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엄동설한에 추모하겠다며 성당까지 줄지어선 사람을 보며, 고인이 ‘국민 지도자’였음을 절감케 한다.

물론 김수환 추기경이라고 늘 존경만 받은 것은 아니다. 일부 누리꾼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군 장교를 지냈다는 점, 생애 말년에 특정 정파에 쏠려 중지를 잃었다는 점은 이분 생애의 핵심적인 오점으로 꼽으며 문제 삼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오점은 패역한 독재 권력이 맹위를 떨치던 때, 종교의 보호막 안에 사회적 약자와 양심적 인사를 품고 보호한 이력 앞에서는 변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보며 개신교 신자들은 이런 느낌을 갖지 않았을까. “우리에게도 저런 지도자가 있을까”하는. 진보와 보수를 망라한 모든 이들이 함께 슬퍼하며 애도하는 분위기를 조성할 그런 인물은 없을까. 물론 그런 인물을 만들려고 또 되려고 의도할 일은 아니다. ‘존경’이 어디 조작한다고 받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사실 있기는 했었다. 추양 한경직 목사가 그렇다. 청빈한 삶, 선한 행실. 복음적 열정 등 성직자로서 개신교 지도자로서 이만한 존경을 받은 인물은 없었다. 그러나 이 분에게는 독재정권을 축복했던 전력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박정희, 전두환 등 세속의 권력 앞에 충실하게 복종했던 모습은 여태 한국교회의 적폐로 꼽히고 있다.

이 지점에서 김수환 추기경은 한경직 목사에 비해 확실히 차별화됐다. 그렇다고 김수환 추기경이 ‘정치꾼’이었던가. 그런데 그 어떤 정파와 종파도 그를 ‘정치꾼’이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때의 행적을 일컬어 ‘예언자적 행보’로 평가한다. 물론 정치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김수환 추기경은 선용(善用)했다. 자신의 지위, 즉 바티칸이라는 전 세계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종교적 실력체를 배후에 둔 점을 이용, 독재 권력과 맞섰던 것이다.

사실 어려운 일이었다. 가톨릭은 전통적으로 보수적이다. 기득권과 권위 체계는 가톨릭을 지탱하는 구조적 뼈대이기도 하다. 그런 가톨릭이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의 버팀목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늘날 정의구현사제단 같은 조직이 배태된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김수환 추기경이 중심을 잡았기에 가능하다. 독재정권 시절, 그는 선배 신부들의 갖가지 지탄과 압박을 견뎌야 했다고 한다. 내부뿐이었나. ‘살아있는 권력’으로부터 도청, 회유, 협박을 당했다. 숱한 인간적 고뇌를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신의 선택으로 수많은 천주교회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생각에 머리를 싸매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십자가의 길을 걸었다. 비단길을 걸으며 폼만 잡은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 때 ‘눈물로 뿌렸던 씨앗’은 지금 열매로 비약됐다. 40년 전 14만에 그치던 천주교인이 최근 510만으로 급증했다. 지금도 성장일로이다. 축호전도, 노방전도 이런 것이 전혀 없는 천주교에 사람이 몰리고 있다? 희한한 일이다. 개신교는 어떤가. 현재 860만 대에서 점점 하향하고 있는 추세이다. 강단에서 ‘선교’ ‘전도’라는 말이 안 나온 적이 없는 개신교이건만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혹시 종교에 대한 사회적 신망과는 전혀 무관할까. 지난 해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2명만이 ‘개신교를 신뢰 한다’고 밝혔다. 반면 ‘가장 신뢰하는 종교’로 가톨릭을 꼽은 비율이 35%로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결국 무관치 않음을 보여준다.

