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봄이다. 전국 곳곳은 봄꽃 보러 다니는 행락객으로 북적인다. 얼마 전 한 신문에는, “꽃을 피우는 식물이 지구상에 등장한 것은 1억3000만 년 전”이라고 소개한 내용이 있었다. 꽃식물은 500만 년 동안 5개 계통으로 분화됐다고 한다. 이때로부터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 꽃식물은 오늘날 40만 종으로 크게 늘었다. 이 봄,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꽃은 대표적으로 진달래, 개나리, 벚꽃, 매화, 산수유이다.

꽃들이 요즘 일찍 피는 것 같다. 일전에 개나리·진달래·벚꽃이 평년보다 열흘 정도 일찍 필 것이라고 기상청은 전망했다. 서울대 허창회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1920년대 이후 개나리·진달래 개화일은 10년마다 2.4일씩 빨라지고 있다. 짐작하겠지만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4·19 혁명 때 희생된 사람을 기린 노래로 '진달래'가 있다. 4.19와 진달래. 어떤 연관이 있을까. 4월이면 진달래가 눈이 부시게, 꽃 사태를 이루기 때문이란다. 온난화가 계속되면 한 세대 뒤엔 진달래가 3월에 피고 또 져 4월과는 무관하게 될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요즘 꽃구경 다니는 분들은 벚꽃 보러 다니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예전 벚꽃놀이는 진해 군항제로부터 북상해 창경원 밤 벚꽃놀이로 마감되었다. 진해 군항제, 말이 나와서 그런데, 군항제는 원래 1952년 4월 13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진해시 북원로터리에 세우고 추모제를 거행한 것에서부터 유래됐다. 벚꽃과는 별로 상관없어 보인다. 그렇다. 과거 일봄이 우리나라를 침략한 다음, 진해에 군사항을 건설하면서 도시 미화용으로 벚꽃을 심었다. 그래서 군항제는 벚꽃축제가 돼 버렸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을 기념하는 날에 일제가 심은 꽃을 즐기는 현실. 참 묘하다. 한편 최근에는 창경궁 벚나무를 일부 옮겨심기도 한 서울 여의도 윤중로가 벛꽃놀이의 새로운 명소가 되었다.

이 윤중로는, 연인원 700만 명이 모여들어 벚꽃 속에서 낭만과 정취를 누리는 대규모 축제가 매년 이맘때 펼쳐진다. 하지만 벚꽃이 흐트러지는 길은 윤중로 만이 아니다. 경주보문단지, 제주, 화개장터, 충주호, 마이산, 경포대, 춘천호 같은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다.

한편 SBS 유영수 기자가 블로그에 남긴 글을 보니까 이런 내용이 있다. 2007년에 일본 기상청이 벚꽃, 즉 사쿠라가 피는 시기를 잘못 예상해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고 한다. 사과문 한 장 내는 게 아니었다. 기상청 고위 간부들이 일본식으로 TV와 신문 카메라 앞에서 머리를 깊게 조아리며 사죄한 것이다. 이게 웬 오버일까. 오버가 아니다. 일본에서 벚꽃 개화일은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한다. 우리의 눈 오는 날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일본 방송에서는 벚꽃과 관련한 시시콜콜한 상식을 퀴즈로 내는 프로그램이 있다. 꽃 소식이 먼저 들려오는 남쪽 지방을 수시로 생중계로 연결해, 리포터들이 꽃봉오리도 채 맺히지 않은 벚꽃 나무 밑에서 호들갑을 떠는 일이 다반사이다.

