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1-14) 
 
1.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의 은총이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보통 국가 원수 같은 귀빈이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 그 환영식을 TV.에서 보면 공항에 비행기가 도착하기 전에 취재진과 여러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군악대가 자리를 잡고 국가 원수를 맞을 사람이 마중을 나갑니다.
 
국빈이 비행기 트랩에서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팡파르가 울려 퍼집니다. 사람들이 국기를 흔들고 환호를 합니다. 그러면 국가 원수가 손을 흔들면서 비행기에서 내려 그 나라 국가 원수와 악수나 포옹을 하고 환영식장으로 갑니다.
 
군대의 사열을 받고 예포가 울려 퍼집니다. 많이 울릴수록 극진한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나라의 원수가 다른 나라를 방문한다는 것은 큰일로, 요란을 떨며 축하하고 알립니다.
 
2.
그런데, 국가 원수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어느 교회 중고등부에서 성탄 성극을 하는데, 재미있게 하려고 현대판으로 조금 각색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엔 나오지도 않는 의사를 등장시켰습니다. 이 의사가 아기를 받아주고는 요셉에게 ‘축하합니다, 아들입니다.’하면 되는데, 의사 역을 맡은 녀석이 재밌게 한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축하합니다, 미스터 요셉. 하나님이십니다.’
 
순간 다들 웃었지만, 생각해보니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태어나신 겁니다.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에서 그 장면, 아기 예수님의 오심에 대해 요란하게 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리는 자가 누구로 묘사되고 있습니까? ‘주의 사자’라고 합니다. 아기 예수 탄생의 소식을 전하는 자는 다름 아닌 하나님이 보낸 사자, 천사였습니다. 이 천사는 좋은 소식을 알리는 대장 역할을 하는 천사였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혼자가 아닙니다. ‘수많은 천군이 그와 함께 있었다.’
 
천사와 수많은 천군, 그들이 얼마나 중요한 소식을 알리고 있는지 그 천사가 선 곳은 ‘주님의 영광이 두루 비치고 있었다.’(9)고 합니다. 얼마나 영광스럽던지 그것을 보던 목자들은 두려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또한 천군들은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라 ‘갑자기 우렁찬 찬양을 하였다.’(13) 세상에서 울리는 팡파르나 예포는 여기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천군의 우렁찬 찬양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예수 탄생이 전해진 것입니다.
 
울려 퍼진 내용은 뭔가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세상의 그 어느 누가 이런 찬양을 받으며 태어났단 말인가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3.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정작 그 아기의 오심은 어떤가요? 마리아와 요셉이 아기를 낳을 때가 되어서 아기를 낳았는데, 강보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고 하는 게 전부입니다.
 
아기를 싸고 있는 것은 부드러운 천이 아니라 강보였습니다. 일반 가정집도 아기를 위하여 부드러운 천을 준비합니다. 물론 왕은 가장 고급스러운 천을 준비할 것입니다. 그런데 왕으로 임하시는 아기 예수님은 거친 강보에 싸였습니다.
 
왕으로 오시는 이가 태어났다면 적어도 금과 은으로 장식된 요람에 뉘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아무리 검소하게 한다 하더라도 일반 가정집에서는 요람 정도에 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기 예수님이 뉘인 곳은 구유, 곧 말 밥통이었습니다. 그저 움푹 파인 말 밥그릇이 그의 요람이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왜 방도 구하지 못하고 마구간에서 태어나실 수밖에 없었을까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었기에 부득이 마구간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붐볐을까요?
 
당대의 통치자,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 즉 카에사르 아우구스투스는 세금과 징병을 목적으로 로마 제국 내에 있는 모든 백성들의 인구 조사를 명령하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백성들은 자기들의 호적이 있는 고향에 가서 호적 신고를 해야 했습니다. 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호적하기 위해 자기 고향엘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다윗의 자손으로, 다윗 혈통의 본가가 있는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그것도 만삭이 다 된 마리아를 데리고 함께 갔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 왔지만, 그곳엔 이미 먼저 와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다윗이 누구인가요? 이스라엘 최대의 왕이 아닌가요! 그 왕이 씨를 얼마나 많이 뿌렸겠습니까! 그 씨에서 나온 자손들,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다윗은 후계자 문제만 갖고도 자식이 하도 많아서 복잡하였던 왕입니다. 거기에다 정통 후계자가 된 솔로몬, 이 사람 부인이 얼마였는지 아는가요? 왕상11:3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정실 왕비 외에 후궁과 첩이 천명입니다. 자기 부인을 하루에 한 명씩 만나도 3년이나 걸립니다! 이 천명의 부인들이 자식을 하나씩만 낳았다 해도 자식 수가 천명입니다. 다윗의 3대 혈통, 3대 후손들이 1천명, 그것이 몇 대에 걸쳐 내려왔으니 그 수가 어떠했겠습니까! 이들이 모두 베들레헴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당대 베들레헴은 작고 작은 시골 마을로, 여관이나 제대로 있었을까요?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있다 할지라도 그 수가 적어서 돈 있는 사람이 먼저 와서 차지하거나, 권세자들이 차지하고, 또는 백이 있는 이들이 와서 여관방을 다 차지해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니 요셉과 같이 가난하고 평범한 이들이 방을 얻기란 생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만삭의 부인, 막 아기를 낳으려는 부인을 데리고도 아무런 이의 제기도 못하고 마구간으로 갔고, 거기서 마리아는 아기 예수님을 해산하였습니다.
 
