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19일. 대한민국 유권자 23,612,880표 중 11,492,389표를 얻어, 48.6%의 지지를 받은 이명박 후보가 17대 대통령 당선증을 손에 넣었다. 역대 가장 큰 폭의 표차에 의한 승리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욱 빛났다. 행운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취임 직후에 치러진 총선에서 친정 한나라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그래서 이때까지만 해도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앞날은 순풍에 돛 단 것으로 비유됐다. 민심이 과도할 정도로 이명박 정부에 힘을 실어준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여야 가리지 말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중용할 것을 기대했다. 틈만 나면 여의도 정치와의 절연(絶緣)을 강조해 왔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어땠나. ‘고소영’ ‘강부자’, ‘S라인’으로 상징되듯 도덕성과 거리가 먼, 그렇다고 뚜렷하게 능력이 검증되지도 않은 측근 인사를 중용했다. 교체를 아무리 요구해도 ‘여론에 휘말리면 안 된다’며 오도된 뚝심을 견지했다.

사회 각계의 주체들을 설득해 합의를 이끌어 낼 것을 기대했다. 청계천을 개발할 때 주민들을 설득했던 그 뚝심을 국민들은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땠나. 툭하면 야당을 힘의 논리 앞세워 몰아세우기 일쑤였고, 진보적 시민사회 단체를 ‘폭력시위 집단’이라 덧칠 씌워 고립시키려 했다.

가난한 사람들 품어줄 줄 알았다. 대통령 자신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라 힘겹게 공부를 마친 서민의 자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땠나. 부자에게는 감세, 빈자에게는 고통분담을 요구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부자를 위한 재개발, 빈자를 내모는 철거가 낳은 용산 참사는 이명박 정부의 ‘서민 외면 정책’의 대표적인 산물이라 하겠다.

끝 모를 이념 논쟁에서 탈피해 국론분열을 종식시켜줄 것을 기대했다. 누구보다도 ‘실용주의’를 강조해 왔던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땠나. 역사 교과서, 공기업 공기관 인사, 대북 관계, 대미 정책 모두 ‘우 쏠림’화의 극치를 나타냈다. 이 때문에 진보성향의 사회 주체들의 강력한 저항을 촉발시켰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존중할 것을 기대했다. 대통령 스스로 ‘아침 이슬’이라는 저항 가요를 애창한다고 했듯 민주화 운동의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땠나.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에 참석한 이들이라면 쇠파이프를 든 사람들부터 유모차 엄마까지 가리지 않고 모조리 붙잡아 겁박했다. 그러더니 집회와 시위 문화를 위축시킬 것이 분명한 ‘마스크 금지법’과, 온라인에서의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뜻으로 의심되는 ‘사이버 모욕죄’의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경제 하나만은 살려줄 것으로 기대했다. CEO 출신인데다, 스스로 ‘다른 것은 몰라도 경제 하나만은 자신 있습니다’라며 한껏 기대를 부풀게 했던 당사자가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땠나. 주식은 반 토막 났고, 환율은 2배 가까이 폭등했으며, 경기는 더 위축된 데다, 수출은 판로 자체가 막혀버리고 있다. 7% 성장률이란 애초에 전망은 가당치도 않은 망상이 돼 버렸다.

물론 경제 위기의 책임 전체를 이명박 정부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 그러나 위기일수록 실력이 빛난 법. 우리 정부는 공언대로라면 세계 경제 위기의 여파를 최대한 흡수했어야 한다. 그러나 서민들은 해고, 임금삭감, 미취업, 폐업, 도산. 여파란 여파를 모두 맞고 있다. 방패는커녕, 버팀목도 돼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몇몇 신문의 취임 1년 여론조사 결과이다. “다시 투표를 한다면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 하겠는가”라는 질문에 국민 10명 중 6명이 ‘안 하겠다’라고 답했다. 2007년 대선 때의 민심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우파를 위한 대통령’, ‘가진 자만의 대통령’, ‘귀 막은 대통령’이 아니리는 믿음이 내재돼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민심을 세심히 파악하고 여기에 겸허히 순응하는 몫이 대통령에게 있다. 이게 이명박 정부의 활로일 것이다.

(일간 <아시아투데이> 시론 기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