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부터인가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과거 정부에 대한 사정 작업이 항상 있어왔다. 이때, 비엔나소시지처럼, 과거 실세였던 사람들이 비리인사로 변질돼 줄줄이 엮여 사정기관에 불려 나가는 모습을 우리는 늘 지켜봐왔다. 불행히도 최고 권력자의 아들, 즉 대통령 아들도 이 불명예스런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고 말이다.

우리나라의 대통령 아들 중에 아버지가 퇴임한 뒤에도 별 탈 없이 지내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자. 이승만 전 대통령의 수양아들 강석 씨가 비참한 최후를 맞았었지? 친아버지 이기붕 부통령과 함께 자살한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 씨 역시 비록 아버지 사후이긴 하지만, 상습적인 마약복용으로 교도소를 들락거린 일이 있었다. 백담사 골방에서 권력의 무상함을 체험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 재국 씨와 국회의장 비서관을 시작으로 정치를 꿈꿨다가 아버지의 천문학적인 규모의 비자금 비리 때문에 결국 뜻을 접어야 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 아들 재현 씨도 비운의 주인공이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권력의 무상함을 입증한 비극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아들은 비극에서 조연 역할을 맡았던 때였다. 그러나 이후에 대통령 아들은 비극의 중심 또는 주인공이었다. 소통령으로 군림하다 한보사건으로 구속됐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의 두 아들 홍업 홍걸 씨는, 모두 부당하고 부정한 권력형 비리의 중심이었다.

이런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 씨가 검찰에 불려 나갔다. 아버지의 조카사위인, 그러니까 본인에겐 사촌지간인 연철호 씨가 작년 초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베트남 공장에 찾아가 500만 달러 투자를 요청할 때 동행한 것이 확인됐지? 검찰은, 혹시 노건호 씨도 돈 받은 것은 없는지, 아들이 받은 돈이 아버지와 관계가 있는 것인지 추궁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하면 그동안 ‘형님이 말썽을 일으켜도 아들 비리만은 없는 대통령’으로 기억돼 왔는데. 환상이 깨질까. 많은 이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이 비리와는 무관할 것이라고 본다. 그 이유로, 노건호 씨가 ‘고생’을 안 한 점을 든다. 사실 양김 전 대통령의 아들을 보자. 아버지 때문에 쫓겨 다니고 붙잡혀 고문당하고 취업에 불이익을 당하는 식으로 고초를 겪었다. 아버지의 가슴은 찢어졌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아들에 대해 부채의식을 가졌을 것이고. 그래서 운신의 폭을 비교적 넓게 해줬다. 관대하게 대했다는 것이지. 이다보니, 이런 권력자 아들에게 검은 세력들이 쉽게 달라붙었다. 심지가 약한 대통령의 자식들, 결국, 이들의 감언이설에 속속 넘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결국 감옥에 가게 됐다.

하지만 노건호 씨의 경우, 이런 양김의 아들과는 다르게, 구김살 없이 자랐다는 것이다. 명문대 법대를 나왔다. 무엇이 불법이고 무엇이 비리인지 알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곧고 강직한 모습에 대중이 환호하는 것을 지켜봤다. 따라서 이런 아버지의 아들로서 어떻게 처신해야 옳을지를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실제 노건호 씨는 아버지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바로 다음 날에 가졌던 기자회견을 통해 “평범한 회사원으로 사는 대통령 아들의 선례를 남기겠다”고 공언했었다. 실제 노건호 씨는 대기업 계열사 직원으로서 직업이 있었고 게다가 몸은 해외에 있었다. 돈이 궁하지 않았고, 권력을 행사하려고 작심했어도 거리상으로도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다른 나라 정상의 자녀들은 어떨까. 프랑스의 미테랑 전 대통령의 아들도 비슷한 경우이다. 장 크리스토프란 사람인데, 이 사람은 아버지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 무기중개상에게 거액을 받았다. 그래서 감옥신세를 져야 했다. 하지만 이런 자녀만 있는 게 아니다. 상당수 대통령 자식들은 아버지로 인해 자신의 이미지가 손상될까봐 접촉을 자제하는 쪽이라고 한다. 한편 좀 특출 난 경우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딸을 꼽을 수 있다. 이 사람은 플레이보이지에 누드모델로 나왔다. 아버지는 노여워했다. 하지만 당시 많은 이들은 대통령의 딸이라도 독립된 개인이라며 옹호했다. 어쨌든 논란의 중심이었던 이 딸은, 아버지가 치매에 걸렸을 때, 병 치료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 세계인을 감동시켰다.

그저 독립된 개인을 누가 ‘황태자’로 만들었을까. 부패나 불법의 시작은 항상 실세에 줄을 대 부당하게 이권을 챙기려는 무리들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탓이다. 물론 이게 전부가 아니다. 너무나 한 사람에 집중돼 있는 대통령 중심제의 폐단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 챙겨 줄 수 있는 자리가 2만 개에 이른다고 한다. 또 5년 동안 1000조 안팎의 돈을 주무르게 된다. 당연히 권력의 부나방들이 대통령 일가 주변에서 설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한국적인 정서까지 결합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거 감시하라고 대통령 민정수석이 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민정수석은 “인권 침해의 우려까지 낳을 정도로” 대통령 형 노건평 씨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고 했다. 그러나 노건평 씨는 돈 받은 것은 물론, 중계 역할까지 했고, 공천에 까지 간섭한 것으로 드러났다. 민정수석은 얼빠졌던 것일까. 아니다. 민정수석도 돈 받아먹었다. 이 민정수석, 대통령의 오랜 지기라고 하지? 오랜 지기에게 자기 가족 감시하라고 맡겼으니 이거 말 다한 거 아닌가.

예전에 특가법상 알선수재혐의로 기소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의원에게 판사가 유죄를 선고하면서 이런 충고를 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데도 사업가와 호텔에서 어울리는 등 대통령 아들로서 조심하지 않았다”고. ‘세상에 공짜가 없는데’ 이 말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 돈 받은 정치인들 대부분이 전가의 보도로 내세우는 논리가 있다. ‘(내가 받은 돈은 뇌물이 아니라) 대가성 없는 정치자금이었다’라는 해명이었다. 노무현 정부 출신 인사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대기업 돈은 안 받았다. 다만 오랜 지기인 박연차, 강금원 씨에게 받았다. 이들과의 돈 거래는 대가성이 없다”라고 말이다. 그러나 박연차 씨는 노무현 정부 시절, 사업적으로 대박을 쳤다. 이것만큼 대가성을 입증할 단서가 또 있을까. 다시 얘기한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