4.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이 땅에 태어날 때 그 부모를 선택하고, 그 가정환경을 선택할 수 있는 이가 있는가요? 없습니다. 우리네 인생은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태어날 때의 상황, 즉 출생의 시기, 부모, 가정환경, 국적을 선택할 수 없고, 자기가 죽을 때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써, 자신이 태어날 환경을, 그 부모와 가정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돈 없고, 백 없고, 권세 없는, 그것도 태어날 때부터 따뜻한 방도 아닌 마구간으로 밀려나 태어날 수밖에 없을 정도의 째지게 가난하고 소시민적인 가정에서 태어나심을 선택하셨습니다. 그게 예수님의 운명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신 성자 예수님이 선택하신 것입니다.
 
메시아라면 왕가의 집안에 태어남이 상식입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도 메시아가 태어났으니 당연히 예루살렘 왕궁에서 태어났겠지 하여 예루살렘 성의 헤롯에게 찾아갔습니다. 그게 상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은 그런 곳에, 그런 모습으로 태어나시지 않고, 스스로 낮고 천한 이의 가정에, 그것도 태어나자마자 따뜻한 안방이 아닌 구유, 짐승의 먹이통에 뉘어지는 처지로 태어나셨습니다.
 
왜 그런 가정, 상황, 모습을 선택하셨을까요? 선택하셨다면 일부러 그러셨다는 것인데, 일부러 라면 뭔가 의미가 분명 있지 않겠습니까? 무엇을 말씀하시려고 그러셨습니까?
 
하늘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할 수 있는 최대의 예의를 다 갖춰 천군 천사들이 예포를 쏘며 찬양을 하였는데, 그 정도의 엄청나신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시는데, 왜 하필이면 그 마구간에, 그 어린 살갗에 닿기 껄끄러운 강보에 싸여 말 밥통에 누이는 상황을 선택하셨을까요? 어쩌자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치이고 밀리고, 그러면서도 한 마디 대꾸도 못하는 소시민 중의 소시민의 가정을 택하셨을까요?
 
5.
아주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 엄청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관심이 그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그 보잘것없는 이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사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이 쏠려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전부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하고, 지지리 궁상을 떠는 자가 되라는 게 아닙니다. 그런 이들에게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의미심장한 말씀이 있습니다. 마지막 심판 때에 주님은 사람들을 오른편 왼편으로 구분하시며, 오른편에 있는 이들에게 말씀합니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아 어서 오라.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먹여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들이 깜짝 놀랍니다. ‘주여, 우리가 언제 그랬습니까?’ 주님의 대답은 이러합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
 
그리고는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라.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먹이지 않았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않았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입히지 않았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지 않았다.’
 
이에 그들이 항변합니다. ‘주님, 무슨 말입니까? 주님이 언제 헐벗고 굶주렸습니까? 언제 주님이 병들고 나그네 되었습니까? 주님이 그랬다면 당연히 우리가 먹이고 입히고 영접하지 아니하였겠습니까?’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25:45)
 
6.
우리는 조금 더 낮고 가난한 이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기도는 비전을 향해 위로 위로 ... ! 그러나 우리의 삶은 땅으로! 천군 천사가 예포를 터뜨리며 환호하는 가운데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며 가난한 집안을 택하셨습니다.
 
매해 로마 바티칸에서 성탄 미사를 교황이 집전하는데, 그걸 볼 때마다 내 마음 속에는 ‘저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자리 잡습니다. 호화로운 옷을 입은 교황과 사제들이 호화찬란한 구유에, 황금 비단이 깔린 구유에 아기 예수님을 눕히며 경배하는 모습.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은 저렇게 부유하게 오시지 않았습니다. 저렇게 황홀하게 오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이들을 부끄럽게 하지 않으려고, 아니 그들에게 관심이 있음을 온 세상에 보여주시기 위해 그 척박한 환경에, 그 초라한 집안을 택하셨고, 거기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저 로마 교황청이 하는 것처럼 예수님을 왜곡합니다.
 
프랑스 시민 혁명이 일어나자 당대 국왕인 루이 16세와 그의 아내 마리 앙뜨와네뜨는 생명을 건지기 위해 오스트리아로 도망가다가 붙잡혔습니다. 왜 붙잡힌 줄 아는가요?
 
농민으로 변장하고 도망가는데, 앙뜨와네뜨가 농민 복장을 하고는 어울리지 않게 보석 장신구로 자신을 꾸미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금방 알아보고 잡았답니다.
 
서민의 삶을 전혀 몰랐기에,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없어서 결국 붙잡히고 처형을 당했던 것입니다.
 
교회가 위에 있으면 모릅니다. 아무리 말을 그럴 듯하게 해도 그 현실과 현장을 모르기에 그저 공허한 소리로 끝나고 맙니다. 그리스도인이 언제나 성공과 축복 속에만 머물러 있으면 우리 예수님의 뜻을 모릅니다. 우리 주님이 어디에 관심이 있고, 어디에 주로 머무르시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평상시 조금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나보다 낮은 곳에 있는 이들, 어려운 형편에 있는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왜? 우리의 주님이 그들 가운데 오셨습니다.
 
아니, 그게 아닙니다. 일부러 예수님이 그걸 택하셨습니다. 천군 천사의 환호 속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그분이 이 세상에서 택하신 첫 번째 선택은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 소시민의 삶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탄절입니다. 주님은 절대 높은 곳으로 임하시지 않습니다. 그런 환경과 지위를 택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런 왕이 아니십니다. 주님은 낮은 곳으로 임하십니다. 낮은 자들에게 가십시오.
 
자기가 갖고 있는 것으로 기꺼이 어려운 이들을 돕고 나누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성탄의 주인공, 예수님을 그곳에서 만날 것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즐거움이 여러분의 헌신과 섬김에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