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 목회지원실과 목양실에 디지털 버튼식 자물쇠를 설치했습니다.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서 열쇠를 교체한 것입니다. 저 역시 열쇠를 잊고 다녀서 내 방이지만 들어가지 못하고 마스터키를 가진 관리장을 불러야 하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버튼식 자물쇠가 편리합니다. 이 디지털 열쇠는 참으로 정확합니다. 버튼만 정확히 누르면 누구에게든지 문을 열어 주지만 조금만 틀려면 주인인 제게도 절대로 문을 열어 주지 않습니다. 바쁠 때는 야속하기까지 합니다. 조금 틀리더라도 주인인 나에게 쯤은 그냥 문을 열어 줘도 될 법도 한데 절대로 안된다고 버팁니다. 바쁘게 문을 열어야 할 때에는 버튼 한 두 개 쯤 생략을 하더라도 열어주고, 한 두 개쯤 틀려도 그냥 열어주면 좋을 텐데 꼭 정확하게 버튼을 다 눌러야만 열어주니 말입니다. 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정확하게 버튼을 누르더라도 거부해야하는 데 그냥 아무에게나 다 열어줘 버립니다.

그렇습니다.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기계는 정확합니다. 주인이든 아니든 정확히 버튼만 누르면 아무런 이의 없이 공평하게 문을 열어 줍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 기계의 정확성입니다. 주인이든 도적이든 예외가 없습니다. 틀리게 누르면 주인도 거부하고 바로 누르면 도적에게도 열어 줍니다.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도 기계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참 정직하고 정확합니다. 거짓말은 절대로 용납하지 못합니다. 남에게 덕을 끼치지도 않지만 손해를 끼치지도 않습니다. 원칙대로 하면 언제나 오케이지만 원칙에서 벗어나면 누구든 용납하지 않습니다. 공평하기도 하고, 정직하기도 하고, 옳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융통성이 없고 인간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정한 자기 원칙에 따라서만 반응하고 자기 한계를 못 벗어납니다. 사실의 내용이나 정서적 환경, 그리고 사안에 따른 특수성이나 종합적인 판단을 통한 융통성 보다는 늘 형식논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정직하고 정확하지만 답답합니다. 기계처럼 정확하지만 기계처럼 답답하고, 기계처럼 정직하지만 기계처럼 차갑습니다. 자신의 경험이나 전이해의 한계를 넘는 창조성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범죄처럼 생각하여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고착된 자신의 잣대로 평가하기 때문에 자신과 다른 잣대를 용납하지 못합니다. 과정이 생략되거나 상황으로 설명을 대신할 수 없고 당연한 결과로도 이해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나가기 힘들고 결국 제자리에 머물게 됩니다.

시대가 너무 혼란하고 억지가 판을 치는 세상이기에 이런 정확하고 정직한 기계적 영성의 소유자도 필요합니다. 어디로 튈지도 모르는 막무가내의 엽기적인 사람도 많고‘아니면 말고’식의 거짓말이나 부정확한 정보를 사실인양 떠벌리며 사람을 혼란하게 하는 무책임한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에 참으로 정직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손해를 보고 불이익을 당해도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아닌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정직하고 정확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정직하다고 융통성이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니며, 정확하다고 한계 안에 갇혀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헐렁하고 때로는 실수도 하며 허점이 있더라도 남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남의 좋은 일을 함께 좋아하는 좀 더 인간적인 사람이 더 좋습니다. 좀 부족해도 융통성이 있는 사람냄새 나는 사람이 더 좋습니다. 빈틈없이 완벽하기 보다는 좀 여유가 있는 사람, 눈으로만 보는 사람보다는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사람, 수치로는 계산할 수 없지만 실제적인 필요를 아는 사람, 아집에 붙들리지 않고 비전을 위해 모험을 하고 그림을 귀로 감상할 수 있고 음악을 눈으로도 볼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래서 차가운 기계 보다는 따뜻한 사람이 더 좋습니다.

/신양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