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선제로 치러진 민선 경기도교육감 선거가 사상 최악의 투표율 기록을 남기며 끝났다. 12%대에 그친 것이다. 유권자 850만 5056 명 가운데 104만 3973 명만이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누가 당선되더라도 대표성 논란에 휘말릴 수밖에 없게 됐다.

우선은 ‘교육감을 투표로 뽑는 것’을 잘 모르는 분들이 많아서였을 것이다. “우리 집엔 학생도 없는데 왜 투표를 해야 하나요?” 이런 분들이 아직도 많다. 사실 교육감을 투표로 뽑기로 한 것은 3년 전이다. 왜 투표제를 도입했을까. 교육감 권한이 너무 막강하기 때문이다. 교장 임명권은 물론이고, 우열반과 0교시수업, 심야 보충수업, 방과 후 학교 이런 모든 사안에 대해 할지 말지 결정할 권한이 있다. 특목고를 신설할 수도, 없앨 수도 있는 권한이 있다. 그러다보니 주민 대표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게 됐다. 그래서 투표를 시행하는 것이다. 한편 내년 지방선거 때 전국적으로 교육감 선거가 같이 치러진다. 사실 교육감 선거는 정당 공천을 받지 않는다. 이걸 잘 모르는 분들이 많다보니 지난 17대 대통령선거 때 울산 충북 경남 제주에서는 교육감 선거도 같이 치러졌는데, 이때 이명박 후보와 기호가 같았던 2번 후보들이 큰 덕을 봤다고 하지?

투표율 이야기 다시 해보자. 점점 투표율이 줄어들고 있다. 총선을 볼까. 1985년 12대 총선 때 84.6%를 기록했다. 그러나 그 이후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작년 18대 총선 투표율 기억하나? 46.1%였다. 대선은 또 어떤가. 반도 투표를 안 했다는 이야기이다. 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 때에는 89.2%였다. 그러나 지난 대선 때에는 63%였다. 어떤 자에는, 민주주의가 정착된 36개 나라의 2차 대전 이후부터 최근까지의 평균 투표율이 73%에 못 미쳤다는 내용이 있었다. 특히 1990년대 이후에는 전 세계 평균 투표율인 64%보다 낮았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되는 두 나라가 있다. 일본과 미국이다. 일본의 90년대 이후 총선 평균 투표율은 57%, 미국은 45%에 그친다. 이에 비해 캄보디아 앙골라 인도네시아 소말리아 우즈베키스탄 알바니아 몽골 르완다 등의 평균 투표율은 80%를 넘는다.

잘 사는 나라일수록 투표율이 낮고, 비교적 소득수준이 높지 않은 나라일수록 투표율이 높다? 역설적인 것 같다. 하지만 소득수준과 투표율은 크게 관련이 없다는 해석도 있다. 단적인 예로, 선진국이 많은 서유럽 국가의 투표 참여율이 유난히 높다. 이 나라들 보면 내각책임제를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유권자들이 “자기가 한 투표로 국정 방향을 좌우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투표하면 세상이 달라진다”는 자긍심이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중심제에 여당이 의회 다수당이 되고, 또 과반수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은 우리 정치나, 우리 정치의 모델격인 미국, 그리고 반세기동안 집권당이 한 번도 바뀐 일이 없는 일본의 경우 투표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그러니까 정치의 역동성과 투표율이 정비례하다는 얘기가 되겠다. 하지만 ‘투표율이 높아야 한다는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 해 총선 때, 부산의 한 지역구에는 기표란에 붓두껍 도장이 찍히지 않은, 그러니까 기표되지 않은 투표용지가 발견됐다. 이 용지에는 그런데, 볼펜으로 “죄송합니다. 도저히 표 드릴 분이 없네요”라는 메모가 있었다. 사실, 기권도 정당한 ‘정치적 의사 표현’이라는 주장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이라는 역설이 성립되는 것이다. 투표 참가라는 비용에 비해 투표 행위로 인해 세상이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 편익이 적을 경우 기권하게 된다는 이론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무관심이 합리적이라 하더라도 단결된 소수의 전횡을 부른다는 면에서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예컨대 다 기권표이고, 단 한 표만 특정 후보에 기표된다고 하자. 그렇다 하더라도 그 한 표를 얻은 후보가 당선된다.

그래서 많은 나라가 기권방지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일환으로 이른바 투표 인센티브 제도라는 것을 들 수 있다. 투표하는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다. 투표자에게 도서문화상품권을 주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투표용지를 복권화하는 방법도 신중하게 논의되었다. 실제 몇 년 전 인천의 한 지역에서 있었던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는 백화점 물품 할인 혜택을 주는 인센티브제가 시범적으로 실시되었다. 그러나 투표율이 다른 재·보선 지역보다 더 낮았다고 한다. 도시에선 안 먹히는 것이다. 작년 총선에서 박물관이나 공원 같은 국·공립 유료시설을 이용할 때 면제 또는 할인을 받는 혜택을 부여했지? 하지만 이 역시 통하지 않았다.

이런 인센티브제도 말고 강제 투표 제도를 운용하는 나라가 있다. 일부 국가의 경우 유권자 모두 투표를 해야 하고 투표를 하지 않을 경우 벌금이나 구류에 처해지는 일도 있다. 호주 벨기에 브라질 같은 32개국이 강제 투표를 채택하고 있다. 호주는 불참하는 사람에게 우리 돈 4만 원 정도의 벌금을 물린다고 한다. 브라질은 투표를 하지 않으면 공직 진출이 막히고 여권취득을 제한한다. 베네수엘라는 투표를 안 하면 은행대출과 해외여행을 제한한다. 그리스는 1년 이하의 금고에 처함과 동시에 운전면허취득과 비자발급을 제한했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이런 강제투표제도, 효과가 만점이다. 싱가포르와 호주는 투표율이 90%를 웃돌고 있고, 터키와 몽골, 페루, 칠레 등의 국가도 80%를 넘는 투표율을 기록하고 있다. 한편 “찍을 사람 없는데 어떻게 해요?”라며 우는 소리하는 사람 나올까봐 러시아에선 ‘지지 후보 없음’ 란도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진정한 해답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극복하는 것이겠지. 매 국회마다 초선비율이 증가한다. 그러나 정치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매 선거 때마다 투표율은 줄어든다. 어느 당이 의회 다수가 돼도 이런 악순환은 그동안 쭉 거듭돼 왔다. 우리 정치권은 그래서, 투표율 낮은 것에 대해 반성하기 보다는 ‘낮은 투표율이 누구에게 더 유리할까’ 이것부터 따진다. 앞서도 언급한대로 “내가 투표함으로써 세상이 달라진다”라는 느낌을 갖게 하면 유권자들은 투표장에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런 희망이 보이지 않고 구태 정치가 반복된다면 하향세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이런 공상을 해봤다. ‘아무리 1등을 했다 하더라도 일정 득표수를 넘어야만 당선될 수 있다’는 식의 룰을 도입해보면 어떨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