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오늘 어떤 이야기 준비하셨나?

경제 상황이 암울해도 새 식구를 맞이하는 캠퍼스의 봄은 활기를 띄기 마련이다. 그래서 오늘은 ‘신입생 환영회 때 펼쳐지는 술자리’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신입생 환영회’라는 열쇳말을 입력했더니 과거 기사들 중에 이런 것들이 줄줄이 검색됐다.

MC: 어제도 신입생 환영회 사고 소식이 들리던데.

어제 새벽 0시 50분쯤에 강원도 강릉의 한 대학교 기숙사에서 국문학과 신입생 박 모 군이 땅바닥에 떨어져 숨진 채 발견됐다. 신입생 환영회를 마치고 난 뒤, 8층 기숙사에서 만취 상태로 추락한 것이다. 청춘의 출발점이 생의 낭떠러지가 된 경우이다. 이런 사례, 2006년에 3명, 2007년에 2명, 작년에는 2명이 더 있었다. 그러나 이런 문화는 서서히 퇴조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예전만해도 이런 일들은 일상적이었다. 하지만 이젠 뉴스거리가 되고 있잖나. 달라지고 있다.

MC: 이런 신입생 환영회 때 펼쳐지는 ‘술자리’를 ‘사발식’이라고 부르던데...

그렇다. 지구가 멸망해도 살아남을 세 개의 조직이 있다는 속설이 있다. 모 지역 향우회, 모 군인 전역자 모임 그리고 바로 모 대학 교우회이다. 그만큼 유대감이 깊다는 것이다. 이 유대감의 원천, 바로 ‘사발식’이다. 이 대학에서는 신입생이 들어오면, 일단 앉힌 다음, 사발에다 막걸리를 부어서 모두 마시게 한다. 당연히 구토할 수밖에 없겠지. 그런데 이것이 모 대학 사발식의 클라이맥스라고 한다.

MC: 이런 전통이 언제부터, 또 어떻게 전승됐을까?

이 대학의 관련 사이트에 가면 사발식의 유래를 이렇게 소개한다. 일제 강점기 때 이 대학 신입생들이 사발식을 치렀다. 조선총독부로 달려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다 뒤처리하게 했다고 한다. 신입생 때부터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심어주는 차원에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물론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따로 있지는 않다. 한편 일제 강점기 이후에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는 사발주가 이런 의미로 해석됐다. '관제 교육의 때를 대학 입학과 함께 뱉어내는 것'으로 말이다. ‘사발주’는 유흥이 아니라 하나의 의식이었던 것이다. 이런 문화가 후에 다른 학교로도 확산됐고.

MC: 여담이긴 하다만, 시대별로 즐겨 마셨던 술과 안주의 종류가 달랐을 것 같다.

그렇다. 가난했던 1950년대부터 60년대까지는 막걸리나 약주에 부침개를 먹으면 최고였다. 그리고 60년대에 등장한 라면은 그 시대 최고의 안주로 사랑받았고. 70년대 후반부터는 소주가 각광받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 시기부터 유행한 게 바로 학사주점이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계란말이나 고갈비 그러니까 고등어구이를 곁들여 즐겼던 것이지. 이때까지는 어떤 강요에 의한 자리라기보다 훈훈한 정담이 오갔던 환영회였다고 한다. 그러나 80~90년대로 접어들면서 신입생 환영회의 문화가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많다.

MC: 이때부터 선.후배 관계가 군대식으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많지?

공교롭게도 ‘선배가 하라면 해야 하는 문화’가 이 무렵 뿌리내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때 사발식은, 군사문화와 체제에 대한 저항의식으로도 상징됐다. ‘동지’ ‘투쟁’의 구호가 ‘건배’를 대신했던 이 시기에 사발주는 운명공동체주로도 불렸다. 술 종류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막걸리만 있었는데, 이때부터는 소주와 맥주가 섞였다. 이것만 섞는 게 아니었다. 남은 음식 국물, 과자 부스러기 이런 것도 넣다. 심지어 담뱃재까지 털어 넣다. 어떤 여학교는 선배들 비듬을 넣는 경우도 있었다.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중요한 의식으로 상당히 특이한 방식이 동원됐던 것이다.

MC: 어떻게 봐야할까? 이런 권위적인 문화,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이 보인다.

우리만 있는 풍토라고 한다. 한 학년만 달라도 존댓말을 쓰는 경우 말이다. 선배의 말이면 절대 복종하는 문화는 중고등학교에서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풍경이었는데, 이게 대학으로, 또 직장 사회로 계속해서 이어져 가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데 말이다. 이런 문화가, 서열을 중시하는 왜곡된 봉건 문화와 군사 파시즘 문화가 결합돼 나타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시각도 있다.

MC: 그런데 요즘도 이러나?

얼마 전 연세대 원주캠퍼스 1400여명의 신입생들이 3박4일 동안 ‘술 없는’ 오리엔테이션을 가졌다. 그래서 화제를 모았다. 1400여명이 전부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큰 반발 없이 넘어갔다는 점은 상당히 흥미롭다. 사실 2000년대 들어 대학가는 급속하게 실용화 보수화의 바람을 탄다. 운동권이 퇴조하고 학생들이 일찌감치 취업 준비에 몰두하면서, 저항의식에 기초한 선후배 사이에 유대감 형성! 이 유대감 형성의 필요성은 상당부분 퇴색된 것이다. 당연히 이런 흐름은 대학가의 음주 문화를 바꾸는 동력이 됐다.

MC: 신세대들 특유의 개인주의적 성향도 아마 이런 문화를 퇴조시키는 원인이 아닐까 싶다.

사실 ‘마셔! 선배가 주는데 안 마셔?’ 이런 식의 강요는 신세대들에게는 먹힐 수 없다. 이러는 선배는, 도리어 왕따를 당한다. 신세대들의 사고는 이렇다. 먼저 들어왔다는 이유로 모든 사람을 선배로 모셔야 하는 건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경험을 공유하지 못한 신참들이지만 단지 선배라는 이유로 자신들의 ‘문화’나 ‘전통’을 강요하는 것을 권위주의적 폭력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제가 출강하는 학교의 학생들 중에도, 밑에 학년 후배가 누구인지 또는 선배가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가 상당수 된다. 당연히 이들 선후배 사이에는 술 한 잔 오간 일이 없다.

MC: ‘주도가 바로 서고 있다’며 긍정적으로 봐야할지 ‘공동체의 가치가 상실 된다’며 우려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그러다보니 선배들도 바뀌고 있다. 요즘 대학들 중에는 신입생 환영회 때, 사발주를 못 마시겠다는 신입생에게 전혀 강권하지 않는 현상이 확산된다고 한다. 공동체 정신을 잘 살리면서 자유의사에 맡기는 음주 문화 이런 것들이 시대의 변화와 함께 확립돼 가고 있는 것이다. 아니, 도리어 성인이 됐다는 해방감, 또 빡빡한 입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마음껏 자유를 누리고 싶은 보상심리가 작동해 취하도록 마시는 신입생을 잘 계도하는 선배의 배려가 요즘 보인다고 한다. 물론 아직도 사고는 나오고 있고, 일부 체육대학에서는 폭력 얼차려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런 문화가 계속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MC: 살릴 건 살리고 개선할 것은 개선하는 지혜의 묘가 신입생 환영회 때도 나타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