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6:6-10) 
 
1.
어느 대학 철학과 윤리학 기말 고사에, 이런 시험 문제가 주어졌습니다. “용기에 대하여 논하라.” 오픈 북 테스트였기에 한숨 소리가 간간이 들렸지만, 모두들 책을 뒤적이며 답을 쓰기 바빴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강의실 한 구석에서 한 학생이 시험 시작 5분도 채 안 되었는데 책가방을 들더니 시험지를 내고 당당히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조교를 비롯해 모든 학생의 이목이 쏠렸습니다. 동시에 모두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에구, 미친놈, 오픈 북 테스트인데 뭐라도 좀 쓰지.”
 
그런데 나중에 그 녀석에게 물어보니 그 시험에서 유일하게 A 학점을 받았습니다. 도대체 “용기에 대하여 논하라”는 문제에 뭐라고 썼기에 그랬는가 했더니 이렇게 쓰고 나왔답니다. “바로, 이. 런. 것.” 다섯 글자로 끝내버렸답니다.
 
신앙에 대하여 논하라는 과제가 주어질 때, 수많은 말, 이론, 설명보다 때로는 이렇게 “바로, 이. 런. 것.”이라고 짧고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 이렇게 신앙이 무엇이냐 라는 물음에 “바로, 이. 런. 것.”이라고 답해야 하는 2023년의 마지막 주일,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지난 1월 1일 새해 예배 때 빌었던 소원들은 어떻게 되었는가요? 그대로 이루어졌는가요? 아마도 이룸을 받은 분들도 많을 것이고, 아직 응답이 없는 분도 있을 것이며, 오히려 엉뚱한 응답이 주어져 당황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소원대로 응답받은 분들은 더욱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할 것이고, 응답받지 못한 분들은 더욱 기도에 힘쓰며 소망을 가져야 할 것이며, 엉뚱한 응답을 받아 당황하는 분들은 곰곰이 주님의 뜻을 생각해 보고 그 길을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기도하며 최선을 다해 온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서는 이런 자격도 없습니다.
 
그런데 최선을 다했는데도, 열심히 기도했는데도 이루어지지 않거나 엉뚱한 결과가 주어지는 이유들이 뭘까요?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날까요?
 
2.
바울은 자칭 이방인의 사도라고 하며 이방 선교, 즉 세계 선교를 위해 힘쓴 인물로 모두 3차례에 걸쳐 세계 선교를 하여 많은 교회를 세웠고, 마침내 당시 세계의 중심이요 끝이라고 여기던 로마까지 가서 전도하고 그곳에서 순교하였습니다. 그는 선교의 열에 불타던 사람이었고, 자신의 말대로 예수에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바울이 2차 세계 전도 여행을 떠났을 때 일어난 일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날처럼 교통이 발달하지도 않은 시절에 여기저기 걸어서 걸어서 여행하며 전도하던 바울은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전도하다간 어느 세월에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이럴 게 아니라 지혜롭게 해야겠다.’ 그래서 그는 당시 중요한 도시들이 모여 있는 아시아 지역을 집중 전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 지역의 중심적인 큰 도시들을 복음화하면 자연히 그 주변 지역으로 복음이 퍼져 나갈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시아로 들어가려고 하였습니다. 아시아란 오늘날 우리가 사는 아시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소아시아, 그러니까 터키 남서부 쪽을 말합니다. 이곳은 당시 세계의 상황으로 보아 상당히 중요한 지역이었으며, 에베소가 그 중심 수도였고, 그 외 큰 도시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이런 바울의 선교전략은 적중하여 이 지역에 얼마나 큰 교회들이 생겼는지 모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7교회 - 에베소, 서마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대,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 가 모두 이 지역의 교회들입니다.
 
그런데 6절에 의하면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바울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전도는 시와 때가 없다고 하였는데, 왜 전도를 하려는데 성령이 못하게 하는가요? 사탄이 막는다면 이해가 되는데, 성령이 막는다구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북쪽으로 올라가 산간벽지를 다니며 선교하다가 서쪽으로 가서 소아시아 위 쪽 지역에 머물러서, 성령이 소아시아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으니까 이번에는 소아시아의 반대 방향인 북쪽으로 올라가자 하고 비두니아로 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엔 예수의 영이 또 허락하질 않았습니다. 예수의 영이란 성령의 별칭입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성령께서 비두니아로 가서 전도하는 것도 금한 것입니다.
 
