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이 2월 16일 87세 나이로 돌아가셨다. 빈소가 마련된 명동성당에는 어제까지 조문객이 23만이나 되었고 오늘도 새벽 4시부터 조문 인파가 몰려들기 시작하여 그 행렬이 이미 명동 초입, 삼일로, 퇴계로를 지나 명동역까지 2㎞ 정도 길게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김수환 추기경은 국민들의 존경받는 지도자였다. 국민들로부터 높은 존경을 받은 이유는 그가 추기경이라는 중책에 있었기 때문이라기보다, 성자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인 격동기 속에서 군사독재와 맞서면서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독재에 맞서 투쟁하다가 좇기는 자들의 보호막 역할을 했던 분이다. 아울러 언제나 약자(弱者)들에게 관심을 갖고 돌보려고 애쓰다가 1990년 일찌감치 장기 기증을 서약했다. 또 마지막까지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고자 의료진에게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절대 하지 말 것을 여러 차례 당부했다. 또한 김수환 추기경은 자신의 명의로 된 통장이나 카드가 없이 정도로 검소 검약한 삶을 살았다.

그러므로 많은 분들은 그 분의 삶을 표현하기를 "국민의 정신적 지도자였고 그분의 말씀은 우리 민족의 나침반 역할을 했다."고 했다. 한 마디로 그 분은 성자적인 삶을 살았다. 그 분 때문에 한국 천주교의 위상과 신뢰도가 높아짐으로 교세 확장에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 교인들은, 각 교단의 지도급 인사들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석(上席)을 차지하려는 과도한 탐욕을 바라보며 ‘우리 개신교에 왜 저런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가?’라고 개탄하고 있다.

김 추기경 또래 분들 중에는 유독 성자적인 삶을 종교지도자가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분은 김수환 추기경을 포함하여 개신교의 한경직 목사와 불교의 이성철 종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분들은 유교적인 도덕 문화가 강한 시대 속에서 성장한 탓인지 굳은 지조와 청빈의 삶이 배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또래의 한국 목회자들은 출세주의와 물량주의가 판을 치는 혼탁한 시대 속에서도 성자적인 삶을 지킬 수 있었으며, 한국교회의 기반을 이룩했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비해 그 다음 세대 지도자들인 1920년대 후반부터, 30년대 출생한 지도자들은 한국교회를 세계 앞에 우뚝 서도록 급성장 하는데 견인차(牽引車) 역할을 한 분들이다. 그들은 6·25 사변 당시 사춘기의 강을 건넜거나 청년의 나이로 군인으로 끌려가 전쟁의 강을 건너면서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분들이다. 어느 의미에서 그러한 생사의 갈림길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분들이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이나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삶의 비결을 배운 분들이다.

그러므로 생에 대한 집착, 성공에 대한 집념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바로 그런 일사각오의 투쟁정신으로 산 결과, 오늘의 성공, 오늘의 대교회가 이룩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때문인지 자기가 이룩한 모든 성업(聖業)들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여 교단장 선거문제, 세습문제나 교회자금의 남용문제, 지성전 확장 등 계속 움켜쥐려는 추한 모습을 교계나 사회 앞에 너무나 자주 보임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고는 했었다.

이제 한국교회는 성장주역들이 일선에서 물러나고 1940년대, 1950년대에 출생한 목회자들이 그 대를 물려받아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한국교회를 새롭게 갱신할 시점에 놓여 있다. 그 나이에 해당된 분들은 대부분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40년대, 50년대 출생 목회자들은 중심이 부족하다. 아버지 나이 벌의 성자적인 정신이나 형님 나이 벌의 집착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시류(時流)에 쉽게 적응한다.

그러므로 앞으로 한국교회의 주역이 될 40년대, 50년대 출생 목회자들은 아버지 나이 벌에 속한 분들의 성자적인 삶과 형님 벌에 속한 분들의 끈질긴 집념을 유산으로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승화시키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형님들이 집착으로 곡간 안에 쌓아놓은 것을 과감히 열고 사회와 세계 앞에 나누기 시작해야 한다. 그 때 한국교회가 성숙해짐으로 사회 앞에 인정을 받기 시작할 것이 분명하다. 지금 한국교회는 한경직 목사나 김수환 추기경 같은 큰 인물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