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휴거하듯이 갑자기 떠난 지 100일이 되어간다. 지금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서 있는 느낌이다. 그 경계선에서 삶도 보고 죽음도 보고 있다. 며칠 전까지 틈틈이 돌보아 주던 아내가 화장터에서 한 줌의 재로 변하고 선산에 한 평도 안 되는 땅에 묻히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거의 한 달 동안 아내가 쓰던 많은 의류품이나 아끼던 물품들, 일부 가구들, 휠체어와 보행기, 엄청난 의료용품 등을 딸네 공동체나 필요한 분들에게 보내고 나니 너무나 허망했다.

 

50년 동안 동고동락하던 아내와 많은 유품(遺品)들을 떠나고 나니 나의 반이 떨어져 나간 것과 같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유품을 떠나보냈다고 하나, 아직도 대형 그릇 가게에서 고집을 부려가며 샀던 고가의 그릇들이 주방 찬장에, 몇 년 동안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해서 요리 강습에 취미를 붙이더니 백화점에 가면 고급 요리 재료를 구입했는데 냉장고에 여전히 진열되어 있다. 이제 누구 하나 그 재료를 사용할 사람이 없으니 모두 버려야 할 판이다.

 

삶과 죽음이 우리 곁에 있음에도 여전히 주변 사람들 중, 자기 공장 직공들에게는 박봉의 월급을 주면서도 100세까지 장수하겠다고 온갖 비싼 보약들을 챙겨 먹는 자들, 서민의 피 같은 돈을 전세 사기를 통해서라도 재산축적에 혈안이 되어 있는 졸부들, 출세를 위해서는 정의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철새정치인들, 음란으로 탕자의 삶을 사는 자들이 늘어만 가고 있으니 너무 비감에 젖게 된다. 죽으면 한 줌의 재만 남을 것을. 만약에 아내가 눈물도, 아픔도, 죽음도 없는 천국에 가 있다는 사실만 없다면 이처럼 허무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어느 날 호텔에서 음식을 먹으며 ‘이 음식은 아내가 좋아하던 요리인데, 아쉽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이 믿음이 없는 목사야, 그 사람은 지금 눈물이나 아픔, 고통이나 죽음도 없는 저 좋은 낙원에서 매일 화려한 경치를 생명 과일과 최고의 음식을 먹고 있지 않은가?’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리면서 얼굴을 붉힌 적이 있었다. 이제 장례식을 치룬 후 100일이 되어감에도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삶 넘어 죽음의 세계가 저 가까이 보이는 듯싶다.

 

밤마다 기도할 때마다 천국에서 아내가 같이 기도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장례식 때 내가 목회하면서 수도 없이 전하던 말씀을 후임자 목사를 통해서 들으면서 가슴에 깊이 박히는 것을 느꼈다. 성남 화장터로 장례 버스를 타고 가면서 홍익교회 상례위원들이 부르는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라는 찬송을 들으며 강 저편에 아내가 서 있는 느낌이 들면서 눈물이 솟구치는 것을 체험했다. 성지순례 때 요단강을 가보고 청계천이나 다름없이 작음에 놀랐다. 그렇다. 삶과 죽음의 거리도 요단강처럼 가깝다.

 

아내와 전날까지도 서로 웃으면서 대화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떠날 수 있다니, 죽음은 바로 옆에 있었다는 말인가? 오늘도 산책을 하며 두 명의 노인을 만났다. 부인에게 부축받으며 쩔룩거리며 걷는 남자 노인과 보행기를 힘들게 끌고 가는 80대 여자 노인을 보았다. 그들에게서 삶과 죽음이 동행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장례 찬송을 부를 때마다 천국 가는 길을 왜 ‘요단강 건너가는 것’으로 묘사했을까 의구심을 품고는 했다. 그러나 아내를 떠나보내면서 삶과 죽음의 거리가 요단강 폭만큼 가깝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저 건너편 강 언덕에 아름다운 낙원 있네” “저 요단강 가 섰는데 내 친구 건너가네.” “내 본향 가는 길 보이도다” “이곳과 저곳 멀잖다. 주 예수 건너오셔서 내 손 잡고 가는 것 내 평생소원이로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하룻길 되는 내 본향” “만나보자 만나보자 그날 아침 그곳에서 만나자.” 앞서간 신앙인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서 보았기에 위와 같은 위대한 찬송 시(詩)를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이 경계선에서 어떠한 결심을 해야 하는가? 삼층천(三層天)을 경험한 사도 바울은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원하노라.”고 외쳤다. 이 말씀에 정답이 있다. 우리가 몸으로 있는 동안 받은 달란트를 잘 감당하며 내 주변에서 고통받고 있는 주린 자, 목마른 자, 헐벗은 자, 병든 자, 나그네된 자, 갇힌 자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것이 주를 기쁘시게 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주여, 남은 세월 노욕(老慾)으로 낭비하지 않게 하시고 사회적인 약자들을, 또한 노년에 힘들어하는 은퇴 목회자들을 돌보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특별히 목회하는 큰아들, 선교 방송하는 작은아들, 초대교회와 같은 한국공동체를 설립하고 있는 딸과 사위를 위해 날마다 기도의 손을 높이 들게 하옵소서. 그러므로 주 앞에 설 때에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앞서간 성도들과 아내를 반갑게 만날 수 있게 남은 생을 붙들어 주옵소서.”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