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랑

<조선일보>를 보자. 지난 토요일 오후 남양주에 있는 세계사이버대학 대강당에서 졸업식이 열렸다. 전동 휠체어에 앉은 박종일 씨가 학사모를 쓴 부인 송양미 씨를 보고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여어-보, 추욱-하―해." 사연은 이랬다. 부인은 1985년 서울 성덕여상을 졸업한 뒤 금호동의 한 미용실에 취직했다. 10년 넘게 미용실에서 먹고 자며 매일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독한 파마 약을 만졌다. 1996년 봄 부인은 건강이 나빠져서 수원 팔달문 근처에 사는 여동생 집으로 쉬러 갔다. 근처 미용실에 다니면서 주말마다 교회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거기서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뇌성마비 1급에 지적장애 2급이었다. 홀어머니와 단둘이 살면서 팔달문 근처에 좌판을 펴고 비누, 좀약, 옷걸이를 팔았다. 남편은 아침마다 딸기 우유 하나를 부인이 일하던 미용실 앞에 두고 갔다. 점심때는 만두를 사왔다. 밤에는 영업이 끝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렸다.

부인은 쌀쌀맞게 대했다. "집에 바래다주겠다"는 남편이 싫어 일부러 빨리 걸었다. 뒤쫓아 가다가 휠체어째 넘어져 머리가 깨지기도 했다. 다음 날부터 미용실 앞에는 딸기 우유가 없었다. 궁금했다. 남편의 어머니에게 전화 했다. "아들이 앓아누워서 '양미누나' '양미누나' 하고 헛소리를 한다"고 했다. 문병을 갔다. 남편은 “사랑해요”라고 했다. 부인은 "그 순간 이 사람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부인은 그때를 이렇게 회고했다. "저는 단칸 사글셋방에서 아버지에게 맞고 자랐어요. 제 자신을 하찮게 여기며 살았지요. 그런데 이 사람한테는 제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란 걸 깨달았죠." 이듬해 결혼했다. 그리고 남편을 공부시켰다. 자녀에게 부끄럼이 없는 아버지가 되도록 말이다. 그래서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그리고 본인도 대학에 들어갔다.

○…“기부는 습관이어야 합니다”

한강성심병원 앞에 작은 포장마차가 있다. 이곳에서 어묵 튀김 순대 등을 팔고 있는 포장마차 주인 박 모 씨가 있는데, 이분은 8년 가까이 화상 환자 후원금을 내고 있는 ‘기부천사’다. 어떻게 기부천사가 됐을까. 2002년 ‘하루에 딱 1000원씩만 기부하자’는 생각으로 돼지저금통을 마련해서 돈을 모았다고 한다. 3만 원이 모일 때마다 사람들 모르게 병원 사회복지과에 저금통을 갖다 놓았다. 한번 두 번 반복되면서 병원 관계자들도 자연스럽게 그를 알게 됐다. 그의 후원금은 화상 장애인 치료지원금과 어린이 화상 환자를 돕는 데 쓰이고 있다.

이 좋은 일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박 모 씨가 이곳에서 포장마차를 시작한 건 외환위기 시절인 1998년. 용산전자상가에서 컴퓨터 가게를 하던 남편의 사업이 망했고 박 모 씨는 은행에서 명예퇴직을 했을 때였다. “전에 은행에 다닐 때는 보육원과 양로원을 합친 형태의 사회복지시설을 만들고 싶었다”며 “하지만 상황이 어렵게 돼 꿈도 많이 줄었다”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꿈을 포기한 건 아니다. “작은 요양소를 차리는 게 지금의 꿈”이라는 박 씨는 지난해 겨울 매일 오전 9시부터 포장마차 영업을 시작하기 직전인 오후 4시까지 수업을 들으며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제가 포장마차를 하지만 제 자신이 너무 떳떳하고 행복합니다. 아들 둘에게도 앞으로 월급의 딱 1%씩만 매달 기부하라고 말하죠.” 한편 박 모 씨는 자신을 취재한 <동아일보> 기자에게 “미담으로 포장하지 말아 달라”며 사진 촬영을 극구 사양했다고 한다.

○…김수환 추기경 주치의 전하는 뒷얘기

오늘 김수환 추기경의 주치의였던 정인식 가톨릭의대 교수 이야기가 있다. 정인식 교수는 두어 시간 동안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면서 다섯 번 이상 눈물을 훔쳤다. 김수환 추기경을 떠올리면서 도저히 눈물을 참을 수 없었던 거다. 추기경의 투병기, 여러 가지로 주목된다. 우선 추기경을 진료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물어보니까 “지난해 10월 4일 토요일이었다. 추기경님이 의식이 없어 그날은 병원에서 잤다. 새벽 4시에 추기경님 병실을 찾았다. 새벽 4시30분쯤 침대 옆에서 큰 목소리로 '추기경님'이라고 소리쳤다. 그랬더니 눈을 확 뜨셨다. '깨어나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입원할 때 추기경님이 '인위적인 치료를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삽관 즉 호흡 보조용 관을 끼우는 것을 하면 문제를 금방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추기경님과의 약속 때문에 삽관하지 않았다.”

한 번은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난 뒤 자신을 부르시더니 모든 사람들에게 꼭 고맙다는 표시를 해달라고 했다. 입원할 때마다 '내가 이 방 즉 특실을 쓰면 다른 환자가 들어가야 할 좋은 방을 차지하게 돼서 싫다'고 하셨다. 그래서 최근까지도 8, 9층에 있는 병실(1인실)로 수시로 옮겼다”고 한다. 추기경님은 세 마디를 하면 꼭 한 마디는 농담이었다. '내가 강연을 하면 조는 사람도 있더구먼. 나보다 훨씬 기도를 잘하게 만드는 사람은 총알택시 기사야'라고 했다고 한다. 하루는 정 교수 본인의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얘기를 했더니 추기경님께서 한없이 우셨다. 정 교수의 모친은 물놀이하다 위험에 빠진 손자를 구하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정 교수는 이런 추기경과의 아름다운 인연을 장기 기증으로 승화시킬 작정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