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참으로 평안한 마음으로 하늘을 쳐다 볼 수 있고, 옆 사람이나 뒷사람을 아무런 부담 없이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고, 마음에 아무런 전제 없이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바라 볼 수 있는 그런 한가로운 삶, 새벽기도로 정화된 맑은 마음에 조간신문에 가득 담긴 아름다운 이야기로 마음이 배부르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받은 정갈한 아침상을 들면서 행복한 이야기들로 가득한 TV를 볼 수 있다면, 그리고 매일매일 창조적인 즐거움으로 일을 하고 땀의 열매로 풍성한 기쁨의 열매를 거둘 수 있다면, 그래서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없이 나에게 허락된 삶을 향유할 수 있다면......

전쟁을 하듯이 하루를 시작하여 앞만 바라보고 달려가면서도 헛발질을 하기가 일수이고 하품을 하면서 읽는 조간신문에서 배설물처럼 여기 저기 흩어진 배설물처럼 추하게 오염된 기사들을 읽으며 속상해야 하고 이미 저만치 달려간 다른 사람을 좇아가기에 숨이 차오르는 삶을, 그것도 삶이라고 헐떡이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요 사치스러운 망상일 뿐일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여유 있는 삶을 입버릇처럼 말하고 삶의 의미를 구호처럼 말하는 목사인 나 역시도 이런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면 부끄럽기도 합니다. ‘여기가 천국이 아니니까’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도 하고 변명도 하지만 사실은 이것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젠 우리 교회도 수년에 걸쳐 기본 인프라를 구축하고 헌신된 지도자들과 충성스러운 동역자들로 인해 사역이 안정되어서 그렇게 발을 동동 굴러야 할 형편은 아닙니다. 국가의 경제 침체나 사회의 영적 혼란, 그리고 한 시도 마음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사건이나 사고가 터지는 불안한 시대이긴 합니다.

 하지만 사실 내가 염려한다고 무슨 도움 될 일도 아닌 바에야 그냥 하나님께 맡겨 놓으면 될 테고, 조간신문에 불편한 기사가 실리고 TV에 부끄러운 이야기가 흘러나온들 세상을 나 혼자 책임져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 시대의 불의가 모두 내 탓은 아니니 내 신앙이나 잘 지키고 우리 교회 내 식솔이나 잘 이끌면 될테니 이젠 좀 여유를 가지고 살아도 될 나이가 되었는데, 가정도 예순을 넘은 나이에 아이들도 다 커서 제 짝을 찾고 해마다 바뀌는 입시정책 때문에 당황할 나이는 이미 지나갔고,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할까봐 아이들방을 기웃거리면서 전전긍긍하고, 틈만 나면 공부를 채근해야할 나이도 지났고, 늦게 들어오는 아이를 잠 못 자고 기다려야 하는 연령도 지난 나로서는 뭐 그렇게 매일매일을 전쟁하듯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데, 그래도 난 오늘도 분주한 하루를 보냅니다.

다 욕심, 그 욕심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하나씩 하나씩 포기하는 것을 배우지만 그래도 아직 버리지 못한 그 무엇이 자신을 초조하게 만듭니다. 뭔가를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을 긴장하게 하고, 성취의 희열이 크기는 하지만 그 일을 위한 스트레스 역시 자기 몫입니다. 무슨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그 자리에 걸맞은 능력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또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한 남다른 수고가 필요함으로 자리가 늘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그 자리를 포기할 수 있을 때 삶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때론‘내가 왜 이걸 맡아 이 고생을 하는가?’라고 하면서도 그래도 더 많은 것을 손에 잡고 싶어서 분에 넘치는 몸짓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 갑니다.

자기 분수를 알고, 하나하나 포기하는 능력으로 삶의 여유를 찾고, 주어진 삶을 행복하게 누릴 줄 아는 것이 성숙입니다. 애지중지 붙잡은 것을 놓고, 한 없이 좁아진 가슴을 열고, 저 높은 곳에 눈을 두고, 서두르지 않는 자신 감으로 살아갈 수 있음이 성숙입니다. 욕심을 내려놓으면 마음의 여유를 누릴 수 있고 마음의 여유는 성숙의 자리로 통합니다. 성숙은 포기하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신양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