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거의 매일같이 산책을 나간다. 아내가 몸이 아팠을 때 나는 물론이거니와 자녀들이 몹시 걱정하는 것을 보면서 ‘내 건강을 지키는 것이 자녀들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후 2-3시가 되면 아파트 아래 위치한 한강 변을 한 30분 정도 산책하고 돌아오곤 한다. 그냥 혼자 걷기 멋쩍어서 귀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산책하면 나름대로 의미가 깊은 시간이 되기도 한다.

 

최근에 한국 가곡(歌曲)을 들으면서 산책하는데 이흥렬 작곡, 작사의 ‘바위고개’가 흘러나왔다. 그 순간 그 가사가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바위고개 핀 꽃 진달래꽃은 우리 님이 즐겨즐겨 꺾어주던 꽃, 님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하필이면 그 노래를 듣던 장소가 한강변에서 우리 아파트로 올라오는 돌계단에서였다. 이 돌계단은 아내가 건강할 때 함께 산책하고 돌아오다 중간에서 쉬고는 하던 곳인데 주변에 마침 진달래꽃이 만개(滿開)하고 있었다.

 

아내는 가고 없는데 여전히 그 꽃들은 피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요즈음 ‘세월이 약이다.’라는 말이 점점 실감이 난다. 아내가 갑자기 떠나고 나서 한두 달 동안은 무거운 큰 짐을 벗은 것같이 홀가분하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작년 3월 초 아내가 폐암 판정을 받은 후 항암치료 과정에서 너무나 힘든 한 해를 보내야 했다. 4월에는 어지럼증으로 주방에서 넘어져 오른손 골절로 깁스함으로 생활의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6월에는 11차례나 병원에 가야 할 정도로 갖가지 휴유증으로 고생하더니 결국 7월 초에는 혼수상태로 119로 응급실에 실려 가 폐렴 판정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리고 중환자실 28일과 처치실 19일, 일반병실 한 달 동안 엄청난 고생을 했다. 많은 가래를 뽑기 위해 목관 시술을 함으로 두 달 동안 콧줄로 죽을 취해야 했다. 환자가 무의식적으로 콧줄을 빼기 쉬워 거의 양팔을 침상에 묶은 채 지내야 하므로 아내는 너무나 비참해 했다.

 

그렇게 거의 80일을 입원해 있음으로 9월 27일 퇴원할 때는 침상에서 스스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 있었다. 그래서 병원에 이어서 가정에서도 24시간 간병인을 두어야 했다. 그러나 한 달 수백만 원 드는 간병비를 감당하기 힘들어 11월 15일부터 내가 혼자 간병인과 가정부 역할을 담당해야 했다. 거의 두 달 동안 아침부터 한밤중까지 종종걸음 하며 환자를 돌봐야 했다. 아내는 하루에 30개의 약으로 버티어야 하므로 늘상 잠에 취해서 살다시피 했다.

 

그런 안타까운 모습만 보이던 아내가 갑자기 떠나고 나니 한두 달은 숨통이 열린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소천한 지 100일이 가까워지면서 아내의 아프던 모습은 점점 희미해지고 과거 건강했을 때의 기억들로 오버랩 되면서 ‘세월이 약’이란 말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3월달까지는 승용차를 타면 언제나 고통을 참으며 신음하던 아내가 옆에 타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늘 가던 아산병원으로 간 후 지하주차장에서 휠체어에 태우고 진료실에 찾아가야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승용차를 타면 아내와 함께 전국 여기저기를 여행하던 그 즐거운 날들, 과거 자녀들을 키우며 웃고 울던 기억들, 힘든 목회였지만 교회가 성장하면서 뿌듯했던 날들, 그리고 몇몇 목회자 부부들과 필리핀, 인도네시아, 중국 등 아시아 유명 관광지를 여행하던 일과 성지순례와 동서유럽, 미국 등을 여행하며 함께 즐기던 일 등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너무나 다행한 일이다. 세월은 과거의 아프고 힘겨운 추억조차도 아름다움으로 채색해주는 약효(藥效)가 있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