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3:1-17) 
 
1.
구약 성경에 의하면 유대인들의 제사에는 크게 5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향한 헌신 또는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번제가 있고, 자신의 삶에 대한 감사로 곡식으로 드리는 소제, 하나님과 친교를 나누고 축복에 참여하는 화목제, 율법을 어김으로 하나님께 지은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속죄제, 부지중에 지은 것이나 인간에게 지은 도덕적이며 배상이 가능한 죄를 위한 속건제가 있습니다.
 
오늘 길게 읽은 레위기 3장은 화목제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 화목제의 규례를 묵상하다 보면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림에 있어서 꼭 유념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2.
무엇보다 화목 제사의 제물로는 소, 양, 염소가 있는데 특이한 것은 1절과 6절에 보면 일반 제사의 제물과 다르게 이 화목 제물에는 수컷, 암컷 구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번제 같은 경우엔 반드시 수컷이어야 했는데 화목 제물엔 수컷이든 암컷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인간이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고 이웃과 평화를 누림에 있어서 남녀의 차별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남자건 여자건, 아이건 노인이건 누구나 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이웃과 화목해야 합니다.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욥22:21) 그 누구든 하나님과 갈등을 빚지 말고 화목해야 합니다. 그래야 복이 임합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 형제와 찝찝한 상태에서 드리는 예배, 별로입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롬12:18) 하나님께 예배드림에 있어서 이렇게 화목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배하기 전에 서로 마음을, 인사를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옆에 누가 앉아 있는지도 모르고 나 혼자 하나님께 예배하고 가면 그만이지 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예배자의 참된 자세는 아닙니다.
 
우리 노회 안에 있는 한 유명한 교회에 함경도에서 아들 둘을 데리고 내려온 50세된 아주머니가 출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닌 지 몇 주가 지나도 어디에서 왔느냐고 말을 건네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섭섭하긴 했지만 함경도 기질이 있었던 이 아주머니는 물러서지 않고 그 교회에 계속 출석하였답니다.
 
그렇게 7년째 교회를 출석하던 어느 날 앞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데 70세쯤 된 부인이 옆에 앉았다가 드디어 이렇게 묻더랍니다. “내가 처음 보는 아주머니인데 어디서 왔소?” 무려 7년 만에!
 
옆에 누가 앉아 있는가요? 혹시 7년째 아직도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예배드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혼자 예배드리는 것은 마치 절간에 가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비록 혼자 왔어도 교회에서의 예배는 공동체 예배입니다. 눈웃음으로라도 서로 인사를 나누고 함께 예배드립시다. ‘행복하세요, 우리는 왕중입니다.’
 
3.
이 화목 제사에서 독특한 것은 제물의 내장을 불 태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헌신을 의미하는 번제인 경우에는 제물 그대로 홀랑 다 태웠지만, 화목 제물인 경우에는 내장의 기름과 콩팥, 허리의 기름, 간에 덮인 꺼풀 등을 태워야 했습니다. 왜 그래야 할까요?
 
화목은 어디에서 오는가요? 머리에서 온다? 지식에서 온다? 의지에서 온다? 맞습니다, 알아야 합니다, 오해한 것을 풀어야 합니다,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화목해집니다.
 
그런데 진정한 화목은 거기에서만 오는 게 아닙니다. 화목은 감성, 감정에서 옵니다. 머릿속으로는 ‘용서해라, 화해해라, 받아줘라, 네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냐, ...’ 등등 지식, 의지, 생각, 모두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말로는, 의지적으로는 그렇게 할 수 있어도, 감정이 따라주지 않아 우리는 늘 실패합니다.
 
인간의 삶을 활기 있고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게 감정이요 감성입니다. 감성이 풍부한 이와 함께 하면 늘 즐겁습니다. 삶이 풍요로와집니다. 그러나 감성이 메마른 이와 살면 삶이 퍽퍽합니다.
 
그러면 이 감정은 우리 몸 안 어디에 있는 걸까요?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감정이 내장의 기름 속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이를 태워드림은 자신의 감정을 모두 태워 버림을 뜻하였습니다.
 
화목제를 드리고, 하나님과 화목, 이웃과 화목하기를 원하는 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모두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최고의 감성으로 하나님께 예배해야 하고, 동시에 자신이 갖고 있던 인간적인 지엽적 감정들, 사랑하던 감정, 미워하던 감정 모두를 하나님 앞에 불태워야 합니다. 자기 안에 갖고 있던 그 가지각색의 감정들을 다 태워 버려야 합니다. 쉽지 않지만 정녕 하나님과 화목을 원한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감성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곤 새로운 거룩한 감정들을 받아야 합니다. 성도다운 감정을 새로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 화목이 이루어집니다. 눈에 들어오는 미운 김 집사가 예배가 마치면 고운 김 집사로 바뀌어 있어야 합니다. 눈에 거슬리던 거 집사가 기도하고 나면 이쁜 이 집사로 보여야 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
 
정말 바라건대 예배를 드릴 때마다 여러분의 오만가지 감정이 성령의 불로 모두 태워지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 후에는 늘 깨끗해진 마음과 거룩한 감성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세상으로 나아가는 거듭난 주의 백성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4.
그런데 화목 제사뿐만 아니라 모든 제사에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제사를 드리고자 하는 이가 제물에 안수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제물에 손을 대야 합니다. 그리곤 고백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이 제물은 바로 저입니다. 이 제물과 나는 같습니다.” 그리고 이 안수, 손을 대는 행위에는 반드시 철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희생하는 제물이 바로 자신을 대신한다는 철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저 단순하게 짐승을 가지고 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적어도 자신의 허물을 위해 제물로 내어놓은 짐승과 자신을 동일시해야 합니다.
 
