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초 왕년에 개그계의 황제로 통했던 최양락 씨가 SBS '야심만만2, 예능선수촌‘을 통해 화려하게 복귀했지? 이때부터 80~90년대 왕성한 활동을 벌인 희극인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은 요즘 일부 지상파 방송사가 콩트 중심의 코미디 프로그램 제작에 나서고 있는 것과 연계된다. 콩트 중심의 코미디를 방송가에서는 ‘정통 코미디’라고 부른다. 그동안 SBS의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나 KBS의 ‘개그콘서트’같은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주류를 이뤘지? 코미디 프로그램의 트렌드에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날지 주목된다.

그동안 왜 정통 코미디가 침체기였을까. 대본에 충실한 연기만 하다 보니 시청자들에게 식상하게 비춰진 것이다. 물론, 대본을 짤 때, 희극인이 아이디어 회의에 참여하긴 한다. 하지만 선택과 집중의 권한은 극작가 그리고 연출가가 쥐고 있다. 반면, ‘웃찾사’나 ‘개그콘서트’같은 공개 코미디의 시나리오는 대부분 희극인 본인이 만들어 온다. 자기가 만들어오니 재미 역시 제대로 살릴 수 있는 것이다. 정통 코미디가 퇴조하게 되는 배경 또 하나는 요즘 예능 프로그램의 대세가 ‘리얼리티’라는 점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발하는 게 리얼리티의 매력이지? 그러다보니 ‘패밀리가 떴다’ ‘1박 2일’ ‘무한도전’같은 로드 다큐형 예능 프로그램이나 ‘야심만만 2’, ‘해피 투게더’ ‘놀러와’같은 토크 프로그램이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다시 정통 코미디가 고개를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개 코미디의 장점이자 단점은 속도성이다. 또 휘발성이다. 신속하게 한 번에 탁 건드렸을 때 빵하고 터지는 것. 이것이 공개 코미디가 추구하는 웃음의 풀이 과정이다. 하지만 이런 코미디 프로그램을 접하는 장년 노년층들은 소화하기 버겁다. 웃어야 할 부분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정통 코미디는 숨차지 않다는 것이다. 속도가 고르다. 구성이 탄탄하다. 웃음에 설득력이 있다. 또한, 스탠딩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형식과 액션, 세트 구성이 가능하다. 혼자 나와서 단 시간에 웃겨야 하는 공개 오락물이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사실, 사회 곳곳에서 ‘속도’ ‘속도’하는 상황이지? 이 ‘속도’에 지친 사람들이 긴장을 풀려고 코미디 프로그램을 시청하는데, 이마저도 속도에 치우치다보니 장년층 이상 시청자들은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경제 위기와 코미디의 흥망은 묘한 연관성이 있는 것 같다. 잘 생각해보자, MBC TV가 1969년에 개국했다. 이 시기는 새마을 운동이 본격화되던 때였다. 그 때 우리나라 최초의 코미디 프로그램인 ‘웃으면 복이 와요’가 같이 시작됐다. 인기가 대단했다. 이런 인기를 의식해서인지 다른 방송들, 이를테면 KBS와, 지금은 없어진 동양방송 TBC까지 코미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물론 코미디가 저속하다며 배척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인기몰이는 1980년대까지 쭉 이어져왔다. 이때까지를 역사는 압축성장기로 평가한다. 코미디의 위력은 외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국민적 노력이 한창이던 1999년에 다시 입증된다. 이때에 본격 공개 코미디의 장을 연 KBS TV '개그콘서트‘가 첫 방송을 탔다. 또한 카드 대란이라는 제 2의 경제위기가 한창이던 2003년. 이때에는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 SBS TV에 등장했다. 두 작품 모두 시쳇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국민은 경제적 빈곤기에 코미디 프로그램을 통해 큰 위로를 얻었다고 말이다.

코미디가 압축성장시기 또 외환위기 때 그리고 카드대란 직후에 큰 사랑을 받았다고 했는데, 경제 한파가 몰아닥친 지금이 코미디 부흥의 호기가 되겠다. 그러나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코미디 르네상스 시기는 새로운 얼굴들이 과감하게 중용됐을 때 가능했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복고풍 코미디가 곧 옛날 코미디언의 복귀로 등식화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2005년에도 최양락 씨를 비롯한 8090 코미디 본좌들이 정통 코미디의 틀을 들고 다시 등장했다. 최양락 씨가 그때 했던 언급이 있다. “노(老) 개그맨은 죽지 않는다. 다만 캐스팅 되지 않을 뿐이다”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들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저조한 바람에 대부분 중도 폐지되고 말았다. 결국 코미디의 복고 흐름이 하나의 대세를 이룬다 하더라도, ‘재창조의 과정이 없이는 찻잔 속에 태풍이 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이 기회를 잘 살리기 위해서는 코미디계가 어떻게 자기 혁신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예전 SBS 개국 초기에 ‘코미디 전망대’를 진행했던 원로 방송인 고 김경태 PD, 이 분은 이 나라에 코미디의 개념을 만든 분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분이 1969년 ‘웃으면 복이 와요’를 만들 당시에 이 땅에는 코미디언이 없었다. 그래서 지방 유랑극단 무대에 섰던 코미디언들을 모아 TV 앞에 세웠다. 구봉서, 서영춘, 배삼룡, 송해, 이기동 이런 분들이 이때 발굴됐다. 얼굴 하나만 보고 고 이주일 씨를 데뷔시킨 사람도 김경태 PD이었다. 80년대 코미디 중흥기를 이어받은 후배들도 서세원, 이홍렬, 김형곤, 심형래, 최양락 같은 신진 개그맨이었다. 우리 코미디는 이들을 앞세워 세대교체와 외연확장에 성공했다. 1999년 ‘개그콘서트’에서는 심현섭, 백재현 같은 뉴 페이스들이 처음 얼굴을 내밀었고, 2003년 ‘웃찾사’의 무대가 펼쳐짐으로써 컬투 같은 괄목할 신인들이 대거 인기몰이를 했다.

서민이 벼랑 끝까지 몰려 있는 현실. 코미디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게 느껴진다. 모든 희극인들의 분발과 선전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