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란 본래 시끄러운 것이다.” 미국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지난 6월 한미 쇠고기 협상에 대한 한국민의 반대 시위를 보고 평한 것이다. 맞는 이야기이다. 민주주의란 다양한 이들의 각양각색의 주장을 수렴 및 조율해 가며 하나의 통일된 정책으로 완성하는 과정이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이 나라는 속도는 더뎌도 민주정치의 틀을 완성하는 노정을 이어왔다. 이명박 정부 역시 그 과정 속에서 탄생한 정권이다.

그러나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행보는 여러 가지 우려를 낳는다. 지난 촛불 시위 국면에서 국정 장악력에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고 생각했던지, 최근에 이를 만회하겠다며 벌이는 통치 드라이브가 지나칠 만큼 독선적이라는 지적이다.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뜯어고치도록 종용하면서 반발하는 출판사에 대해 “정부 무서운 줄 모른다”라고 협박성 발언을 한 점이나, 야당의 반발을 부르고 있는 4대강 치수 사업에 대해서 “논란을 무시하고 추진하라”고 비서관에게 독려한 부분이 특히 그렇다.

이것 뿐 인가. 방송과 인터넷 등 여론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무리한 사장 교체는 물론, 법 제도마저 아전인수격으로 정비하느라 혈안이 돼 있다. 경제 살리기를 구실로, 부자와 기업을 위한 감세 정책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이 때문에 서민들은 고통분담이 아니라 전담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게다가 이미 힘을 잃은 과거 정권의 비위를 샅샅이 뒤져 단죄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에 정당성을 실으려는 구태(舊態)까지 연출하고 있다.

설령 비판 세력의 문제제기가 ‘반대를 위한 반대’라 하더라도, 이들을 최대한 설득하며 동의를 구하는 노력을 피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민주정치의 기본이다. 끝내 ‘소수의 횡포’가 과해 막다른 골목에 이를 경우, 정부는 여론에 호소하며 국민적 총의를 형성해 뜻을 이룰 수 있다. 시간과 비용이 들어도 이 길이 정도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야당은 물론 비판적 여론도 무시하는 양상이다. 그러다보니 60%에 이르는 반대층은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허니문 피어리드’(honeymoon period)라는 말이 있다. 정권 초기에 긍정적인 관점으로 새 정부를 응원하는 기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기간의 실책에 대해 국민은 대체로 용납한다. 그러나 이것도 무한정 계속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학자들은 우리의 경우 대개 1년 정도가 한계선이라고 말한다. 그 한계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때가 지나면 이명박 정부는 지금보다 더 한 여론의 책임 추궁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지금 이명박 정부의 실적을 빛깔로 표현하라면 회색에 가깝다. ‘잃어버린 10년’을 상쇄하겠다며 ‘경제 살리기’를 아이콘 삼아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지난 1년 간 경제지표는 어떤가. 말 그대로 ‘곤두박질’ 그 자체 아닌가. <한국일보>는 12월 1일자에서 경제 전문가 20인에게 물어본 결과를 토대로 이명박 정부의 경제 성적을 D학점으로 정리했다. 민주주의, 분배정의, 남북관계, 외교역량 분야에서도 점수를 매긴다면 이보다 나을까.

그렇다면 난국 극복을 위한 왕도는 무엇인가. 너무나 교과서적인 언급이지만 대화와 타협의 원리에 충실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설득과 합의는 필수 전제 요소이다. 제 정파와 모든 국민을 후견인으로 만든다는 각오도 다져야 한다. 우리 헌법은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공권력, 미국, 장악한 언론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권력과 아이스크림의 속성은 같다고 했다. 언젠가는 녹아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 원리를 안다면 이처럼 대놓고 일방 통행할 수 있을까.

국민을 섬겨 나라를 편안하게 해야 한다. 경제를 발전시키고 사회를 통합해야 한다. 이는 지금 이명박 대통령에게 절실한 과제이며, 이 대통령 스스로 취임사에서 밝힌 내용이기도 하다. 이 언급이 실천할 의지 없는 수사(修辭)였다면, 이명박 대통령 본인의 모든 이야기는 이후로 수사로써 그 의미를 다하는 허언(虛言)이 될 것이다. ‘울리는 꽹과리’에 그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