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슬부슬 내리는 장마비를 뚫고 어슴푸레 밝아오는 거리를 종종걸음을 쳐 지하철로 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개 오륙십 대의 지긋한 나이에 가방을 들거나 등산배낭을 매고 있는 모습이 언뜻 등산이나 나들이 가는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피곤한 삶의 현장 일터로 가는 사람들이다.

미아삼거리역 승강장은 벌써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자주 만나는 사람들은 아침인사도 건네고 같은 일터,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는 모습이 출근 시간대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의자에 앉은 채 눈을 붙이며 부족한 새벽잠을 보충하는 사람들도 간간이 눈에 띈다.

어줍잖게 인터뷰를 하자고 하기도 쑥스럽고 또 그런 제의를 해보았자 좋은 반응을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 같아 오십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나누는 대화에 끼어 들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여기까지 왔는데, 지하철로 안산까지 가면 요금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네."
"요금이 올라서 전보다 아마 이 삼백 원은 더 내야 될걸."
"아닙니다. 마을버스요금을 따로 계산하지 않고 전철요금과 합산하여 계산하기 때문에 요금이 올랐어도 전에 내던 요금 정도면 될 것 같은데요."

내가 아는 척을 하며 끼어 들자

"아, 그래요, 요금이 어떻게 되는 건지 우리 같은 사람은 계산하기도 어렵고 그냥 내라는 대로 내는 수밖에"하며 말끝을 흐린다.

어제부터 새롭게 시행하는 버스와 지하철 통합대중교통 요금체계로 일반인들은 자신들이 감당할 유리한 것과 불리한 것에 대한 확실한 계산을 아직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제는 버스들이 대부분 무임승차를 시켰고, 지하철 전철도 시스템 장애로 오전 중에는 대개 무임승차를 하였기 때문이리라.

안산 쪽에 있는 중소 제조업체에서 일한다는 그는 아무래도 인상된 대중교통요금이 신경이 쓰이는 눈치다. 한 달에 얼마나 받느냐고 슬쩍 물어보자 돈 백만원 받는다며 멋쩍게 웃는다.

자식들 다 출가시켜 부인과 단둘이 산다면서 그래도 일터가 있어 어렵게 사는 자식들에게 손 안 벌리고 아쉽지 않게 산단다. 오늘은 잔업을 해야하기 때문에 도시락을 두 개나 가지고 간다고 묵직한 가방을 들어 보인다.

요즘 경제가 어렵다는데 작은 업체라 언제 문을 닫고 그만두라고 할지 몰라 그것도 걱정이라면서 씨익 웃는 모습이 소박하기 그지없다.

열차가 들어오자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도 줄의 끄트머리에 따라서서 질서정연하게 승차를 한다. 옛날의 무질서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는 것이 새삼스럽게 감동적이다.

차안은 이미 만원이다. 앉을 자리는 고사하고 서있기에도 복잡한 상태다. 새벽 공부를 하러 가는 학생들도 보이고 어제 밤새워 술을 마신 듯한 젊은 사람들 몇이 차안에 짙은 술냄새를 풍겨 얼굴을 찡그리게 만든다.

바로 옆에 육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할머니 둘이 소곤소곤 얘기를 나누고 서 있다. 나도 작은 소리로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자 광화문으로 가는 길이란다.

두 분이 같이 가느냐고 다시 물으니, 짝꿍이니까 같이 다닌단다. 웃으면서 눈을 크고 둥그렇게 뜨며 놀라는 표정을 짓자 광화문에 있는 회사 빌딩에서 같이 청소를 하기 때문에 같이 출근하고 같이 퇴근하는 이웃사촌 짝꿍이라는 것이다.

일하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힘은 좀 들지만 일할 수 있는 것이 즐겁고 기쁘단다. 일 할 수 있기 때문에 많지 않은 돈이지만 그 돈으로 손자들에게 과자 값도 주고 할아버지 담배 값도 준다며 그게 어디냐고 웃는다.

바로 곁에 서있던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우리들의 얘기를 들으며 따라 웃는다. 남대문 인력시장으로 가는 길이라서 회현역까지 간단다. "오늘은 꼭 일을 해야할 텐데"하고 말끝을 흐리고 내일은 영등포 쪽으로 가봐야겠다면서 허탈하게 또 웃는다.

동대문운동장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는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자 차안은 텅 빈 느낌이다. 갈아타는 사람들은 강남 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을지로 쪽으로 가는 사람들보다 곱은 많아 보인다. 새벽 일자리도 역시 강남인가 보다.

새벽의 여명을 깨우는 지하철의 첫 차에는 서민들의 고단하지만 소박한 꿈과 애환이 짙게 배어 있었다.

 

/홍익교회 장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