바울은 답답했습니다. 왜 전도하겠다는데 막는 걸까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버려 두고 일하는데 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걸 막을까요?
 
가끔 우리도 이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요? 주의 일을 하겠다는데, 주님의 영광을 위해 뭐 좀 하려는데 잘 안되고 실패하고, 다투고 하는 경우 말입니다.
 
어느 교회 집사님 아들이 입시에 떨어지고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불평하였습니다. ‘내가 붙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데, 왜 하나님은 나를 떨어뜨렸습니까? 내가 대학에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겠다고 했는데, 대학 졸업해서 그리스도인으로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주의 일에, 선교 사업에 크게 쓰겠다고 했는데 왜 나를 떨어뜨렸습니까? 왜?’
 
글쎄 ...,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겠다는데, 주의 일을 위하여서라는데 왜 안 되는가 말입니다. 왜 금하는가 말입니다. 이 길은 분명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길이고, 나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일,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인데 왜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냔 말입니다.
 
3.
바울은 할 수 없이 무시아를 지나 서진(西進)하여 드로아에 이르렀습니다. 드로아뿐이 갈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게 하고, 위로 올라가지도 못하게 하고, 뒤로 돌아가지도 못하니 어쩔 수 없이 앞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해서 드로아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 드로아는 육지가 끝나는 해변 도시였습니다. 거긴 땅 끝이었습니다. 더 나아갈 데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바울은 정말 하나님의 인도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할 일이 많은 소아시아 지역으로 가겠다는데 그 중요한 지역은 못 들어가게 하고 할 일도 없어 보이는, 아시아의 끝인 이곳으로 인도하셨을까요? 내가 주를 위해 일함에 있어서 그처럼 원했던 곳은 못 들어가게 하시고 왜 엉뚱한 곳으로 인도하셨는가요?
 
남들이 보기에도, 그토록 소망하고 기도하고 열심을 내는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것이 더 좋을 텐데, 은혜스러울 텐데 왜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정반대의 상황으로 몰고 가셨는가요? 만인이 자기가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사는 사람인 것을 다 아는데, 그래서 내가 잘되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은 과연 살아 계시다고 영광 돌릴 텐데, 왜 길을 막느냐 말입니다.
 
이러한 바울에게, 할 일이 없다고 여기던 드로아에서 드디어 환상이 주어졌습니다. 그것은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바울에게 손을 흔들며 건너와서 자기들을 도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마게도냐 사람이라 하는 것은 유럽인, 아시아인과는 생김새가 다른, 코가 크고 피부색이 흰 백인종을 말합니다. 바울은 아시아인, 즉 황인종입니다. 그에겐 언제나 황인종 아시아인에게 향한 복음의 열정만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백인종, 유럽인들이 환상 중에 나타나 바울에게 유럽으로 건너와서 도와 달라고, 즉 복음을 전해 달라는 선교 사역을 요청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 그는 바닷가인 드로아에서 아시아의 끝이라고만 생각했지, 바다를 보고 더 이상 나아갈 데가 없다고 생각했지, 그 건너편의 유럽을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 건너편의 무한한 가능성을 생각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울 자신이 구하지도 않았는데, 미처 생각지도 못했는데, 선교에 삶의 최대 가치를 두고, 그것에 최고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 예수 전하다가 죽기를 최대의 영광으로 아는 이 사람 바울에게 유럽 전도의 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자기가 기도하던 대로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결국은 아주 놀라운 길로 하나님께선 인도해 가신 것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큰 것을 예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자기는 자기가 기도 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불안해하고 있을 그 시간에 주님께선 그런 바울을 위해 유럽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4.
열심히 두드리는데 열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기도하고 기도해 왔는데 도무지 응답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확신을 갖고 두드리는데 이루어지지도 않고, 엉뚱한 응답이 주어질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했음에도 실망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닌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인데 응답하지 않으실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런가요?
 
우리가 가는 길, 우리가 잘 알지 못합니다. 길 찾기 게임을 해보았는가요? 분명히 이 길이 중심부에 연결되어 있을 것 같은데, 실지로 나름대로 확신을 갖고 줄을 긋다 보면 얼마 못 가 벽이 나오곤 합니다.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요? 사랑의 미로(迷路)란 노래가 있던데, 사랑만이 미로가 아니라 인생 자체가 미로입니다. 적어도 우리 인생들에게 있어서 말입니다. 저 앞에 무엇이 있겠다, 길이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요리조리 길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예상치 못했던 벽에 부딪히고, 계속 제자리 맴돌 뿐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미로 안에 있다는 것과 미로의 끝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벽 저 편을 보지도 알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 인생을 내려다보고 계시는 하나님은 나의 인생 미로 전부를 보고 계십니다. 그리곤 나를 인도하십니다.
 
