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30년쯤 되었을게다.
난생 처음 미국이라는 데를 갔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얼마간 머무르게 되었다. 어느 주말에 버스를 타고 이리저리 다니던 중에 ‘벼룩시장’을 만나게 되었다. 한 아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가까이 갔더니 운동화 한 켤레를 앞에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아마도 자기가 신던 것으로 엄지 쪽에 구멍이 생긴 것이었다. 소년은 일종의 ‘아나바다 운동’에 참여하고 있었던 셈이다.

 ‘아나바다’란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활용하자는 뜻이다. 교회 안에서 여전도회원들이 뜻을 모아 입지 않는 의류, 악세사리, 가전제품등을 수집 혹은 희사 받아서 바자회를 가진 적이 있었다. 물건들은 대부분 천원 가격이었다. 더러 조금 높은 가격을 매긴 것도 있지만 그것도 기천원이어서 사람들은 즐겁게 행사에 참여 하였다. 여전도회는 이 판매대금으로 봉사활동을 하는데 유용하게 사용하였다. 실제로 몇몇 교회들은 이런 종류의 바자회를 열어 실로암 안과 병원의 개안 수술비용으로 적지 않은 금액을 보내는 귀한 일도 하고 있다.

▲ 중고시장

아나바다 운동은 일종의 재활용 운동이다. ‘아름다운 가게’ 역시 재활용을 목적으로 한 가게이다. 서울 황학동에 위치한 ‘도깨비 시장’ 역시 재활용품을 진열해 놓고 파는 곳이다. 근래에는 꼭 재활용 뿐 아니라 골동품류의 물건들을 함께 진열해 놓고 높은 가격을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가끔 도깨비 시장을 들여다보면서 여러 가지 진귀한 물건 건지는 재미도 쏠쏠하다.

영주시에서 몇해 전 ‘가나다 운동‘이라는 것이 있었다. 복어식당 주인이 제창한 것으로 [가져가고, 나눠 먹고, 다 먹자]는 것이다. 뷔페음식이야 자기 먹을 만큼만 접시에 담아다가 먹기 때문에 음식 남길 일은 없다. 하지만 한정식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게 되면 그 많은 음식을 다 먹지 못하고 남기게 되는 경우가 많다. 뷔페식당에서 음식을 담아 오는 경우에는 사람들의 눈총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일반 식당에서 음식을 싸 달라고 하기에는 아직은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갈비를 먹은 후에 갈비 뼈다귀를 싸 가는 경우에는 아마도 개에게 주려나 보다 하고 건너편 뼈다귀 까지 모두어 준다만 다른 음식을 싸 가지고 가려 하면 약간의 용기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언젠가 수 십명의 목사 부부가 함께 음식을 먹는 자리가 있었다. 식사가 끝난 후 아내는 종업원에게 거기 남은 음식을 비닐봉지에 싸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종업원은 즐겁게 남은 음식을 싸 주었다. 음식을 들고 나오는데 한 사모님이 내 옆으로 다가 오더니 웃으면서 말을 건네었다.
“생활이 많이 어려운가 봐요.”

하기는 먼저 일 터에서 받던 생활비 보다는 시골에서 받는 생활비라는 게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우리 집 식탁은 도회지 사람들이 보기에는 매우 빈약하다. 쑥 나물, 머루, 망초, 민들레 등 풀(?)만 놓인 식탁이라 도회지에서 먹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들은 주변에 널브러져 있어서 언제든지 필요한대로 먹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물이 좋다. 물이 좋으니 덕수리 마을에서 생산되는 쌀이 다른데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맛이 있다. 다른 지역에서 여기 쌀을 사다가 자기지역에서 나는 쌀처럼 판매하는 일도 있다. 느끼한 도회지의 식단 보다는 그 담백한 음식 맛은 가히 복지식단(Well-being)이다. 여기는 정수기가 필요 없다. 그냥 좋은 물맛이다. 마을 이름이 덕수(德水)이니, 물이 넉넉한 곳이다. 이렇게 넉넉한 곳이다 보니 인심도 좋다.

음식을 싸 가는 것은 생활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식당에서 먹고 남은 음식은 모두 버린다. 이것을 안다면 내가 먹은 음식을 싸 가지고 나오는 것을 결코 궁색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한숨지으며 보릿고개를 넘기던 일이 불과 50년 전 이야기이다. 의정부 부대찌개는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음식 찌꺼기를 모아서 만든 꿀꿀이 죽임을 알고 먹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음식에도 절제가 필요하고 절약이 필요하다. 우리가 1년 동안 버리는 쓰레기 발생량은 약 2천만 톤이다. 그 중 음식 찌꺼기는 550만 톤이다. 전체 발생 쓰레기의 28%나 된다. 돈으로 따지자면 7~8조원이다. 우리가 하루에 먹고 남은 음식찌꺼기는 15,000톤이다. 하루 1만 톤이 필요한 북한 사람들을 충분히 먹이고도 남는 수량이다.

1995년도 기준으로 우리나라 식량 자급도는 55.7%에 불과하다. 582만톤 양곡 생산국가가 1,996만톤을 소비하니 부족한 양을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수입해서 먹는 음식물까지 쓰레기로 버리는 셈이다. 10년 전에 ‘음식물 쓰레기를 50%이상 줄이자!’ 하는 캠페인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 말을 흘려듣지 않았으면 한다.
음식물 싸 가는 것은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다. 가져가고 나눠먹고 다 먹도록 하자는 [가나다] 운동의 실천일 뿐이다.

오늘도 내 아내는 유황오리집에서 먹고 남은 음식을 싸 가지고 나왔다. 

/ 덕수교회 목사, 전 서울노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