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교회 다니면서 느낀 경이로운 게 있습니다.
길에서 사람이 죽으면 장례 치러줄 이들이 없습니다.
이럴 때 동회나 구청에선 교회에 도움을 요청하죠.
그러면 교회에선 아무런 일면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추울 때, 또는 그 더울 때 교인들이 정중하게
모든 장례를 치러줍니다.
그러다 부목사가 되어 목회를 배울 때,
별로 교회에서 인지도도 없는 낯선 교인이 상을 당해
저 멀리 남해로 벌교로 새벽에 발인해서 가야 할 때
누가 그 시간에 나올까 싶은데 함께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대부분 그분들은 장로님, 권사님,
그리고 아주 쪼금 안수집사님들이셨습니다.
사실 교회의 중직자들의 사명이 바로 이런 거,
어려움을 당한 이들을 돕는 게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엔 이런 낯설고, 귀찮고, 힘들고, 먼 곳엔
참여하여 위로하고 힘을 주는 분들이 별로 없습니다.
유명한(?) 분들의 장례에는 다들 참여하는데
작고도 작은 이들, 낯이 선 이들의 장례에는 별로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쓸쓸하고 적막한 장례식장에서 혼자 중얼거립니다.
‘주님, 제가 어디에 있는 겁니까?
여기가 그리스도인 공동체, 교회 맞습니까?’
이젠 그리스도인들도 희생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기의 시간과 열정, 힘과 재물을 주님의 사랑 실천에
희생하려는 마음이 옅어졌습니다.
갈수록 말들은 잘하는데
정작 그런 섬김과 희생의 자리에선 볼 수 없습니다.

모두가 회피하는 그 섬김과 위로, 희생의 자리를 굳게 지키는 분들,
그들을 교회는 존경하는 겁니다.
큰소리치고 말 잘하고, 생색내는 이들을 존경하는 게 아니라
말없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대가 없이 실천하는 분들을
교회, 신앙공동체는 존경하고 따르고 박수를 치는 겁니다.
그래야 교회는 자손대대 존속할 수 있습니다.
편하고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는 이 세대에서
고집스럽지만 고고하게 예수님의 뜻을 따르고 순종하고 실천하는
그런 신앙공동체, 왕중교회가 되는데 힘을 다해 으랏차차!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