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글의 한글날 로고 ⓒ GOOGLE

검찰이 얼마 전 압수수색영장을 통해 수사 대상자들의 몇 년 치 이메일을 통째로 확보해 열람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자 최근 외국 이메일 서비스로 옮겨 가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바로 ‘사이버 망명족’이라 하겠다.

외국 이메일은 안전하다는 것일까. 대표적으로 구글이 그렇다. 물론 구글도 한국에 법인을 따로 두고 있긴 하다. 따라서 국내법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구글코리아의 서비스는 해외 서버에서 이뤄진다. 네티즌이 구글 한글 서비스에 접속해, 검색하고 구글의 메일 서비스인 G메일을 이용하면서 생기는 데이터가 있겠지? 이게 모두 해외 서버에 남는 것이다. 따라서 국내 수사기관이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요구해도 구글코리아 입장에서는 해외 서버에 있다는 이유로 안줘도 그만이다. 또 수사기관이 구글코리아 사무실을 압수수색한다고 해도 건질 수 있는 것이 없다. 한 마디로 사이버 치외법권 지역이라 할 수 있다.

구글에 대한 설명이 더 필요할 것 같다. 구글은 탁월한 검색엔진을 내세워 세계의 국경을 차례차례 허물고 이미 158개 나라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세계 검색 시장의 60% 이상을 장악했다. 월 방문자 숫자는 한국 네이버의 25배인 7억6000만 명에 이른다. 구글은 이런 첨단 서비스를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다. 창업 10년 만에 200억 달러 그러니까 약 26조90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글로벌 기업으로 부상했다.

여기에 반한, 우리나라 포털 사이트는 어떨까. 다음·네이버·네이트 같은 업체가 국내를 대표하는 포털인데, 이 국내 이메일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가입 단계에서 주민등록번호를 통한 실명 확인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구글의 G메일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핫메일 같은 외국 서비스는 주민등록번호를 통한 확인 과정이 없다. 자신이 임의로 정한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있으면 된다. 또 수사기관이 요구하는 대로 협조하는 국내 업체와는 다르게 매우 엄격한 기준으로 이용자의 개인정보와 이메일 내용을 보호하고 있다.

관련해서 얼마 전에 구글이 인터넷 실명제를 거부한 일이 있었다. 자체 동영상사이트인 '유튜브'에 한국인들은 아예 게시물을 올리지 못하도록 했지? 사실 이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구글의 이런 전략이 이율배반적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은 “구글이 지난 2004년 중국 사업을 하면서 중국 정부의 사상 검열에도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구글 차이나에서는 '톈안먼'이나 '티베트' 시위처럼 세계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 사건에 대한 검색이 불가능하다. 우리의 제한적 본인확인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이지만, 구글은 13억 중국 인구가 창출할 수 있는 엄청난 수익을 위해 타협한 것이다. 이렇게 중국 정부를 두려워하는 구글, 한국 정부는 상대적으로 우습게 아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사이버 망명이 활성화되면 이게 국내 인터넷 사업자에게 큰 타격을 미칠 수 있다고 한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얼마 전 내놓은 보고서가 있다. 이걸 보면 주요 나라의 국민들이 가장 많이 접속하는 사이트는 한국을 제외하면 구글 또는 야후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만 네이버가 1위, 다음이 3위, 싸이월드가 7위, 네이트닷컴이 8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인터넷 실명제, 통신비밀보호법,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서 논의되고 있는 규제가 도입될 경우 사이버 망명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런 사이버 망명이 촉발될 경우 검색과 이메일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국내 인터넷 포털 업체가 큰 타격이 입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이버 망명을 막는 것이 아무래도 시급하겠다. 지난해 촛불정국 때에도 잠깐 불거졌다 수그러들었지? 그러다가 구글이 정부의 인터넷 실명제를 거부하는 결정을 내리니까 이걸 계기로 되살아나고 있다. 망명은 정치·종교·민족적 탄압을 피해 외국에 보호를 요청하는 행위를 가리키지? 물론 사이버 망명은 인터넷에서 서버의 국적을 바꾸는 것일 뿐이다. 절망이 깊어 이 나라를 떠나는 이민도 아니고, 포르노나 도박 사이트를 열겠다며 외국으로 달아나는 것과도 다르다. 그러나 어쨌든 자기 나라 인터넷 환경을 못 믿어 떠나겠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표현의 자유 그리고 책임지는 표현, 이 두 가지 가치 사이에서 적절한 해법을 찾기란 어려운 것일까.

인터넷 공간에서의 익명성 문제, 이것을 보는, 사회적 시각이 판이하게 갈린 점도 문제이다. 자유로운 익명의 공간으로 출발한 인터넷 세상에, 법과 제도 같은 ‘원칙’을 적용하려다보니 여기저기서 마찰음이 나는 것이다. 이를테면, 실명제 방침이, 거꾸로 다른 사람의 주민번호를 도용한 가짜 아이디를 양산해 내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더불어 여론 통제라는 비판 논리도 낳았다. 사이버논객 미네르바 구속 문제와 맞물리면서 말이다. 게다가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법당국의 판단에 따라 형사 처벌이 가능한 사이버모욕죄 법안을 여당이 추진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실제 세상에서는 멋대로 국경을 넘을 수 없도록 군대가 보초서고 있지만, 인터넷은 국경 자체가 없다. 그렇다고 인터넷 상의 도를 넘는 낭설 유포와 명예 훼손을 방치하기도 힘들다는 지적이 있다. 결국 인터넷 이용자의 자발적 노력과 정부의 끊임없는 설득과 권고 작업이 선행돼야 하는 것 아니냐, 양자 사이에 신뢰가 회복돼야 하는 것 아니냐 이런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