하여 스스로 돌아서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하십니다. 섬기는 정도가 아니라, 천하보다 귀한 자기 목숨을 그 죄인들을 속량하는, 살리기 위한 대속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죄인들이 예수님을 만나면 살아나는 것입니다.
 
아직도 인생이 두려우신가요? 죄의식에 힘든가요? 어두움이 있는가요? 예수님은 그런 당신을 살리기 위해 이 세상에 대속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붙드십시오. 그 예수님께서 우리를 살리십니다.
 
5.
대림절 둘째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성탄을 기다리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이 부족한 우리들을 섬기기 위해, 마침내 우리를 살리기 위한 대속물, 하나님의 희생 양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길이 고통이요, 배신이요, 채찍질 당함이요, 마침내 비참한 죽음이라는 것을 아시면서도 우리를 살리기 위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저 하늘 보좌에서 이 낮고 낮은 인간의 대지로 오실 때 그걸 모르고 오신 것, 아닙니다. 다 아시면서도 그 길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이기에, 그 길이 사람을 살리는 길이기에 마다하지 않으시고, 이곳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기다립시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기다립시다. 얼마 전 방송을 듣는데 이런 멘트가 나오더라구요. ‘기다림이 많은 이는 선한 사람’이라고.
 
제자들 같이 세상 욕망이 가득 차서, 아무리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어도 자기 욕망과 연관된,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나 말씀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추한 모습을 버립시다.
 
순박한 심령으로 주님 말씀 받으며, 섬기러 오신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도 교회를 섬기고, 성도를 섬기며, 이 사회의 약자와 어려운 이들을 섬깁시다.
 
저 하늘의 영광 보좌를 마다하고 겸손과 섬김의 자세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은총이 가득하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