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에덴동산에 최초의 사람 아담을 창조하시고, 독처하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아 돕는 배필을 만드셔서 함께 살게 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서로도와 살아갈 누군가가 필요하게 만드셨다. 그것은 사람은 무엇인가 부족함이 있는 것이 당연하며 그것으로 인하여 늘 콤플렉스를 스스로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나를 향하여 ‘당신의 콤플렉스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니 무엇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나의 콤플렉스는 무엇인가? 오늘도 스스로에게 물어 보다가 아차 이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치인들이 많이 쓰는 말 중에 하나가 ‘마음을 비웠다’라는 말이다. 한동안은 많은 사람들이 어떠한 경쟁적인 상황에서 이 말을 많이 사용하였다. 물론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참 아름다운 말이 그 용어를 대신하고 있다. 물론 종교계에서 쓰기 시작하여 주로 그 방향에서 사용하는 말이다. ‘내려놓음’. 참 좋은 말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신 예수님의 초청의 말씀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세상사에 짓눌린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평강을 누리라는 사랑의 초청이다. 바로 내려놓음이다.

그런데, 나는 비어 있음이 부끄럽고 속상하다. 그래서 때로는 어디를 가도 뒷자리를 좋아한다. 계단을 내려갈 때는 늘 뒤에서 어정어정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나보다 훤칠한 키를 가진 사람들 앞에서는 멀찌감치 따라가곤 한다. 나의 빈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속이 비인 나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나의 치부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정말 싫다. 나는 왜 이렇게 비어 있을까? 남들은 꽉 찬 모습으로 저리 당당한데 나는 왜 부끄러운 모습이 되었을까? 그렇다. 나의 콤플렉스는 속이 차지 못하고 ‘비어 있음’ 아니 계속해서 ‘비어가고 있음’, 바로 그것이다.

해마다 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윤중로의 벚꽃놀이를 즐긴다. 어느 한 해 그곳에 갔다가 속이 상해서 돌아왔다. 그리고 그곳을 가지 않는다. 벚꽃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이 모두다 나의 빈 모습을 보고 웃는 듯하다. 그래서 한 편의 글을 써 보았다.

여의섬 윤중로에 벚꽃이 활짝 피었다 사람들이 사람들이 몰려든다 화사하게 웃고 있는 꽃잎 아래에서 행복한 꿈을 꾸고파 앞서거니 뒤서거니 꽃그늘 아래로 몰려든다 사람들은 사월이 오면 윤중로의 벚꽃소식을 기다린다 멀리서 관광버스를 타고 온 할머니 얼굴이 벚꽃보다 더 밝고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꽃잎은 수줍은 소녀가슴에 별로 다시 뜬다

오늘, 윤중로에서 엽서 한 장이 날아왔다 봄나들이 한 번 나오란다 이 사월에 당신을 만난다는 바람 하나로 긴 겨울을 견디어 왔노라고 꽃잎 같은 목소리로 부르는. 윤중로 벚꽃들은 사람이 찾기 이전에 먼저 사람을 기다리는 꽃이다

올 해 정수리의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다 왠지 이 나이에 머리 속이 허한 것이 부끄러워 자리에 앉을 때나 혹 계단을 내려갈 때도 뒷자리를 찾곤 한다 누군가에게 속이 빈 마음을 보이는 것 같아 싫다 윤중로에 가면 하늘 가득 수놓은 벚꽃들이 속이 비어 가는 나를 보고 웃는 듯하여 슬프다

마음을 열면 세상의 꽃이 당신의 삶을 축복하는 웃음인 줄을 알 수 있단다 아직도 정수리에 비어 가는 자리는 잘 알면서도 텅 비어 버린 가슴의 허전함을 모르고 사는, 그래서 올 봄은, 올 봄은 더욱 슬프다
(詩 / 윤중로에서 온 편지)

나는 이 시를 쓰면서 벚꽃들이 나 만을 주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로지 자신의 삶을 다하여서 아름다운 마음으로 세상에 기쁨을 주려고 웃고 있음을 알았다. 여하튼 나날이 비어가는 나는 위대한 성인(聖人)이 아니다. 그저 속상하고 비우는 것이 가슴 아픈 이 시대의 눈물 같은 남자다. 누가 있어 나의 이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을까? 비어 있어서, 더욱 비어져감으로 웅크리고 살던 사람은 오늘 이 고백을 함으로 이제는 이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것이다. 자존감을 회복하고 어깨 펴며 세상을 걷게 될 것이다. 검정 트렌치코트를 이고 겨울이 오는 거리를 당당히 걷고 있는 저 사람을 보라.♠

/ 시인. 한강교회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