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아내의 유혹'의 두 주인공 장서희 김서형 ⓒ SBS

‘귀가시계’로 불릴 만큼 큰 인기를 모았던 SBS 일일연속극 ‘아내의 유혹’이 5월 1일 종영됐다. 지난해 11월3일 첫 방송 때 시청률은 11.9%였다. 그러다 한 달 남짓 만에 20%를 뛰어넘더니, 지난 1월 말 40% 고지를 점령했다. 평일 저녁 7시대에 시청률 40% 돌파는 전무했던 기록이 아닐까 싶다. 대체 무엇 때문에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에 환호하고, 얼굴을 찌푸렸고 또 눈물지었을까? 오늘은 그래서 ‘아내의 유혹’이 입증한 드라마의 흥행 요소 세 가지를 짚어보려고 한다.

첫 번째 요소는 ‘치열한 갈등’이었다. 한 연예전문 기자는 ‘아내의 유혹’을 소개하며 이런 표현을 썼다. ‘이렇게 가다간 영화가 멸종되지 않을까?’라고 말이다. 그만큼 이 드라마가 극예술이 보여줄 수 있는 갈등의 구도를 극대화했다는 이야기이다. 다시 이야기해 ‘등장인물 사이의 갈등을, 이토록 치열하게 그려낼 수 있는 작품이 또 있을까’하는 탄성을 자아냈다는 것이다. 물론, 동전의 양면 같지만, ‘아내의 유혹’의 ‘막가는’ 설정이 너무 심하다며 이 드라마가 이른바 ‘막장 드라마’라며 비판하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어찌됐던 간에 마치 증기처럼 뿜어내는 에너지 같은 갈등구조, 이 갈등구조가 강력한 중독성을 발휘했기 때문에 사회적 반향을 모은 것이 아닌가 이렇게 풀이된다.

갈등 연기, 사실 쉽지 않지. 따라서 관록 있는 배우들의 열연이 더욱 빛났던 것 같다. 일주일에 5일간 매일 10분 이상씩 눈꺼풀을 뒤집으며 분노하거나 울부짖는 악녀 ‘신애리’ 역의 김서형 씨. 예전부터 성격파 배우로서 명성을 날렸지만 이번에 정말 홈런을 날렸다. 김서형 씨의 신들린 듯한 악녀 연기는 정말 대단했다. 악행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통보받고 나서 부엌으로 가 미친 듯이 비빔밥을 퍼먹는 모습에 많은 시청자들이 깊은 인상을 받았다. 얼마 전 <동아일보>는 이런 신애리의 유형을 인격이나 양심의 영역인 ‘초자아(superego)’ 즉 슈퍼에고에 구멍이 난 캐릭터로 풀이했다. 이런 연기, 아무나 못 한다. 물론 주인공 ‘구은재’역의 장서희 씨 역시, 착한 여성에서 복수의 화신으로, 그러다 다시 착한 여성으로 돌아가는 과정 속에서 조금도 어색함을 남기지 않는 노련함을 선보였다.

두 번째 요소는 ‘속도감’이다. 남편 정교빈한테 버림받고 죽음에까지 내몰린 아내 구은재가 가까스로 다시 살아나 복수한다. 이 과정에서 그 어려운 탱고 춤을 하루 만에 완벽하게 익히는가 하면, 물에 대한 공포심을 역시 하루 만에 싹 지우고 수영의 도사가 된다. 분장 기술도 단 며칠 만에 세계 정상급 수준으로 익힌다. 초인적인 힘으로 뭐든지 전광석화처럼 해낸다고 해서 누리꾼들은 구은재 더하기 하느님 해서 ‘구느님’으로 부르기도 했다. 구은재가 신애리의 음모에 휘말리더라도 그 오해가 그날 방송분에서 모두 풀리는 식이다. 응징도 신속하게 그때그때 다 처리해버린다. 일일 연속극은 긴 호흡으로 가는 게 공식처럼 돼 있었는데, ‘아내의 유혹’만은 거의 미니시리즈 수준의 속도감을 유지하며 새로운 갈등구조를 신속하게 생산해 냈다.

그런데 너무 속도감을 추구하다보니 줄거리가 억지스럽다는 지적도 있었다. 사실 구은재가 결정적인 비밀 얘기를 하는 순간, 꼭 신애리가 옆에서 엿듣는다. 아울러 민소희의 정체, 고모의 출생의 비밀, 시아버지가 은폐한 불륜의 과거, 모두 신애리가 밝혀낸다. 신애리는 그래서 ‘아내의 유혹’ 팬들에게 ‘명탐정’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관련해서 TV칼럼니스트 정덕현 씨는 ‘아내의 유혹’을 즐겨 시청하는 이들이 이 드라마를 통해 ‘게임에서 느끼는 희열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해석했다. 드라마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이입할 대상을 찾아 분신으로 삼은 다음, 그 대상이 어려움을 지속적으로 해쳐나가는 과정을 보며 희로애락을 느낀다는 것이다.

치열한 갈등, 속도감에 이은, 마지막 하나는 바로 ‘복수심’이다. 자기를 죽인 남편, 그 남편을 유혹한 배신자인 친구 그리고 자신을 내쫓은 못된 시어머니. 이들을 망하게 만드는 과정이 ‘아내의 유혹’의 큰 줄기이다. 사실 ‘아내의 유혹’의 시청률이 급상승한 시점도, 구은재가 복수의 화신으로 거듭나, 날마다 정교빈, 신애리를 난관에 봉착하게 만드는, 즉, 악남악녀 커플을 골탕 먹이던 때였다. 그러나 방송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그 복수에 쏟았던 정력이 매우 허망했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또, 아울러 갈등 관계에 있던 사람들이 화해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다. 이 부분을 보며 ‘허탈하다’라고 반응하는 시청자의 목소리도 있다.

경제 위기로 인해 많은 이들이 억압과 불안, 공포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어디 가서 큰소리 한 번 못 친다. 스트레스를 분출하기 보다는 삭히기에 급급하다. 따라서 이 드라마가 분풀이를 대리해준 측면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내의 유혹’은 ‘드라마가 어떻게 하면 흥행하나’를 보여준 하나의 교과서이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아내의 유혹’은, 복수 말고는 따로 돌파구가 없는, 막힌 소통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과제를 우리 사회에 안겨줬다. 오늘 등장인물 사이에 모든 얽힌 악연이 매듭지어지는 걸로 드라마가 대미를 장식하게 된다고 한다. 세상사가 다 이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드라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