사람 수 불리기에 역점을 둔 개신교, 정작 중요한 사회적 평판을 경시해왔던 것은 아닐까. 약자에 대한 값싼 동정이 아닌 사회 구조적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 아니, 도리어 분배 정의의 가치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이명박 정부와 결탁하려 하고 있다. 가진 자의 종교로 전락한 것이다. 이뿐인가. 앞에서는 ‘착하게 살라’ ‘나누며 살라’면서 지도자들이 부정 비리에 연루되고, 부당한 교권 세습을 감행한다. 수 시간 떠들어도 결국 위선에 다름 아니게 비춰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개신교도 존경받을 수 있는 길을 모색하자. 이는 단순히 일개인의 영예를 위한 게 아니다. 나락으로 떨어진 한국교회의 위상을 바로 세우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과거를 털어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 다음으로 시작하는 게 회개라고 우리는 주일학교 때부터 배웠다. 한국교회의 입지는 과거의 불편한 진실을 솔직히 털어놓고 정결해지는 과정으로부터 조금씩 넓어져 갈 것이다. 일제의 앞잡이였던 과거, 전쟁 때 공산당의 앞잡이가 됐던 과거, 독재정권 때에는 부당한 권력의 앞잡이가 됐던 과거. 통회가 있어야 한다. ‘누가 알아 주냐’할지 모른다. 그러나 최소한 기독교를 감싸고 있는 비판 논리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모순을 안고 전진할 수는 없는가. 불가능하다.

또한 환골탈태해야 한다. 부정한 관행과 폐습을 과감하게 도려내야 하는 것이다. 부와 명예를 한 손에 쥘 수 없는 법이다. 다 아는 방법이 정수이다. 교회의 부를 과감하게 사회에 내놓아야 한다. 교회 소유의 재산의 공공화를 기해야 한다. 목회자도 세금을 내야 한다. 아버지로부터 교권을 세습 받은 2세 목사들도 각성해 3D 현장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자기희생 없는 혁신이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선지자의 자세가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 출범에 산파 역할을 한 주인공은 개신교회이다. 부정한다고 감춰질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장로 대통령의 질주를 제동할 수 있는 힘도 교회에 있다. 그렇다면 이 ‘헤게모니’를 활용해 오만과 독선으로 점철된 현 정권을 강력하게 견제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하면 ‘교회보고 정치하란 얘기냐’라며 반론하는 이들이 있다. 이 얘기를 주로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하신 분들은 지난 10년 전 진보정권 시절에 표변해서 거의 때마다 서울시청 광장 앞에서 ‘부시 대통령 만세’를 외쳤다. 이걸 많은 국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일관성은 논리의 뼈’라는 점을 각성한다면 필자의 주장이 읽힐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최루탄 가스에 절어 성당을 피신해오는 대학생들을 끌어안아 뒤에 숨겼다. 많은 언론은 이 상황을 두고 ‘가톨릭을 믿어라’라는 설득 백 마디에 버금가는 선교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한다. 그렇다. 종교는 특히 교회는 신뢰를 자양분으로 자란다. 그러나 이미 80% 가까운 불신 속에 서 있는 한국교회가 ‘선교 선교’ 목청 높인들 소용이 없다. 경품 제공한다는 식으로 끌어들이는 식의 전도라면 호객 행위와 뭐가 다른가. ‘복음 전파’도 아니고 ‘순수 봉사’임에도 불구하고 비난 받은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때를 기억하는가. 선교의 패러다임은 바뀌어야 한다.

성직자의 권력이 절대화된다. 세속 권력과 결탁한다. 교회는 살찌고 백성은 배고프다. 교회 밖에 반대논리를 ‘사탄의 음모’로 쉽게 단죄한다. 이것은 마르틴 루터가 프로테스탄티즘의 깃발을 들게 된 동인(動因)이었다. 그런데 중세시대 이런 가톨릭의 추행(醜行)과 오늘의 한국교회의 행태에 차이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교회의 교회다움이 필요한 때이다.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에 대해 쏟아지는 사회적 존경, 한국교회는 여기서 의미 있는 교훈을 찾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