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루엔자’. 흔히 ‘독감’으로도 불리는 말이다. 인플루엔자는 이탈리아말로 ‘추위의 영향’ 즉 Influenza di freddo란 말에서 유래됐다. 18세기 중반쯤 만들어진 것이다. 이 말이 만들어질 당시, ‘인플루엔자’는 그리 무서운 병이 아니었다. ‘겨울 즈음에 나타나 기껏 1주 정도 불편을 주고 낫는 친숙한 병’으로 여겨졌을 뿐이다.

그러다 20세기 초반 스페인에서 비롯된 엄청난 독감 열풍이 있었다. 1918년이었다. 몇 달 만에 세계 곳곳에서 최소 2천만 명의 목숨이 죽어나갔다. 이 ‘대량 학살자’의 정체가 ‘인플루엔자’이다. 가벼운 두통으로 찾아온 ‘살인마’는 허파에 붉은 액체를 가득 채워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얼마나 이게 여파가 컸던지 1917년 51살이던 미국인 평균수명이 다음해 39살로 12년이나 깎였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740만 명이 감염됐고 사망자가 무려 14만 명에 달했다. ‘백범일지’를 보면 김구 선생도 이 독감 때문에 고생했다는 흔적이 남아 있다. 당시 김구 선생은 이 독감을 ‘서반아 감기’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최근에 조류 인플루엔자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 않았다. 조류끼리만 병을 나눌 줄 알았던 이 바이러스가 그런데, 사람한테서 처음 검출됐다. 이때가 바로 1997년이었다. 홍콩의 세 살배기 아기 시신의 목구멍 표본에서 발견한 건데. 이 바이러스는 80여 년 전 스페인독감 바이러스와 거의 일치했다. 그러니까 1918년의 스페인 독감도 실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였다는 얘기가 된다.

조류 독감이나 돼지 독감, 어째서 인간에게 전이될까. 이 바이러스는 단순한 감기 바이러스가 아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즉 독감 바이러스인데. 하지만 레벨이 다르다. 어떤 점에서 다르냐. 우선 감기 바이러스는 유전자가 하나이다. 그러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8개의 유전자를 갖고 있고 10종류의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단백질 복제과정에서 다양한 변이가 일어난다. 이런 단백질 특성이 폭발적인 증식과, 강한 전염 능력이 있는 병원성을 나타낸다. 이번 멕시코에서 발견된 돼지 인플루엔자가 바로 이런 경우이다.

멕시코발 돼지 인플루엔자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멕시코 이야기 좀 해보겠다. 16세기 초 멕시코의 아스테카 문명이 순식간에 멸망했다. ‘왜 멸망했을까’ 이것에 대한 학설이 분분하다. 수백만을 헤아리는 아스텍족이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가 이끄는 겨우 600여 명에 불과한 군대에 무릎을 꿇었으니 말이다. 최근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 전염병론이다. 정복자였던 스페인이 총칼과 함께 천연두를 몰고 간 것이다. 스페인군은 멀쩡한데 원주민들도 대책 없이 죽어갔다. 원주민들이 느꼈던 심리적 충격은 엄청났다. 스페인군에는 면역성이 있다는 걸 알 리 없는 원주민 아스텍족은 그들을 신의 사자로 믿고서 자기들의 태양신을 버리고 말았다.

인플루엔자 말고도, 사스라던가 광우병 같은 병균도 우리 사회를 공포에 젖게 한다. 21세기 첫 세계적 전염병은 바로 사스이다. 세계보건기구 WHO는 55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행자제 권고를 내리기도 했다. 사스 때문이었다. 여행하면서 이 병균이 옮겨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쓴 책 ‘위험 사회’의 한 대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산업화·근대화가 기술발달과 물질적 풍요를 가져오지만 그만큼 내재된 위험도 커진다는 논리이다. 이 위험에는 생태학적 재앙, 핵위기, 실업과 금융대란, 환경파괴, 지구온난화가 포함된다. 이처럼 위험이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는 가운데, 위험에 대한 자각은 무뎌지며 통제 역시 불가능해진다. 위험은 어느 특정한 지역의 문제를 벗어나, 터졌다 하면 세계화·탈지역화한다.

당연히 인간의 자업자득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게 된다. 돼지는 인플루엔자 말고도, 구제역이라는 질병에 노출돼 있다. 소는 광우병, 닭과 오리는 조류 인플루엔자가 있다. 소나 돼지, 닭과 오리는 오로지 인간의 먹이로 사육되고 있다. 끼니마다 고기를 먹는 육식 위주의 식사는 지금의 가축 규모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공장에서 제품을 찍어내듯 고기를 생산해야 했다. 여기서부터 동물의 역습이 시작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동물들을 공장의 빵처럼 여기는 인간들과, 그런 인간들의 학대를 받다가 죽어가는 동물들. 그 사이의 불화가 마침내 재앙으로 내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광우병 왜 생겼나. 초식동물인 소에게 동물성 사료, 그것도 동족의 살과 뼈와 피가 섞여있는 사료를 먹였기 때문 아닌가. ‘자연의 역습’이란 책도 나왔다. 동물과의 공존의 지혜를 찾을 때, 이런 ‘자연의 역습’으로부터 우리가 방어할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 시사평론가, 한양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