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오늘 어떤 이야기 준비했나?

‘데이(Day)’ 이야기이다. 이승렬 앵커는 어제가 무슨 날이었는지 알고 있나?

MC: 어제 여기저기서 ‘삼겹살 데이’라고 하더라. 3월 3일, 3이 겹치는 날이라서 ‘삼겹살 데이’라고 한다고 하지?

그렇다. 축협에서 만든 날이라고 한다. 농가 소득에 보탬이 되고자 지장했다고 하는데. 삼겹살 데이만 있는 게 아니지? 앞서 들으신 대로, 2월 14일은 여성이 자기가 좋아하는 남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인 밸런타인데이다. 3월 14일은, 반대로, 남성이, 좋아하는 여성에게 사탕을 주는 날인 화이트 데이이다. 4월 14일도 있다. 이날은 2월 14일과 3월 14일에게 이성으로부터 초콜릿 또는 사탕을 받지 못한 남녀가 자장면을 먹으며 썰렁한 마음을 달래는 블랙 데이라고 한다.

MC: 정체불명의 ‘데이’들이 꽤 많아진 것 같다.

나도 방금 말한 2월, 3월, 4월 14일의 의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1월부터 12월까지 매달 14일에 기념일이 있더라고. 1월 14일은 연인끼리 일기장을 사서 주고받는 다이어리 데이. 5월 14일은 장미를 사서 주는 날이라 해서 로즈 데이, 6월 14일은 연인끼리 오붓한 장소에 가서 키스하는 날, 키스 데이, 7월 14일은 은반지를 사고는 서로에게 주면서 미래를 약속하는 날인 실버 데이, 8월 14일은 나이트클럽에서 춤추는 날이라 해서 뮤직 데이, 9월 14일은 사진관 가서 기념사진 찍는 날이라 해서 포토 데이, 10월 14일은 바에 가서 와인 마시는 날, 와인 데이, 11월 14일은 영화관에 가서 야한 영화를 손 꼭 잡고 같이 보는 날, 무비 데이, 12월 14일은,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남자가 여자를 위해 돈을 펑펑 쓰는 날인 머니 데이라고 한다.

MC: 확실히 상술이 느껴진다.

그렇다. 로이터통신은 그래서, 3년 전에 “한국에서 사랑을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라고 비꼬기도 했다. 들어서 알겠지만 이 기념일을 이용하여 특수를 누리는 이들이 따로 있다. 사실, 이런 식의 돈 벌이는 199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했고 한다. 기념일에 뜻을 담은 선물이나 행사를 통해 돈 벌이를 하는 상술이지. 각종 ‘기념일’이 집중된 14일을 놓친 업체들 중에는 막대 과자 만드는 업체 같은 경우, 과자의 1자 모양을 따서 11월 11일에 기념일을 따로 정했다. 11월 8일은 더 기막히다. 여성 브래지어 업체가 ‘브라 데이’라고 지정한 날이다. 8을 눕히고 11을 그 위에 올리면 여성용 상의 속옷이 연상된다는 것이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겠다. 7월 5일. 이 날은 ‘칠오’ ‘치러’ ‘츠어’ ‘추어’해서 추어탕 데이이다. 미꾸라지가 많이 나오는 고장인 남원시에서 지정한 날이다.

MC: 이제는 이게 마케팅 기법화된 것 같다.

특정한 날을 지정해서 관계된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케팅이다. 마케팅 업계에서는 이걸 ‘데이 마케팅’이라고 부르는데. 데이 마케팅이 먹히는 이유, 무엇일까. 숫자가 문자보다 기억하기 쉽다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 업체들이 각 기념일에 다양하고 이색적인 이벤트를 마련한다. 해당되는 일부품목은 그날이 대목이라고 한다. 초콜릿을 뿌린 막대 과자의 경우, 연간 판매량의 절반 이상이 그 막대 과자를 기념하는 날 앞뒤에 집중된다고 한다. 밸런타인데이 때 초콜릿도 그 무렵 연간 판매량의 절반이 소화된다고 한다.

MC: 막연히 문제 삼기보다는 공익적으로 역활용하는 사례도 있는 것 같다.

삼겹살 데이가 바로 그런 경우라 하겠지? 이건 성공한 예이다. 하지만 빛을 못 본 날도 있다. 막대 과자의 날에 대응해서 농림부가 “막대 과자 대신 가래떡을 먹자”며 모양이 비슷한 가래떡을 앞세워 ‘가래떡 데이’를 만들었다. 우수브랜드 쌀의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서였다. 수년 전에는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 대신 시루떡을 나눠주자는 캠페인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 마케팅은 공익적인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별 반향을 얻지 못했다.

MC: 반향을 얻지 못한 이유, 어떻게 풀이할 수 있을까?

현대인의 기호를 고려하지 않은 점 때문이다. 사실 취지는 좋다. 하지만 연인에게 시루떡, 가래떡을 준다면, 쉽게 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존도 쉽지 않고, 여기저기 흘리고 손에 뭍고 해서 먹기도 불편하다. 무엇보다도 맛으로 모양으로 상징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이게 무슨 얘기냐. 초콜릿이나 사탕을 보자. 달콤하다. 사랑을 표현하는 매개체로써 제격이다. 하지만 시루떡, 가래떡은 ‘애정 표현’의 도구로 생각하기엔 잘 연결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MC: 데이 마케팅의 기법, 어떤 것들이 있을까?

마케팅 전문가들이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 번째. 팔려는 물품과, 사랑, 우정, 추억 같은 감성이 연결돼야 한다. 감성을 자극해야 한다는 말이다. 두 번째. 특정 요일 또는 특정 숫자와 팔려는 물품의 연관성이 있어야 한다. 수산물의 날은 수요일, 삼겹살 데이는 3월 3일 이런 식이다. 세 번째. 날을 지정했다면 그날만은 싸게 판다던지 마일리지를 곱으로 준다던지 하는 식의 마케팅 전략을 수립해서 실행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다.

MC: 데이 마케팅이 잘 먹히는 사회적 풍토도 궁금해진다.

현대 사회의 속성을 이야기할 때 ‘초고속’이라는 단어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느긋함의 가치가 자리 잡기 힘든 게 우리 사회의 속성이지? 하지만 마음을 전하고는 싶다. 그러자니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여력이 없다. 그러다보니 그 정성을 돈으로 표시하게 된다. 정성의 정도는 액수의 크기로 의례 표현된다. 그렇다고 아무 때나 이유 없이 마음을 전하기도 쉽지 않다. 이때 마케팅 업체들이 이 고민을 대신해주는 것이다. 여러 기념일을 만들어 준다. 밸런타인같은 역사 속에 성인도 끌어다 쓰고, 숫자나 문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얄팍한 방식으로 말이다. 물론 현대인들은 상술인 줄 안다. 또 비판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외면하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이 참에” “이 기회에” 우정과 애정을 표시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MC: 어떻게 보면, 아직 우리 사회의 정(情)을 표시하는 문화가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대목 아닐까? 그러나 그 상혼 때문에 이런 정을 중시하는 문화가 퇴색돼서는 안 되겠지? 김용민 교수 수고했다.

('신드롬 시대'는 월~금요일 오전 6:35 이후 SBS 러브FM(서울 FM 103.5MHz) '이승렬의 SBS전망대' 시간을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