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평론가로서 일반 방송에 출연한 지 벌써 7년이 됐다. 이중 프로듀서 경험도 7년 여 된다. 이 기간 중 크리스천 미디어인 극동방송과 CTS에서 정규직으로 몸담은 시기도 4년여 된다. 이런 저런 경험을 다 합쳐 방송사 문턱을 들고 난 것만 올해로 15년이 된 셈이다.

뜻 깊은 부분은 필자가 방송사의 공기를 맡기 시작한 때가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의 분기점이 형성될 때란 점이다. 이 15년의 기간 동안 출현한 매체는 케이블TV(1994년), 위성방송(2002년), HDTV(2004년), DMB(2005년) 최근에 BCN, IPTV(2008년)이었다. 그 이전엔 지상파TV와 라디오 정도였다. 매체만 늘어난 게 아니다. 고가의 장치산업으로 상징이던 방송이 이제는 1인 미디어의 이기(利器)로 그 영역을 확장했다. 생각해보라. 개인이 카메라를 들고 서울 도심을 이동 생중계한다는 것이 십 수 년 전까지 갈 것도 없이, 불과 5년 전에도 상상할 수 있는 일이었던가.

인터넷 환경의 급진전과 무관하지 않다. 얼마 전 우리나라 가구 인터넷 보급률이 80%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어디로 나가봐도 우리나라만큼 쾌적하게 온라인 환경을 조성한 나라가 없다. 앞으로 압축 기술, 전송속도가 더 빨라지면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방송 환경은 급진전할 것이다. 게다가 채 한글을 깨우치기 전부터 온라인 문화에 친숙해진 신세대들의 감각과 안목에 탄력이 붙을 경우, 우리의 매체 환경은 더 큰 폭으로 진전할 것이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방송 환경이 급변하는 동안 우리나라에 성장 일로만 펼쳐졌던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외환위기, 벤처거품 붕괴, 카드대란 등 경제적 굴곡을 체험했고, 최근에도 끝이 안 보이는 경제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이런 시대적 배경은 도리어 매체 환경의 급진전을 일구는 촉진제 역할을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인터넷 문명에 합승하게 된 시점도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대부터였다. 자극이 성장의 촉매제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러나 우려할만한 점이 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발전은 비례해 발전해야 옳은데, 기술만 앞서고 콘텐트가 뒤처지는 현상이 거듭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렇게 된다면 매체 환경은 외화내빈의 폐단이 극대화될 것이다. 지금 우리의 상황이 이렇다.

위성방송과 DMB, IPTV를 보라. 빈사상태에 빠져있다. 사실 위성방송 같은 경우 2005년까지 7조에 이르는 생산을 유발하고, 6만 명이 넘는 고용창출 효과가 기대된다는 전망치가 있었다. 완전히 빗나갔다. 7조는커녕 -4400억의 수익에, 6만이 아닌 정규직만 287명의 고용을 낳았다는 것이다. DMB도 엄청난 누적적자에 시달리고 있어 사업을 접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업체들이 적지 않은 형편이다. 그나마 뿌리를 내렸다는 케이블TV도 지상파 콘텐트 재방송으로 연명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모든 문제의 해법은 역시 콘텐트이다. 콘텐트에 투자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이 논리 때문에 대기업의 방송시장 진출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뉴스 영역을 빼고 대기업이 진출하지 않은 장르가 없다. 결과는 어땠나. ‘대자본을 후견인으로 둔 PP들 중에 지상파 시장을 위협할만한 ‘킬러 콘텐트’를 보유한 방송이 있었느냐’ 이것이다. 딱히 없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뉴스 기능을 부여하면 콘텐트 제작에 대한 강한 동기 부여가 될까. 그러나 대기업이 보도기능을 쥐면서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은 불을 보듯 분명한 일이다. 일반 국민은 물론, 한나라당의 지지기반인 강남 3구에서도 반대하는 사안이다.

이 긴 서설(序說)은 기독교계의 방송 매체의 현상을 진단하기 위함이다. 20년 전 만해도 수도권과 일부 지방에 AM라디오만 소유하던 기독교계는 지금은 TV영역인 PP시장에 4개 업체가 뛰어 들었고, 지상파 라디오방송으로 2개 업체가 25개 네트워크를 통해 전국에 방송하고 있다. 그러나 매체 수의 증가와 콘텐트의 다양성은 비례하지 않았다. 대다수 기독교 채널은 설교에 의존하며, 드라마는커녕, 기본적인 문화 공연 프로그램마저 ‘돈 든다’는 이유로 편성에서 배제하고 있다.

