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시청률 사각지대로 통하는 저녁 7시대. 30%대를 돌파하며 파란을 일으키는 드라마가 있다. SBS 일일연속극 <아내의 유혹>이다. 절친한 친구와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고, 끝내 자신을 바다에 빠뜨려 죽이려 하는 겹 배신의 과정을 겪는 은재(장서희 역). 그녀의 복수 과정이 이 드라마의 핵심적인 이야기 틀이다. 특히, 간신히 목숨을 건져 일류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거듭나는 은재가, 불륜 끝에 부부가 된 친구와 남편의 가정과 사업을 서서히 코너로 몰고 있는 최근 스토리는 시청자들에게 폭발적인 반향을 모으고 있다.

▲ <아내의 유혹> 주인공 장서희 (구은재 역) ⓒ SBS TV 화면 갈무리

<아내의 유혹>에 대한 관심이 ‘반칙이 횡행하는 사회’ 속에서 확산되고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남의 행복을 가로채 본인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극중의 허구만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은재의 모든 행복을 빼앗아 간 애리(김서형 역)의 간계와, 과정과 근본을 중시하지 않고 결과를 성공의 척도로 규정하는 오늘 우리 사회의 왜곡된 현상이 한 궤를 이룬다는 것이다. 따라서 은재의 복수는 시청자, 특히 서민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내의 유혹>의 ‘복수’는 더 큰 허탈감을 주기도 한다. 은재가 복수하기 위해 갖추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의 실력, 탄탄한 부와 가정은 허황된 우연이기 때문이다. 동전 한 푼 없이 바닷가에서 간신히 살아난 전업주부가, 아무리 독기를 품었기로, 부요한 가정의 양녀로 들어가, 유학파 아티스트인 친구를 능가하는 실력으로, 치밀한 복수극을 펼친다는 것은 과장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 극의 결말이, 배신한 남편과 친구가 처절하게 망하는 것으로 나더라도, 부당한 승자가 독식하는 시대에 지치고 황망해진 대중에 위안을 주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상을 해 본다. ‘당한 대로 돌려 준다’며 세밀한 복수 시나리오를 꾸미는 극중 은재가 예수를 믿는다면. 그래서 로마서 12장 17절 앞에서 눈을 멈춘다면. 어떨까. 그 말씀은 이렇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물론 드라마가 이 말씀을 통해 회심하고 남편과 친구를 위해 복을 빌어주는 방향으로 갈 리 없다. 그러나 이것이 은재의 아픈 상처를 진심으로 보듬어 줄 수 있는 길이 ‘복수’일까. 그 ‘복수’에 사람들은 위안과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 '리벤지'를 쓴 로라 블루멘펠트 <워싱턴포스트> 기자

‘리벤지(복수)’라는 책이 있다. 로라 블루멘펠트라는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쓴 책이다. 유태인인 로라의 아버지가 예루살렘을 여행하다가 한 팔레스타인 청년으로부터 총격 테러를 당한다. 아버지 시신을 바라보며 로라는 범인에게 복수하기로 했다. 법원 기록을 뒤져 범인을 찾았다. 그런데 이 범인, 다른 혐의로 25년형을 받고 복역하고 있었다. 그래서 범인의 집을 찾았다. ‘당한만큼 돌려주리라’ 이 마음으로 말이다. 그런데 문을 열어준 범인 가족들은 로라를 극진히 환대했다. 미국 기자라며 무조건 위해준 것이다. ‘복수해야 하는데...’ 이 마음은 점점 옅어졌다. 심지어 자기 이름을 따서 곧 낳을 딸 이름을 짓겠다는 이모의 말도 들었다. 그녀는 복수를 결심한지 몇 년 안 돼 아버지를 저격한 남자에 대해 선처를 호소한다. 복수하는 것 대신 용서하기로 했다. 훗날 로라는 이 범인에게서 이런 편지를 보냈다. "당신이 이겼다. 두 번 다시 다른 사람 해치지 않겠다"라는.

미국의 19세기 유머 작가인 조쉬 빌링스(Josh Billings)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용서만큼 완벽한 복수는 없다”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