호주 위에 있는 파푸아 뉴기니아에 선교사들이 들어갔을 때, 예수님은 우리들의 죄악을 짊어지고 고통받고 죽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감동적인 설교를 하는데 원주민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선교사들이 눈물을 펑펑 쏟으며 설교를 해도 눈만 껌뻑껌뻑할 뿐이었습니다. 선교사들은 복음의 핵심이 먹혀들지 않자 당황하였습니다.
 
그런 어느 날, 그들은 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파푸아 뉴기니아에는 양이 없다는 것입니다. 집집마다 돼지는 자기 식구같이 함께 살며 키우는데, 양은 없었습니다. 이들은 평생 ‘양’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하나님의 어린양, 어린양’해 봐야 감이 잡히지 않는데 무슨 감동이 오겠습니까?
 
그래서 선교사들은 설교하며 단어를 하나 바꿨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 하지 않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돼지로다!” 그랬더니 원주민들이 눈물을 줄줄 흘리더랍니다. 왜? 실감이 나는 겁니다. 어린 돼지! 하니까 자기 집 마당에서 놀던 돼지가 생각나는 겁니다. 자기들이 애지중지하는 어린 돼지들이 눈앞에 선하며, 그들이 애처로운 겁니다. 이른바 제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겁니다.
 
화목 제물, 자신의 허물로 인해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 자기 대신 소중한 희생물을 내놓았으면, 그 희생물과 자신을 동일시해야 합니다. 그 희생물이 부르짖는 고통의 소리가 마치 자신이 내는 소리로 느껴져야 합니다. 고통과 아픔을 자신의 것인 양 느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우두커니 바라만 보아선 안 됩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자신의 화목 제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그 십자가를 만져야, 붙들어야 합니다.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듯이 내 손을 뻗어 그 십자가를 터치해야 합니다. 그리곤 믿음의 고백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 때문에 돌아가셨군요!’ 그래야 십자가는 나의 화목제물이 됩니다.
 
솔직히 그 제물은 지난 주일 말씀드린 것처럼 내가 내놓은 것도 아닙니다. 그것조차도 하나님이 친히 내놓으신 것,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희생 제물이 나에게 효과를, 효력을 보려면 내가 손을 뻗어 그 십자가의 제물을 만져야 합니다. 그 십자가의 희생 제물, 예수님을 자신의 죄를 대신한 희생 제물로 자신과 동일시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그 고통을 함께 느껴야 하고, 그 예수님과 자신이 같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믿어야만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죄사함을 얻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부적이 아닙니다. 아무리 십자가로 자신을 도배해도 믿음 없이 십자가를 붙든다면 그건 장식물에 불과합니다. 믿는 이에게, 십자가의 예수님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그 고통이 바로 자신이 당해야 하는 고통임을 느끼는 이가 비로소 구원의 반석에 서는 것입니다.
 
5.
사순절 다섯째 주일, 이제 더욱더 십자가, 십자가, 귀 따갑게 들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 십자가가 자기 것이 되기 위해선 믿음의 손을 뻗어 붙들어야 합니다. 눈으로 구경하고 바라보는 정도로 해서는 십자가가 자기의 삶에 아무런 관련도 영향도 없습니다.
 
그런 이에게 십자가는 김 집사를 위한 것이고, 거짓말 잘하는 이 집사를 위한 것이며, 사기 치는 윤 집사를 위한 것이며, 잘난 척하는 공 집사를 위한 것이지, 결코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사건 십자가의 희생 제물을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해선 손을 뻗어 십자가를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곤 고백해야 합니다. 동일시해야 합니다. 그때 놀라운 역사가 내 삶 속에 이루어집니다. 어떤 역사?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3-5)
 
고통스러운 그 십자가, 모두가 외면하는 그 십자가를 내 손으로 꼬옥 붙들고 나 때문입니다 라고 고백할 때, 내 허물 때문입니다, 내 죄악 때문입니다 할 때 우리에게 평화가 임하고 모든 질병에서 나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장애를 갖고 있으면서도 깊은 영성의 시를 쓰는 송명희 시인의 시 중에 예전에 우리가 눈물 속에 부르던 찬송이 있습니다.
 
“우리의 어두운 눈이 그를 미워했고, 우리의 캄캄한 마음이 그를 몰랐으며, 우리의 무지한 채찍질로 그를 내리쳤고, 우리의 악독한 혀가 그를 정죄했으며, 우리의 폭력의 손길이 그 몸 멍들게 때렸으며, 살인자의 본받아 우리는 그를 찔렀소.”
 
그들이 찌른 게 아니라 우리가! 그들이 때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6.
사랑하는 여러분, 결국 십자가 위의 예수님은 바로 나 때문에 고통당하시는 것입니다. 죄로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간, 늘 껄끄러운 것으로 하나님을 슬슬 피하던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희생 제물입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엡2:16a)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화목 제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 이번 한 주간, 십자가를 손안에 꼬옥 쥐고 살자. 십자가에서 고통당하는 예수님, 그분의 고통을 나도 느끼고, 그분의 안타까움을 나도 느끼고, 그분의 아픔을 나도 느끼고, ...
 
‘그래요 주님, 내가 당해야 했던 것인데..’ 하는 마음으로 이번 한 주간을 살아, 마침내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는 거듭나는 복이 있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