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셀러’가 유행이다. TV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돼 큰 인기를 모은 작품을 책으로 엮은 것. ‘베스트셀러’와 ‘스크린’의 결합어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스크린 셀러’이다. 주제 사라마구가 쓴, ‘눈먼 자들의 도시’, 스태프니 메이어의 ‘트와일라잇’이 그 예이다. 국내 작품도 꽤 있다. 작년에 SBS에서 화제 속에서 방영된 드라마 ‘바람의 화원’의 원작, 이정명의 ‘바람의 화원’이나,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가 예라 하겠다.

예전에는 유명 소설을 영화 또는 드라마화하는 경우는 많이 봤다. 그러나 스크린 셀러는 그 반대이다. 스크린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진 뒤 원작이 주목받은 책을 바로 스크린 셀러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원작소설이 크게 주목받지 못하거나 애초 인기가 사라진 소설 중에서, 영화나 드라마로 선보임으로써 다시 인기를 얻는 경우. 이 경우도 스크린 셀러로 부른다. 이런 사례가 많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텍스트 보다는 영상에 보다 친숙한 신세대의 특성 때문이다.

이 책들, 실제 ‘흥행’ 성적도 좋을까? 한 인터넷 서점의 통계를 보면 ‘그렇다’라는 답이 나온다. 올 아카데미에서 케이트 윈슬릿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원작 소설은 2004년에 국내에 소개됐을 때만 해도 월평균 19권 정도 팔렸다. 하지만, 영화 개봉을 앞두고 3월부터 4,750권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과거에 많이 못 팔았던 소설을, 출판사가 영화의 유명세에 힘입어 많이 파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올해 아카데미 8개 부문 수상작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문학동네에서 'Q&A'라는 제목으로 2007년 출간됐다. 그런데 영화 개봉과 맞춰 지난 2월 '슬럼독 밀리어네어'라는, 영화 이름과 같은 제목으로 개정판을 냈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인기를 모으니까, 너도나도 출간하겠다고 나섰고, 그렇게 해서 출판한 회사만 국내에서 여덟 군데가 된다고 한다.

아예 영화 개봉시기에 맞춰 도서를 동시에 출간하게 된 사례도 있다. 권상우, 이보영, 이범수 주연의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가 그 예다. 이 영화는 베스트셀러 시인으로 알려진 원태연 씨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각본과 감독까지 맡아 화제가 됐었다. 출판사는 같은 이름의 원작 소설을 영화 개봉시기에 맞춰 동시에 출간하는 전략을 펼쳤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미스터리 소설 ‘용의자 X의 헌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소설은 현재 영화배급사와 출판사가 공동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영화사와 출판사가 공동 마케팅을 벌이는 경우라 할 텐데, 수익배분은 어떻게 할까. 사실 서로 윈윈하는 시스템이다. 이런 점 때문에 비용 혹은 수익 분담이나 공식 제휴가 없다고 한다. 다만, 홍보 효과를 진작하기 위해 디자인을 통일성 있게 쓴다던지, 시사회 티켓, 영화할인권, 예매권, 책 나눠주기 같은 상호 연관된 이벤트도 진행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핵심은 서로 최대한 많이 노출되도록 하는 것이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영화 예고편에서 ‘전 세계 36개국에서 원작이 소설로 출간됐다’란 문구를 넣어 소설에 대한 주목도를 높였다. 또 소설도 ‘영화로 흥행한 작품’ 이렇게 책 표지에 넣는다, 언론사 보도 자료와 지면광고, 포스터는 물론 커피숍 테이블매트나 지하철 스크린도어 광고에도 영화·소설 홍보를 함께 넣기로 했다.

불황에 시달리던 출판계, 스크린 셀러 덕을 톡톡히 본다. 민음사는 전체 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30~40% 늘어났다고 하지? 올 초 세계문학전집 200권 돌파를 계기로 스테디셀러인 고전이 더 활기를 띠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전집은 지난해에 비해 40~50% 매출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아동도서브랜드인 비룡소와 장르문학을 중심으로 한 브랜드인 황금가지 쪽도 고전의 판매가 좋았다. 앞서 제가 스크린 셀러를 이야기했는데 왜 갑자기 고전 이야기 하냐고? 영화 '적벽대전' 때문이다. 이것이 상영되는 바람에 고전 중에 고전인 '삼국지' 전집의 판매가 덩달아 늘어난 것이다. 출판계 전체적으로 스크린 셀러의 긍정적인 여파를 입은 것이다.

스크린 셀러가 인기를 모으는 이유,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동명영화나 드라마의 인기가 소설로 다시 돌아오는 이유는 무엇보다 탄탄한 원작의 힘이다. 스토리가 흥미롭고 잘 짜여 있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보고 나면 원작에 대한 궁금증을 낳는 게 당연하다. 영상이 보여주지 못하는 행간에 대한 욕구가 자연스럽게 생기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영상의 아쉬움을 종이책에서 다시 되새김질하고 싶은 심리도 작용한다. 상상과 영상의 실재가 어우러져 감흥은 배가되지? 소설은 이런 감흥을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인 것이다.

물론 ‘원작만 못하다’ 이런 논란은 늘 그치지 않다. 어디서 이런 글을 봤다. “미디어학자 마셜 매클루언은 “미디어는 곧 메시지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똑같은 내용이라도 어떤 매체로 표현하는가에 따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원작보다 못하다, 원작을 훼손했다는 말을 많이 하게 된다. 이럴 때 명심할 것이 있다. 무작정 욕하기 보다는, 감독이 원작을 어떻게 영화로 바꾸었는지를 보려고 애써야 한다. 영화감독이 영화라는 매체 특성에 맞추어 원작을 제대로 해석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마찬가지이다. 소설 역시 영화의 감동을 글로써 충분히 살렸는지 따져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