이 신실하신 나의 인생의 인도자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인생의 미로에 선 우리를 향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시32:8)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시37:5-6)
 
두드리다 안 될 때에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눈을 현실에서 내 영혼의 목자, 그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리십시오. 이러한 때일수록 현실에, 문제에 집착하다 보면 그것은 더욱 커질 것이고, 마침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문제 덩어리로 자신을 누를 것입니다.
 
오직 초점을 하나님께로 향하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향하십시오. 그리할 때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계속 나아갈 것이고 마침내 하나님의 또 다른 선한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기 기도대로, 소원대로 올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보다 나은 것을 주님께서 보시고, 자신을 이끄시며, 훈련시키고 있음을 믿고 오직 끝까지 말씀에 순종하여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갑시다.
 
세계적인 땅콩 생산지인 미국의 앨라배마 주의 엔터프라이즈에는 이러한 기념비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목화를 갉아 먹던 벌레에게 감사한다. 이 벌레는 우리에게 번영의 계기가 되었고, 하면 된다는 신념을 심어 주었다. 목화벌레들이여! 다시 한 번 그대들에게 감사한다!’
 
무슨 소린가 하면, 앨라배마 주는 19세기까지만 해도 목화 생산이 주된 사업이었습니다. 그런데 1895년 난데없이 목화 벌레 떼가 나타나서 목화를 갉아 먹기 시작했습니다. 이 벌레로 인하여 그 해 농사는 완전히 망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힘겨운 한 해를 겨우 보냈는데 그다음 해에도 또다시 목화 벌레가 떼를 지어 극성을 부려 많은 농장이 파산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앨라배마 주의 목사와 성도들은 예배당에 모여 함께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는 중 그들은 성령의 감동 속에 하나님께 말씀을 하나 받았습니다. 로마서8장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기도해도 없어지지 않는 목화벌레 떼 때문에 마음 상해 있던 농민들, 그래서 은근히 하나님을 원망하던 농민들은 이제 하나님께 원망하지 않고 그들에게 시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얼마 못 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잡게 되었습니다. 목화 농사만 하면 벌레가 오니 목화를 버리고, 땅콩을 심기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땅콩을 심었더니 그 비옥한 땅에 풍년이 들었고, 그리고 그것은 더 높은 수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게다가 얼마 후 산업의 발달로 값싸고 질긴 나일론실을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게 되자 목화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만약 목화밭을 계속 고집했더라면 그들은 더 큰 어려움에 절망했을 것입니다.
 
그토록 간절히 기도 함에도, 그토록 성실하게 살았음에도 기대한 대로 되지 않을 때, 실망스럽게 결과가 틀어질 때, 이때 자신이 정말 하나님의 백성, 자녀임을 믿는다면, 뭔가 하나님께서 보신 특별한 것이 있음을 믿으십시오. 뭔가 있음을 믿으십시오.
 
때가 되면 그 뭔가가 정체를 드러낼 텐데, 그것은 내게 화(禍)가 아니라 복(福)임을 믿습니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시30:11)
 
5.
왜 잘 안 풀리는 걸까요? 그토록 노력하고, 성실했음에도 왜 이렇게 힘든 걸까요? 내 뜻과 의도도 악하지 않고 선한 것인데 왜 이리 엉뚱한 일들만 생기는 걸까요?
 
뭔가가 있습니다!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습니다. 내 능력, 내 경험, 내 실력, 내 발로는 종내 발견할 수도 없고, 과감히 내딛을 수 없는 기막힌 그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두드리다 안 될 때, 기대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을 때, 더욱 주님의 그 선하시고 신실하심을, 사랑을 기억하고 인내하며 순종하십시오. 더욱 나은 삶이 주어질 것입니다. 참된 신앙이란 무엇인가를 단순한 신뢰의 삶으로 ‘이런 것이다’라고 보여주십시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5-6)
 
뭔가 있습니다. 낙심하지 말고, 더욱 믿음과 신뢰를 키웁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 인생의 목자이신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며, 새해를 맞이합시다. 그 뭔가가 여러분에게 마침내 큰 복이 될 줄 믿습니다!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