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앨런 씨의 회한

89살 미국인 유진 앨런 씨 이야기이다. 1952년부터 34년간, 그러니까 트루먼 행정부부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까지 백악관 집사로 일했다. 이번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에 초대됐다고 한다. 앨런 씨는 그런데, 흑인이다.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이 분의 이야기가 지난해 11월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에 소개됐다고 한다. 그러자 취임식 준비위원회는 이 기사를 보고 앨런 씨를 취임식에 초청했다고 한다. 앨런 씨는 “많은 대통령을 위해 일했지만 취임식에 오기는 처음”이라고 소회를 밝혔다고 한다.

그가 했던 일은 주방에서 더러운 접시를 닦는 것이었다. 처음 일할 당시 흑백 인종차별이 심해 백악관의 뒷문만을 이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앨런 씨는 집사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그러나 “34년간 한 번도 결근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고 한다. 물론 앨런 씨는 흑인 대통령이 당선되는 일은 기대하지 못했다. 하지만 꿈은 이루어졌다. 한편 앨런 씨는 취임식에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지켜보며 “얼굴이 좋아 보인다. 카터 전 대통령이 나를 캠프 데이비드로 데려간 적도 있다”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나에겐 꿈이 있다” 이런 연설을 했는데, 그 꿈이 이뤄진 셈이다.

○…존재가치에 대하여 1.

어제 오후 인천 구산동 인천중앙병원 재활전문센터 목조형디자인교실. 공사장에서 허리를 다친 뒤 10년째 이 병원에서 치료중인 45살 임정곤 씨가 휠체어를 탄 채 사포를 쥐고 '쓱쓱' 소리 나게 나무 액자를 다듬고 있었다. 7개째다. "이 병원에 입원 중인 아이들에게 설 선물로 나눠주려고 해요. 12살 된 내 아들 또래의 아이들이 명절에 세배도 못하고 입원해 있는 것이 안쓰러워서요." 병원장부터 간호사까지 이 병원 사람들은 모두 임씨를 '아낌없이 주는 주꾸미 아저씨'라고 부른다. '주꾸미'는 자꾸 머리가 빠지자 주변 사람들이 붙인 애칭이다.

임정곤 씨는 한때 일 잘한다고 소문난 인테리어 업자였다. 그런데 11년 전 동두천 미군부대에서 건물 신축 공사를 하다가 2층에서 떨어졌다. 깨어났을 때는 허리 아래가 아무 감각이 없는 재해장해1급 장애인이 됐다. 결혼한 지 1년 된 아내가 생후 100일 된 아들을 안고 울고 있었다. "살기 싫어서 곡기를 끊었다가 몸무게가 40㎏까지 줄어든 적도 있고, 베개 밑에 수면제 한 움큼을 모았다가 아내에게 들켜 대판 싸운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다 2003년 새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재활프로그램으로 목공예를 배우면서다. 임정곤 씨는 동네에서 버려진 원목을 주워다가 휴지 걸이, 액자, 열쇠고리, 연필꽂이 같은 물건을 만들어서 병원 친구들에게 나눠줬다. 휠체어를 탄 채 식사하던 노인이 식판을 엎는 것을 보고 휠체어에 꽂을 수 있는 밥상을 만들어줬다. 임정곤 씨는 물리치료 받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병원 작업장에서 하루를 보낸다. 임정곤 씨의 힘의 원천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면, 나도 '쓸모 있는 인간'이라며 드는 생각, 이것이다. <조선일보>가 전한 소식이다.

○…존재가치에 대하여 2.

남미 에콰도르의 최대 도시인 과야킬. 도시 이름이 으스스하지? 실제로도 그렇다. 이곳은 한때 ‘폭력 도시’로 악명이 높았다. 인구 300만 명 중 6만 명이 폭력조직원이었다. 총격전과 칼부림이 끊이지 않았다. 한 달에 살인사건이 100건 이상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거리는 평온하고 폭력조직에 몸담았던 젊은이들은 빵집, 미장원 등에서 즐겁게 일하고 있다. 범죄 건수는 예전의 40% 수준으로 줄었다. 이유는 무엇일까. 일간지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가 67살 여성 넬사 쿠르벨로 씨를 꼽았다. 수녀, 교사, 인권활동가로 뛰는 여성이다.

비결이 무엇일까. 2년 동안 그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거리에서 조직폭력배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이 왜 조폭이 됐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쿠르벨로 씨는 “그들은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딘가에 소속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씨는 회고했다. 조폭에게 폭력은 존재를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보통 조직원들을 교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폭력조직에서 탈퇴하도록 유도하지만 쿠르벨로 씨는 오히려 조직에 계속 남아 있으라고 권했다. 그들에게는 ‘소속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폭력조직 자체를 바꾸는 방식을 선택했다. 폭력조직 지도자들을 만나 폭력을 포기하고, 자부심과 경제적 안정을 가질 수 있는 일을 찾으라고 설득했다. 그것이 이곳에 폭력을 잠재운 요인이었다. 존재가치. 인간성 회복의 가장 큰 단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