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섬기는 교회에 L장로님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지금은 타 지역으로 이사 가셨습니다. L장로님은 70년대 초，한때는 한국 여성 수용복계(界)를 독점하다시피 재단과 생산 판매까지 사업을 잘하시던 분입니다. 그분에게도 이민 바람이 불어 남미로 이민을 갔다가 다시 어렵게 미국으로 재 이민하신 분입니다. 아시는 대로 미국은 남미나 한국과 달라 정착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영주권도 없었고，자본은 물론 영어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들어가서 일한 곳이 한국 분이 경영하는 태권도복 만드는 공장에 재단사로 취직이 됐습니다.

몇 년간 일을 했으나 호구지책도 어려워 세탁소에서 옷을 수선해 주는 곳으로 옮겨 일을 했습니다. 원래 재단사요 제품을 만드는 공장을 경영했던 분이기 때문에 옷 수선을 잘했습니다. 몇 년을 일하던 중에 이웃들의 권유와 도움으로 조그마한 "픽업 스토어"를 하나 구임해서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미국에 와서 일은 했지만 직접 손님을 대한 적이 별로 없고 영어도 딸리기 때문에 손님을 대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장로님은 원래 착하고 겸손한 분이었습니다.

손님들이 와서 세탁물에 대해서 불평이나 항의를 하면 무조건 죄송하다고 하면서 한 번도 대항해서 싸우는 적이 없었습니다. 질이 나쁜 손님들한테는 억울하게 손해도 보면서 친절하게 웃어 가면서 그 불평과 항의를 다 받아 주었습니다. 손님의 요구에 의해서 세탁물을 다시 빨아 주어야 할 때에는 세탁 공장으로부터 항의를 받습니다. 그러면 세탁 값을 다시 물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세탁물 하나하나를 자세히 살펴서 단추가 떨어졌다든지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무료로 수선해 주었습니다.

옆에 있는 분들이 장로님께 조언을 했습니다. ‘손님들 가운데는 질 나뿐 사람들이 있으니까 이렇게 하다가는 가게 문 닫습니다. 따질 것은 따지고 싸울 것은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질 나뿐 사람들은 받아 주질 말아야 합니다. 습관이 되면 나중에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L장로님은 아예 싸우려고 하질 않습니다. 영어가 딸리니까 싸워 봤자 의사 표현도 마음대로 못하고 억울한 마음만 더해 속상하니까 아예 기분 좋게 져 주자는 것입니다.

L장로님의 먼 조카뻘 되는 여학생이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문교부 유학시험을 거쳐 이곳에 유학 온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유학 온 학생치고는 영어 표현이 능숙했습니다. 발음도 좋고요. 이 학생도 주말이면 용돈을 벌기 위해서 일자리를 찾다가 세탁소에 들어가서 ‘캐셔’를 보게 되었습니다. 손님을 받으며 손님과 대화도하고 일도 해 보니까 별로 어렵지 않고 할만 해서 대학원을 대충 마친 후에 한국에서 돈을 가져다가 괜찮은 ‘픽업 스토어’ 를 하나 샀습니다.

장소도 좋고 고객도 질이 좋은 지역 이였습니다. 혼자서 옷 수선까지 해가며 운영을 했습니다. 똑똑하고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으니까 운영상에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가씨가 전에 방학 때 가끔 L장로님 가계에 와서 도와주면서 L장로님의 경영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기가 볼 때에는 L장로님이 답답하고 바보스러워 보였습니다. 저렇게 양보하고 손해 보면서 어떻게 사업을 한다는 말인가? 속이 상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 말씀도 드렸습니다. ‘미국에서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싸울 것은 싸워서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장로님은 그럴 때마다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아가씨는 자기 가계를 운영하면서 손님들의 불평이나 항의에 져 본적이 없습니다. 능숙한 영어로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손님을 이겼습니다. 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2년이 못되어서 그 가계 문을 닫았습니다. L장로님 가계는 계속 손님이 늘었습니다. 장로님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번창했습니다. 손님들과도 좋은 관계가 이루어져서 후에는 도움도 많이 받게 되었습니다.

L 장로님은 작은 싸움에 지고 큰 싸움에 이겼습니다. 그러나 조카 아가씨는 작은 싸움에 이기고 큰 싸움에 졌습니다. 인생에서나 목회에서 배워야 할 교훈입니다.

/워싱톤시온장로교회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