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초고층 빌딩 공사가 한창이다. 최근 정부는 서울 잠실에 112층, 555m 높이의 제2롯데월드 건립을 허가했다. 이것 말고도 640m짜리 DMC 빌딩이 상암동에 건설될 예정이고, 용산에는 620m짜리 랜드 마크 빌딩 건설이 계획되고 있다. 서울에서만 이런 초고층 빌딩이 7곳 지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2015년쯤에는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주변에 117층짜리 해운대관광리조트도 건설된다고 한다. 실로 ‘바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건물 높이가 세계 1등이냐, 2등이냐’ 이걸 놓고도 경쟁이 뜨겁다. 인류 역사에서 하늘을 찌르는 높은 건물, 즉 마천루(摩天樓)가 실제로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부터다. 1894년, 우리에겐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이 있었던 해, 미국 뉴욕 맨해튼에는 106m에 이르는 생명보험빌딩이 생겼다. 당시엔 세계를 놀라게 했던 초고층 빌딩이었다. 그리고 1931년 세워진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첨탑까지의 높이가 449m에 이르렀다. 이걸 시작으로 초고층 빌딩 건축이 경쟁적으로 확산됐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세계 1,2위 순위는 어떻게 될까? 1위는 '버즈 두바이'다. 첨탑까지 합하면 800m가 넘는다. 삼성물산이 여기 골조공사를 담당했지? 그리고 2위는, 아직 착공은 안 했지만, 앞서 언급한, 640m 높이 133층의 상암동 서울 DMC 빌딩이다.

높이도 관심거리지만, 어떻게 이런 빌딩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건설되는지도 관심이다. 높이 솟은 건물을 아래로 잡아당기려는 무자비한 힘. 바로 중력이지? 이 중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고강도 콘크리트와 강철이 필요하다. 튼튼한 강철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도시 스카이라인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벽돌과 석재로도 이론적으로는 1600m 높이까지 쌓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게 한번 비틀리면 버틸 수 없다. 그래서 실제로는 10~12층이 한계로 통한다. 바람과 지진도 문제다. 높이 올라갈수록 바람이 강해져서 50층에 비해 100층에서는 네 배나 강한 바람을 맞게 된다. 건물이 약간씩 흔들리도록 하면 바람과 지진에 견딜 수 있겠지만 사람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흔들린다면 곤란하겠지?

초고층 빌딩은 그야말로 건축 기술의 총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천·수만 명이 생활하는 마천루를 위해서는 초고속 엘리베이터도 만들어야 하고, 초고층에서 쓴 물이 아래로 떨어질 때 생기는 강한 수압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대단하지? 게다가 초고층 빌딩은 일반 건물과 다르게 내구 수명이 200년이 넘어야 한다.

초고층 빌딩의 높이, 이걸 국력과 비례한다고 보는 이들이 적잖다. 국력을 상징하기 위해 짓는 경우가 많다. 랜드 마크(landmark)라는 말이 여기 쓰이는데. 상징적 건조물이라는 뜻인데. 사실 이번에 안보 위협 논란에 휘말렸다가 우여곡절 끝에 승인을 받게 된 제2롯데월드 건축 말이다. 이걸 두고 신격호 롯데 회장이 이런 의지를 나타냈다고 하지? "외국에서 벌어온 돈으로 서울에 좋은 작품을 하나 만들겠다"라고 말이다. 숨은 뜻이 따로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롯데는 줄기차게 “이 랜드 마크 건설이 도시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국제적으로 관광객을 유치하는 힘이 될 것”이라는 명분을 앞세웠다. 이런 논리가 정부의 허가를 도출해 낸 동력이 아닌가 풀이하는 시각이 있다.

여담이긴 한데, 초고층 빌딩을 이야기할 때 짓는 것도 경제 지표를 읽을 수 있는 현상이라고 하다. 미국의 경제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은 “초고층빌딩이 건설되면 불황이 온다”고 주장했다. 그 실례로 1997년의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타워라던가, 1947년 미국 시카고의 시어스타워, 또 앞서 이야기한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같은 경우, 다 지은 다음 경제 공황기가 찾아왔다. 우연일까 아니면 필연일까. 페섹은 자본유입이 커지면서 주변의 경제를 어렵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사회학과 교수인 사스키아 사센이란 석학도 “특정한 산업에 지나치게 자본이 편중되면 경제적 위기를 불러온다”는 지적을 제기했다. 그러나 다른 한 쪽에서는 대대적인 건설 붐이 일면서 경기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건물을 구심점으로 해서 돈이 돌고 아울러 일자리도 창출되는 복합적인 효과가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초고층 빌딩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려면 ‘얼마나 높게 할 것인가’에 좀 더 논의가 쏠리는 것 같다. 높이만 앞세울 게 아니라 질적으로도 도시의 얼굴이 될 만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를 보자. 높이라야 고작 67m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름다운 항구의 경관에 어울리는 조개껍질 형상의 이 건물은 세계 관광객들 마음 속 랜드 마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한 달 전 미래학자 대니얼 핑크가 서울에 와서 한 말이 있다. "빌딩은 하드웨어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빌딩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입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초고층 빌딩에 대한 논의, 우리에겐 내실보다는 외형에 관한 것에 너무 쏠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 지적이었다.

앞으로 세워질 마천루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경쟁력 있는 문화 랜드 마크가 될까. 뉴욕 맨해튼에 사람이 몰리는 까닭을 보자. 그곳에는 푸름이 있다. 근처에 센트럴파크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주변은 문화시설들이 숱하다. 패션과 예술이 쉼 없이 창조된다. 자칫 메마른 '회색 콘크리트 숲'이 될지 모를 공간에 '문화적 삶의 향기'가 가득하다는 것이지. 문화의 가치를 배제한 채 부동산의 가치만 앞세웠다가는 지금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두바이의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 초고층 빌딩이 도시의 흉물이 돼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건축 기술과 자본보다 그 사회의 문화가 상징되는 랜드 마크, 속속 세워질 초고층 빌딩에 기대해도 될 가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