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기술 중에 ‘벼랑 끝 전술’이 있다. 영어로 ‘brinkmanship’이라고 한다. ‘벼랑’을 뜻하는 ‘brink’에다 ‘ship’을 더해 형성된 단어이다. 어떤 예가 있을까? 멀리 찾을 거 없다. ‘북한의 협상 태도’하면 모든 게 설명된다. 최근 로켓 발사 문제를 두고 ‘요격할 때에는 핵 개발에 착수한다’며 일침을 놓았다.

북한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나라 이미지에 대해 큰 관심이 없구나”라는 생각 말이다. '위기 조성' 그리고 '공갈 협박'을 국가 차원에서 보여 왔기 때문이다. 하긴 이런 협상 방식을 통해, 북한은 원하는 모든 것을 얻어왔다. 이런 유효한 전략을 바꿀 이유, 당연히 없겠지? 이게 바로 북한이 시종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는 이유가 아닐까 풀이된다.

북한이 결국 협상을 원하는 대상은 미국 아닌가? 미국은 강대국으로서 북한에게 왜 이렇게 밀리는지 관심이다. 사실 강대국과 약소국이 협상하면 대개 강대국이 유리하다. 협상 카드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지. 그래서 강대국은 카드를 하나씩 받고 주는 협상 전략을 구사한다. 이런 협상 기술을 살라미 전술이라고 하지? 살라미가 뭐냐. 이탈리아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같이 양념하여 장기간에 걸쳐 조금씩 떼어먹는 소시지에서 유래되었다. 이 전술은 통째로 소시지를 얻을 수 없을 때 얇게 썬 조각부터 얻어내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큰 쟁점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없을 때 쟁점을 작게 세분화 시켜 작은 것부터 해결하는 것이다. 지난 FTA협상 때 미국이 우리를 상대로 구사했던 협상 전술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하지만 북한은 늘, 큰 틀의 합의, 즉 빅딜을 원하지 않았던가. 사실 약소국은 대체로 큰 카드를 한꺼번에 맞교환하기를 원한다. 그러다보니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강력한 압박의 카드를 구사해왔다. 큰 협상에 있어서 한 번도 밀린 적이 없는 미국은, 그런데, 북한에 대해서만은 약체이다. 미국 국방장관도 북한의 로켓에 대해 “요격 안 한다”고 했다. 북한 정권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던 부시 행정부 같은 경우도 북한에 대해 신경전만 벌이다 8년 임기 다 보냈다.

그러나, 돌아보면, 미국이 약소국이 구사하는 ‘벼랑 끝 전술’에 쩔쩔 맨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북한의 전매 특허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당장 이승만 대통령의 경우를 보자.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전쟁 당시 정전협정을 끝까지 반대했다. 미국이 북한과 끝까지 싸워 북진통일을 이뤄주길 바랐다. 하지만 미국이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며 싸우겠나? 결국 자기들 원칙대로 정전 협정에 나섰다. 심지어 정전협상이 끝나면 미군을 전부 철수하려고도 했다. 그러자 이승만 대통령은 ‘국군 단독으로 북진하겠다’라며 미국을 애먹이더니 반공 포로 무려 3만 명 가까이를 풀어줘 또다시 경악하게 만들었다. 결국 미국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정전 협정을 허락받는 대신, 한국 전쟁이 끝난 다음, 미군을 철수하려던 계획을 백지화했고, 거액의 전후 복구비를 한국에 지원하기로 했다. (적잖은 현대사 학자들은 한국이 가장 큰 성과를 얻었던 한미협상이 바로 이때였다고 평가한다.) 한국형 ‘벼랑 끝 전술’의 원조를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으로 꼽는 이들도 있다.

‘벼랑 끝 전술’은 외교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멀리 돌아볼 것도 없다. 우리 국회 상황을 보면 된다. 1차 입법 전쟁 당시 민주당은 본회의장 의장석을 의원 여러 명이 쇠사슬로 묶은 채 한나라당 의원들의 진입을 차단했다. 미디어 관련법을 저지하기 위해서이다. “포기하라. 안 하면 여기서 버틴다” 이것이었다. 한나라당은 결국 민주당의 벼랑 끝 전술에 밀렸다. 그래서 ‘합의 처리하기로 노력한다’라는 애매모호한 내용으로 국회 정상화에 합의했다. 그리고 한 달 뒤, 2차 입법 전쟁. 김형오 국회의장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 앞으로 점거한 상황에서 “내가 내놓은 중재안 안 받아들이면 한나라당이 내놓은 모든 법안을 다 직권상정해 처리하겠다”고 민주당에게 통보했다. 민주당을 상대로 벼랑 끝 전술을 편 것이다. 민주당은 결국 “6월에 표결처리하도록 한다”라며 한나라당 앞에서 무장 해제했다.

극단에 치닫는 ‘벼랑 끝 전술’ 요즘 여기저기서 많이 보게 된다. “내 뜻대로 안 하면 파국”이라는 경고의 목소리가 크다. 어느 한 구석 인내와 양보, 포용이 없다. 요즘에는 특히 더 그렇다. 왜 이럴까. 혹시 싹쓸이를 권하는 사회가 되다 보니 이러는 것은 아닐까. 내가 취할 수 있는 이익을 극대화하지 않으면,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나에게 손해가 될 만한 일을 용인한다면, 팔푼이 취급 받는 것이다. 상대에게 완벽한 굴복을 강요하는 협상은 협상이 아니다. 최선의 협상은 서로가 윈윈할 때 가능하다. 그래서일까. 요즘 시대에 가장 무난한 합의는 “쟁점 사안은 다음에 또 논의하자” 정도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음 회의 때에 나의 완벽한 승리를 위한 시간 벌기 정도의 엉성한 타협아 아닐 수 없다.

살펴보면, 대화다운 대화가 없는 현장을 자주 볼 수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양보는 최대한 줄인 채 상대방에게서 최대한의 이득을 얻어내는 전술”로 ‘벼랑 끝 전술’은 풀이된다. 부동산 황제이자 억만장자인 드널드 트럼프라는 사람. 이 사람의 최측근이면서 트럼프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협상에만 30년 동안 나섰던 조지 로스란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50년 협상 전략가로 일하면서 ‘이제 겨우 2살로 접어드는 아기들은 탁월한 협상가들이다.’라고 했다. 왜 그럴까. 아기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울고 투정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제대로 된 부모라면 이 아기들을 어르고 달래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을 수 없다.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을 종일 울게 내버려두면 혹 잘 못 되지 않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기들의 그 연약함이 아기들로서는 가장 큰 협상력의 원천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아기들은 항상 이긴다.

아기 얘기를 더 해볼까. 아기에게 사탕이라도 하나 물리면 아이는 울음을 그친다. 그러나 아이에게 아무 것도 안 주면서 “울면 자기만 손해라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며 부모가 버티고 선다면 어떻게 될까?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필요할 때 사탕을 쓸 수 있어야 한다. 사탕은 나중에 아기가 또 울 때 유효한 설득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북한이 큰 소리 치는 것은 미국과 그동안 주고받는 게 전혀 없기 때문이란 지적이 있다. 사실 북한에게 경제 봉쇄는 하루 이틀 당한 일이 아니다. 이런 수단으로 북한을 조종하려 한다면 북한 내부의 날선 결집만 불러올 뿐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