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친위내각을 구성했다. 친위내각. 이건 정권 말엽에서 볼 수 있다. 비단 임기가 정해진 권력이 아니라 종신 독재 권력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종반기에는 흔히 저급하게 충성하는 측근들이 내각과 청와대를 주름잡았다. 그리고 대통령과 함께 몰락했다.

그렇다면 어떤 사유로 친위 인사들로 포진했느냐. 우선적인 이유는 새 인물이 외면하고 있기 때문을 들 수 있다. 여론의 지지를 얻는 권력이라도 참여에 신중을 기할 텐데, 국민들의 반대 정서가 농후한 정권에 한 배를 탔다가 나중에 역적 취급당할 지 모를 상황을 자초하겠나. 이런 측면도 있다. ‘이 놈 저 놈 써봤더니 아니었다. 믿을 것은 내 사람 뿐’이라는 집권자의 인식이다. 어쨌든 코너에 몰리면 이렇게 된다.

문제는 측근들로 구성된 참모진과 더불어 다시 상승무드를 탔던 권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측근들에게 직언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며, 이런 ‘예스맨’에 둘러싸인 대통령은 제 멋대로 해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임기말 징후’는 또 있다. 공안국가 건설이다. 과잉 진압 논란에 휘말린 김석기 씨를 후임 경찰청장에, 검찰 내 ‘꽃보직’으로 통하는 서울중앙지검장 자리에 대표적인 공안통인 천성관 씨를 앉힐 모양이다. ‘법과 원칙이 서는 나라’를 표방했지만 ‘공안 정국’을 조성해 권력을 지탱하려는 의도를 모르는 이들이 없다. 오프라인에서는 시위를 억누르고, 온라인에서는 반대여론의 제압하려는 것이다.

결국 심각한 뒷탈이 발생했다. 설 연휴를 채 일주일도 안 남겨둔 시점에 생존권을 외치며 점거 농성 중이던 철거민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사고는 이들이 인화성 물질인 시너 병을 수십 개나 쌓아놓고 화염병을 던지는 등 격렬하게 저항하는 상황에서 경찰이 무리하게 병력을 투입하다 발생했다. 책임자는 누구일까. 이번 농성 진압에 투입된 경찰특공대가 서울지방경찰청 직할 부대란 점을 감안하면 서울지방경찰청장을 단연 꼽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이틀 전 차기 경찰청장으로 내정된 김석기 씨이다. 김석기 씨는 작년 7월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부임한 이후 최루액을 사용해 시위대를 진압하고 촛불 수배자를 검거한 경찰관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했던 인물이다. 불과 이틀 점거 농성한 시위대를 대테러작전에나 투입하는 경찰특공대에게 상대하라고 한 점, 명백한 과잉 진압이 아닐 수 없다.

법 그 위에 법 중에 ‘국민정서법’이란 게 있다. 아무리 위법이라도 국민정서에 합하면 그것은 관용의 대상이 된다.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등 온갖 법규를 다발로 위반했지만 국민적 기념일로 승화된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을 보라. 용서 정도가 아니라 역사적 족적이라며 추앙받고 있지 않나. ‘미네르바’가 설령 일부 오류가 있는 주장을 펼쳐 위법성을 남겼더라도 다수 국민은 처벌을 반대한다.

거꾸로 합법이라도 국민정서에 반하면 그것은 저항의 발화점이 될 수 있다. 일체의 법리적 하자가 없는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결의’ 당시 어땠나. 합법이어서 모두 수긍했던가. 불법 점거 농성하며 화염병까지 던진 철거민 진압. 철거민의 저항이 과하고, 경찰력 투입이 법리에 부합하더라도, 국민들을 들끓게 하고 있는 이유를 목도해야 한다.

대법관 출신인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의 설명이 그런 점에서 주목된다. 지난 1월 11일에 발언한 것이다. "실정법을 위반하기만 하면 처벌대상으로 보는 형식적 법치주의는 국가독재시대의 유물이다. 이제는 행위의 의도와 내용 등을 입법취지에 비춰보고, 사회적 정의 관념에 부합하는지 가려 처벌 여부를 결정하는 실질적 법치주의 시대"라고 . ‘법이 힘 있는 자보다 없는 자의 필요 속에 생겨난 것’임을 안다면 어렵지 않게 이해될 문제이다.

여기에 반하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아전인수 법치’이다. 기실 이명박 대통령이 ‘법과 질서’를 강조할 때마다 반사적으로 인터넷에는 ‘전과 14범 주제에...’라는 조롱이 쏟아진다. 이런 설득력 없는 법치. 더 큰 저항만 불러올 뿐이다.

올 봄 또다시 대소요가 예측된단다. 이 전망은 소위 '친북좌파세력'이 한 게 아니다. 청와대 실장이 한나라당 친박계 의원들을 모아놓고 내놓은 것이다. 예측에 대비해 청와대가 제시한 대안은 그런데, 공안 경찰, 공안 검찰 중용이다. ‘국민과 한 판 붙어보겠다’는 뜻 외에 달리 해석될 여지가 있을까.

국민과의 소통을 거부하며 저항세력을 짓밟고, 친위대를 자기 주변에 둘러 세운 권력자 중에 오래간 현대 민주주의 국가는 전무하다. 지금 이명박 정부는 2009년의 대한민국이 현대 민주주의 국가인지, 북한 같은 1인 독재국가인지를 가늠해보려는 것인가. 칼을 든 자 칼로 망하듯, 힘으로 선 자 힘으로 망한다. ‘국민의 힘’을 실험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