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이야기이다. 최근 대형마트가 논란의 중심이다. 이 논란은, 국내 1위 대형마트인 이마트가 최근 슈퍼마켓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촉발됐는데. 서울 3곳에 330㎡, 그러니까 100평 안팎의 점포 부지를 확보해서 연내에 이마트 브랜드의 슈퍼마켓 문을 연다는 계획이다. 이마트는 후발주자이다. 이미 롯데쇼핑의 롯데슈퍼, GS리테일의 GS슈퍼마켓, 홈플러스의 익스프레스 같은 다른 대기업들은 이미 기업형 슈퍼마켓을 오픈해서 운영하고 있다. 한 400여개가 현재 영업한다고 하지?

대형마트의 출몰 시점은 1996년이다. 이때 대규모 점포 허가에 대한 규제가 완화된 것이다. 거대자본과 싼 가격, 쾌적한 쇼핑, 질 높은 서비스로 무장한 대형마트는 지역 상권의 근간을 흔들면서 시장의 포식자로 점점 몸집을 불려간다. 중소기업청 자료를 보면, 2006년을 기준으로 대형마트의 연간 매출액은 25조4000억 원. 6년 새 두 배 이상 성장했고 1개 점포당 평균 743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서울대학교 국제경영학부 원종문 교수는 지역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형마트 매출이 12% 증가하면 재래시장 130개가 문을 닫는다”며 “이렇게 되면 15년 내 모두 사라지게 된다”고 전망했다.

이런 대형마트가 이제는 슈퍼마켓 시장에도 뛰어든다는 것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기존 대형마트가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대형마트의 성장률이 0.6%에 그쳤다고 한다. 성장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것이다. 이건 결국 경기가 위축돼서 발생하는 현상이 아닐까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대형마트 쪽의 인식은 좀 다르다. '마트를 더 못 짓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더 지으면 될 것 아닌가. 실제로 우리나라 대형마트들, 아직 진출하지 못한 곳이 더 많다. 하지만 대형마트 쪽은 ‘시장이 포화상태’라고 말한다. 왜 이럴까.

이른바 ‘선점 효과’ 때문이다. 가려는 지역에 이미 다른 경쟁사가 있으면 웬만하면 피한다는 것이다. 기존에 다른 마트가 들어왔던 말건 신경 안 쓰고 들어간다면 당연히 경쟁을 해야 하겠지? 그렇다면 그 경쟁은 저가 경쟁이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마트의 이익은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 더 한층 경쟁을 벌여야 할 텐데, 그렇다보면 다 같이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도 없는데 먼저 들어가는 것이 상책인데, 아무도 안 들어간 데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의 영업 전략도 선점효과에 기초했다. 월마트는 우선 경쟁이 덜한 중소도시에 가장 먼저 들어가 매장을 연다. 초기 공격적인 최저가 경쟁으로 그 지역 재래 상권을 무너뜨리고 시장을 장악한다. 이렇게 지역의 판로와 수요를 독점하고 나면 서서히 이익 극대화에 나선다. 싼 물건 값은 그대로 유지하되 임금과 납품 단가를 더 낮춘다. “더 싸게 가져와. 싫다고? 그럼 이 지역에서 장사할 생각이 없다는 거네. 하지마!” 이런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중에 <싼값의 비싼 대가>라는 작품이 있었다. 이게 바로 월마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가게 문을 닫고 월마트에 취업한 자영업자가 받은 임금의 절반을 다시 월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데 쓰는 모습이 담겨 있어 주목받았다.

지금껏 대형마트 앓는 소리를 했다. 그러나 대형마트 손에 피가 난다면, 소형 상점은 등에 칼이 꽂힌 상태라 하겠다. 지난 2001년 이후 4년 동안 문을 닫은 주택가 구멍가게가 무려 11,400개 가까이 된다고 한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구조조정 바람에 휘말려 직장을 잃은 퇴직자들이 구멍가게 형태의 산매업체를 많이 차렸지만, 이 업체들도 10% 이상 줄어들었다고 하고. 상대적으로 대형 할인매장과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이 늘어난 결과다. 그만큼 일반 서민들에 있어서는 생계가 빡빡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현실적으로 대형 마트의 소형 마트 진출 문제로 발생하는 잡음을 최소화할 법적 완충 장치가 없는 것일까. 영세 상인들은 오래 전부터 대형마트가 무분별하게 생기지 못하도록 영업 허가제를 도입해달라고 요구했다. 또 아무 거나 다 팔 수 없도록 영업품목의 제한을 요청하기도 했다. 아울러 24시간 영업도 못 하도록 영업시간 제한 조치를 주문했다. 이렇게 해서 기업형 슈퍼마켓을 규제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영업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정부는 올해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10조 원의 추경을 따로 편성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 생사의 기로에 선 소 상공인들에게 활로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들의 애로사항을 경청하면서 대안을 모색해 법안에 반영해야 할 정치권은 뭐하고 있을까. 선거 때만 되면 재래시장이나 영세 상인을 보호하겠다며 큰소리를 치지만 그 때뿐이다. 현재 국회에는 기업형 슈퍼마켓을 제한하는 내용의 법률안이 7개나 입법 발의돼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입법화 가능성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다. 영세 상공인들의 앞날, 먹구름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