가본 분들은 알지만 일본의 벚꽃 놀이 구경은 여의도 윤중로에 비할 바가 아니다. 1억 2000만 명이 넘는 일본인이 다 야외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꽃이 피지 않은 꽃망울 상태인데도, 일찌감치 자리를 펴놓고 꽃놀이를 즐기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회사에서 회식을 할 경우 꽃 피는 곳 주변에 자리 잡는 일을 신입사원에게 맡긴다고 한다. 얼마나 좋은 자리를 확보했느냐가 그 직원의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도 하고. 일본인들은 왜 이렇게 벚꽃을 좋아할까? 일본의 역사와 전설 또는 특유의 사무라이 문화에서 그 이유를 찾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이것보다 벚꽃이 필 무렵이 일본의 졸업식과 입학식, 입사식 시즌과 맞물린다는 점에 주목하는 이들이 더 많다. 이별의 슬픔과 아쉬움, 새로운 만남의 설렘이 교차되는 시기인데 그 추억의 배경 한 구석에는 적어도 한번은 벚꽃이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벚꽃은 그리 긍정적인 이미지가 아니다. 과거 일제 강제 점령기 때 한국의 혼을 없애고 일본식을 강요한 상징으로 이미지가 굳어져버렸기 때문이다. 창경궁의 굴욕의 역사가 사실 그런 인식을 굳히게 한 힘이었다. 일제는 조선 왕조의 대궐이던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깎아내렸다. 동물원을 만들고, 벚나무를 잔뜩 심어놓고 조롱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광복 후 벚나무는 일제청산의 상징이 돼, 벚나무를 베어버리는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실 일본 군국주의 세력들이 벚꽃의 이미지를 정치 군사적 상징으로 악용한 일이 있었다. 화려하게 피고 순식간에 지는 벚꽃의 속성을, 전쟁을 미화하고 부추기는 문화적 코드로 이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거 아시나? 벚꽃이 우리 꽃이란 점을? 이름에 ‘왕’자가 들어가는 왕벚나무. 이름만큼 가장 화려한 위용을 자랑한다. 그런데 이 왕벚나무는 일본에 수출됐다가 역수입된 것이다. 몇 해 전 한라산에서는 300년 된 왕벚나무 세 그루가 발견되어 왕벚나무가 한국이 원조임을 재확인 시켜 주었다.

벚꽃이 일본말로 ‘사쿠라’인데, ‘사쿠라’는 한국 정치에서도 낯익은 단어이다. 군사독재정권 시절 사쿠라는 ‘낮에는 야당, 밤엔 여당’으로 장난치는 정치인을 꼬집는 용어로 쓰였다. 이때의 사쿠라는 꽃이 아니라 ‘바람잡이’ ‘야바위꾼’ ‘박수꾼’을 뜻하는 일본어에서 나온 말이다. 민주주의가 성숙해지면서 한국 정치판에서 사쿠라라는 단어는 사라졌다. 하지만 요즘 사쿠라는 권력과 시류에 따라 정당을 옮겨 다니는 철새 정치인을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총선이 4월마다 치러지지? 공교롭게도 그 4월에 벚꽃이 만발한다. 그래서 윤중로 여기저기서 “와 사쿠라가 만발했네!”라는 탄성이 나오면 그 얘기를 듣고 등골이 오싹해지는 정치인들이 꽤 있다는 우스개도 있다.

꽃을 역사 속에서만이 아니라 문학 작품 속에서도 찾아보자. <경향신문>이 4월 13일자에서 유봉희 시인의 ‘벚꽃 속으로’라는 작품을 소개했다. ‘떨어져도 환한 꽃잎 / 살짝 찍는 마침표 / 하얀 마침표’ 이런 내용이다. 벚꽃을 ‘하얀 마침표’로 표현했다. 봄꽃을 찬양하는 시, 또 볼까? 이해인 수녀는 ‘해마다 / 첫사랑의 애틋함으로 / 제일 먼저 매화 끝에 / 피어나는 나의 봄…’이라고 했다. 김용택 시인은 ‘천지간에 꽃입니다. / 눈을 감습니다. / 아, 눈감은 데까지 따라오며 꽃은 핍니다’라고 노래했다. 메마른 세상사, 잠시 잊을 수 있는, 아니 세상사로 인해 쌓인 피로를 녹일 수 있는 정서적 해독제인, 꽃. 가까운 곳에서 만나보시라.

참고로 수도권의 봄꽃 나들이로 좋은 장소를 소개하겠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한택식물원, 가평 축령산 기슭에 아침고요수목원, 옛 광릉수목원인 국립수목원도 좋다. 서울에서 멀리 가기 힘들다 싶으시면 청량리의 홍릉수목원,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이촌동 국립중앙박물관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부디 봄 냄새 만끽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