설교 의존, 정말 심각하다. 설교 편향적 편성인 점도 문제지만, 내용도 문제이다. 방송 설교를 하는 목사들의 설교가 모두 ‘지당한 말씀’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일부 목사가 방송 설교를 시시때때로 시대착오적인 망언이나, 편향된 시국 정견, 개인의 비리와 전력을 옹호하는 신상 발언을 토로하는 장으로 활용한다. 이 내용을 방송사가 편집하려 들면 ‘헌금을 끊겠다(?)’며 겁박한다. 철학의 부재는 설교의 품격에 대한 무관심으로도 이어진다. 요즘엔 내용은 빈곤한데 반해 톤만 요란하게 바꿔 ‘명강사’ 행세하고 다니는 목사들을 방송사마다 경쟁적으로 비춰준다. 현역 PD로 남아 상식에 따라 판단할 권한을 준다면 다 ‘편집감’들이다.

교회와는 달리,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30분 가까이 별 동적 변화 없이 한 사람의 연설을 계속 보고 있기란 쉽지 않다. 설교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TV 제작 공식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나 △ 설교가 교회로부터 일정액을 받는 ‘수입원’이란 점 △ ‘교회(목회자)와의 긴밀한 연대의 끈’이라는 점 △ 교회마다 구축된 영상 설비를 통해 자체 제작이 가능해 제작상의 편의가 도모된다는 점 때문이다. (예전엔 카메라감독이 교회에 출장 나가 촬영해왔다.) 이 편익 앞에 가짓수만 따져도 여럿 될 ‘문제의식’은 실종될 수밖에 없다.

기독교계 방송사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 ‘방송의 논리’가 아닌 ‘경영의 논리’를 앞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날마다 ‘저비용 고효율’의 논리에 매몰되게 되고, 나오는 프로그램마다 천편일률적인 설교, 간증, 성경공부, 조촐한 공개오락, 이웃돕기 포맷뿐이다. ‘교회와의 협력’이란 허울 좋은 구실이지만 실은 교회 자본에 예속돼, 교회의 건강성 회복을 위한 의제 설정 하나 제대로 못한다. 교회 눈밖에 날까봐. (또 특이한 점은 방송사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한국교회에 TV만 4개, 라디오가 2개나 이르니, 이들 먹여 살리는 교회들도 등골 빠지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왜 서로들 ‘교인들만 보는 방송’을 내보내느냐 이것이다. 여기서도 ‘경영의 논리’가 개입된다. 시청하는 사람 보다 ‘헌금할’ 사람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다보니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헌금할 사람은 당연히 교인이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비신자와의 접촉점을 찾는 프로그램은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논의는 콘텐트를 창달하는 이들 쪽으로 집약될 것이다. ‘현실(자본)의 벽 앞에서 지레 낙담해 그저 현상유지(경영)나 바라며 ‘마이너 방송’의 한계 속에 맴돌 것이냐’하는 내용으로 말이다.

지금 기독교 영상 종사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창의력’이 아닐까 싶다. 현재 시청률 순위를 매겨도 설교 프로그램을 능가하는 자체 제작물이 없다. 설교는 교회에 가 들어도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설교보다 못한 프로그램만 TV에 나온다면 누가 볼까.

돈 들어간다고. 맞다. 폼 좀 나려면 돈이 안 들 수 없다. 그러나 그 돈이 ‘발품’으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인간극장’같은 프로그램이 기독교 채널에서는 왜 없나. 신앙 간증이 왜 스튜디오에서만 이뤄진다고 생각하는가. PD와 작가 두 사람이 만들어 내는 시스템이지만 지식인 사회를 열광케 하는 ‘지식채널 e'는 어떤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의 역사가 그 툴(tool)에서는 구현되기 힘든 것일까. 생계에 속박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아 ‘스타킹’에 도전하는 이들 중에 ‘소명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없었을까. 그 장을 기독교 채널에 마련할 수는 없었을까. 나아가 우리의 환부를 들춰내며 치유의 길을 모색해보는 ‘PD수첩’같은 형태의 저널리즘 장르는 앞으로도 영원히 한국교회 토양에서는 뿌리내리기 힘든 영역일까. 이런 ‘자기반성’의 문화의 선교의 촉매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안 드는 것일까.

매체가 매체라는 기득권으로 교회 앞에 힘쓰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콘텐트로 명성을 얻어야 하고, 그 명성을 통해 다져진 공신력을 통해 영향력을 발휘할 시점이다. 이것이 미디어가 살 길이다. 수많은 미디어 속에서 기독교 매체가 살아날 길이기도 하다. 이제 한국교회는 방송사 설립과 운영이라는 기득권 획득 또 유지에 관심을 쏟기보다, 긴요한 양질의 콘텐트를 제작해 ‘질적 매체력’을 확보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게 바로 한국교회의 미디어 선교의 명료한 지향점이다.

/ 시사평론가, 한양대(안산)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