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수안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서 태어난 김창식은 철들면서 농촌생활에 더 이상 희망이 없음을 알고 열다섯 살 되던 해, 집안 식구들 몰래 가출하였습니다. 남의 집 머슴살이나 마부, 지게꾼, 장돌뱅이 같은 ‘밑바닥’ 일을 하며, 15년 동안 전국 팔도 아니 가 본 데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스물아홉에 박씨 성을 가진 여인과 결혼하고, 서울 남대문 안에 비로소 정착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서울 장안에 흉흉한 소문이 떠돌았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조선 아이들을 데려다 지하실에 가두어 놓고 하나씩 잡아먹는다더라.” “예쁜 애들은 밤에 끼고 자고, 싫증나면 자기 나라에 노예로 팔아넘긴다더라.” 이 소문에 발단은 이렇습니다. 1888년 여름, 3년 전 서울에 들어온 선교사들이 학교를 세우고 고아와 가난한 집 아이들을 데려다 가르치면서 본격적으로 선교활동을 전개할 무렵이었습니다. 이를 시기한 수구파에서 선교를 방해하려는 목적에서 ‘헛소문’을 퍼뜨린 것입니다. 흥분한 사람들이 소문의 진위도 확인하지 않은 채,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학교와 병원에 난입하여 때려 부셨습니다. 선교가 중단될 절대 위기였습니다. 이를 ‘영아소동'(baby riot)이라 합니다.

결혼하여 남대문 안에 살고 있던 김창식도 그 소문을 듣고 흥분했습니다. 그는 소문의 진상을 파악하고자 선교사들이 조선 아이를 ‘잡는’ 현장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는 이를 위해 선교사 집에 들어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오늘날 말하면 위장취업입니다. 그는 결국 올링거 선교사 집에 행랑아범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올링거는 성실하게 일하는 김창식을 ‘요리사’로 승진시켰습니다. 이젠 주인집의 내실까지 들어가 볼 수 있게 되자, 김창식은 더욱 예리한 눈길로 선교사 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기대했던 만행은 볼 수 없었습니다. 선교사 가족들은 오히려 정반대로 그를 정중하고 예절 바르게 대해 주었습니다. 하인을 인간 취급도 하지 않은 조선 양반들과는 질적으로 달랐습니다. 그는 종종 자신과 같은 밑바닥 사람에게 ‘인간 대접’을 해 주는 선교사들에게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종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김창식은 마침내 개종을 결심하고 올링거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령 체험을 합니다.

위장 취업해 들어간 지 2년만이었습니다. 그는 세례 받은 후 그는 전도 일에 나섰습니다. 1893년 의료 선교사 홀(W.J.Hall)과 짝이 되어 평양에 내려가 선교지를 개척하였습니다. 보수적인 평양에서는 선교사가 전면에 나서 일할 수 없는 형편이기에 김창식이 나서서 서문 밖에 선교사 사택과 병원, 학교, 교회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그 일로 그는 평양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평양 관찰사로 내려 와 있던 민병석은 선교사와 기독교를 아주 싫어했던 수구파 인사였습니다. 1894년 여름, 그는 평양에 기독교가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고 기독교 체포령을 내렸습니다. 그 때 김창식을 비롯해 평양의 장로교인과 감리교인 10여 명이 투옥되었습니다. 민병석은 이들에게 배교를 강요하며 매질을 가하는 한편, 뒤로는 선교사에게 사람을 보내 석방 대가로 돈을 요구했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평양 기독교도 박해사건’입니다. 평양판 ‘영아소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건이 터지자 홀은 서울에 있는 미국 공사관에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결국 1주일 안에 석방되었지만, 당시 배교를 거부한 김창식은 심한 매를 맞고 ‘거진반 시체가 되어’(행14:19) 실려 나왔습니다. 며칠 후 관찰사는 선교사를 찾아가 배상금을 물어야 했고 얼마 후 좌천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평양 주님들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평양 관찰사의 위세도 선교사와 기독교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 직후 청일전쟁이 일어났는데, 그 와중에 피난 가는 많은 이들이 교회에 짐을 맡기고 떠났습니다. 십자가가 달린 교회는 양쪽 군대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성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전쟁 기간 내내 김창식은 교회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피난 갔다 돌아와 고스란히 짐을 돌려받은 평양 주민들이 교회를 보는 눈이 달라졌음은 물론입니다. 전쟁 후엔 전염병이 창궐했습니다. 홀과 김창식은 제 몸을 돌보지 않고 환자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러다가 홀이 그 병에 걸렸는데, 결국 회생하지 못하고 그 해 겨울에 별세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평양 사람들은 감동하였고, 훗날 평양은 ‘조선의 예루살렘’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날이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약수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