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르단에 있는 세계문화유산이며 7대불가사의 중 하나인 페트라 ⓒ 이승철

우리는 흔히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말한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어서 이런저런 사연도 많고, 기쁨도 있지만 괴로운 일도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우리네 일상은 어쩌면 복잡함 가운데서도 너무 단순한 것도 사실이다.

그 단순하고 평화로운 일상은 힘든 어려움이나 넘치는 즐거움은 없다. 그렇지만 그 단순함과 평화로움 그 자체가 행복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단순함이 때로는 사람들을 지치게 하기도 하고, 무료함과 허무감에 빠져들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가끔씩 일탈(逸脫)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틀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욕망 말이다. 평상과 전혀 새로운 환경과 사고, 미지의 다른 길을 걸어보고 싶은 욕망은 어쩌면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는 의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일탈의 방법으로 여행보다 좋은 것이 있을까? 그래서 대개의 사람들은 여행을 좋아한다. 요즘 철도역이나 버스터미널을 이용하여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통팔달 잘 뚫린 전국의 도로를 가득 메우며 달리는 승용차들 중에도 일이 아닌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여행이라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쉽게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긴 문밖에 나서면 모두 여행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며칠 씩 그것도 장거리 여행을 하려면 이런저런 제약이 따르게 마련이다. 공항에 나가보면 여행을 떠나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모습이지만 일반 서민들이 항공기를 이용하여 해외여행을 하는 것은 더욱 많은 제약이 따른다.

▲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 시내의 어느 여학교 앞 풍경 ⓒ 이승철

그래서 혹자는 해외여행의 3대 조건으로 건강과 시간, 돈을 꼽는다. 3가지 조건 중에 한 가지만 충족되지 않아도 장거리 해외여행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필자도 2004년 말 30여년을 근무한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한 후 맨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이 바로 장거리 해외여행이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여건과 이유 때문에 미루고 미루다가 2007년 1월 말에야 비로소 장거리 해외여행을 하게 되었다. 물론 그 사이 가까운 중국여행과 2~3일씩의 국내 여행은 수차례 다녀올 수 있었다. 그러나 2주간의 장거리 여행은 몇 번인가 시도 했었지만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난 가을에도 동갑내기 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유럽여행을 추진했었다. 그러나 함께 하기로 한 친구들의 갖가지 사정으로 차일피일 미루어지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물론 여행사를 통하여 우리 부부만 떠날 수도 있었지만 함께 하기를 원하는 친구들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미뤄오던 여행이 전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2개월 전이었다. 우리부부가 속한 공동체에서 여행이 계획된 것이다. 당연히 우리부부도 참여키로 했다. 그러나 하루이틀간의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30여명이 함께 하기로 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10여명이 여행을 포기했다.

그 포기한 사람들 중에 아내도 포함되었다. 이유는 2가지였다. 첫 번째 이유는 건강이었다. 여행지가 아프리카 북단의 이집트에서 중동의 시리아까지인데 비행기를 한번에 14시간이나 타야하는 것도 문제였고, 환경이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여행지가 걱정이 된 것이다.

▲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의 시장풍경 ⓒ 이승철

체력과 환경적응에 약한 아내가 여행 중에 발병이라도 했을 경우가 문제였다. 여행지의 의료수준도 문제였지만 그런 의료시설이나마 이용하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가까운 동남아와 중국을 3~4일씩 여행한 경험은 있지만 빡빡한 강행군을 하게 될 2주간의 장거리 여행은 아무래도 무리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역시 돈이었다. 예기치 않았던 경제사정으로 요즘 우리가계가 1인당 3백여만 원씩 소요되는 여행비는 상당한 부담이 된 것이다. 결국 아내는 여행을 포기하게 되었고 공동체 안에서의 역할 때문에 빠질 수 없었던 나는 여행에 동참하게 됐다.

우리네 인생길에 2주간이라면 매우 짧은 기간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삶이라는 것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어서 그 2주간을 부부가 함께 여행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우리 여행팀 21명 중에서 부부동반은 5쌍에 불과하고 나뿐만 아니라 나머지 10명은 부부 중 어느 한쪽만 떠나게 됐다.

아내를 남겨두고 혼자 떠나는 여행은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미안함 때문이었다. 혼자 떠나는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같은 표정들이었다. 그러나 모두 즐거워야 할 여행길에 그런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미안함도 여행을 하는 동안 점점 엷어져 갔다.

일본 오사카를 거쳐 이집트 항공으로 갈아타고 룩소르까지 가는 길은 정말 힘이 들었다. 14시간의 비행 끝에 룩소르에서 내릴 때는 모두들 파김치처럼 늘어진 모습을 보며 역시 아내가 포기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룩소르에서 덜컹거리는 밤기차를 타고 카이로까지 9시간을 달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 이스라엘의 사해풍경 ⓒ 이승철

그러나 다음 코스부터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 우리나라와는 너무나 다른 자연과 도시풍물, 유적들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우리 일행들, 특히 여성들의 깔깔거리는 모습을 볼 때면 아내와 함께하지 못함이 여간 큰 아쉬움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가끔씩 "권사님 보고 싶고 생각나시죠?" 라고 묻는 일행들 몇 사람의 위로는 오히려 아내에 대한 미안함을 더하게 하였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성지는 말할 것도 없고, 놀라움으로 입을 다물 수 없었던 고대 이집트문명의 현장인 룩소르와 카르낙신전, 요르단의 페트라를 둘러볼 때와 나일강에서의 돛단배타기, 아름다운 이스라엘 갈릴리호수가 더욱 그랬다.

이 지역 여행은 처음이어서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놀라움이고 감동이었다. 그런 곳들을 둘러볼 때면 나보다 더 감동을 잘하는 아내가 얼마나 좋아했을까 하는 아쉬움은 돌아오는 시간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혼자 여행이 꼭 모두 나빴던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여행을 할 때면 간편한 것을 좋아한다. 옷이며 소지품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보고, 듣고, 먹고, 사색하는 것에 치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취향이 다른 아내는 옷도 자주 바꿔 입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음식도 나는 거의 가리는 것이 없다. 이번 여행에서도 다른 사람들은 음식 때문에 상당히 힘들어 하며 가지고 간 고추장이며 김치를 때때로 먹었다. 그러나 나는 그럴 필요가 거의 없었다. 입맛이 까다로운 아내가 함께 갔다면 아내 때문에 상당히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 인천공항 풍경 ⓒ 이승철

이번 여행에서도 평소의 습관대로 현지 쇼핑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내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사해에서 생산하는 특수한 화장품 몇 가지는 구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물론 최소한의 적은 액수였지만) 역시 부인을 동반하지 못하고 혼자 간 나와 취향이 비슷한 다른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당신이 웬일이야? 외국에서 화장품을 다 사오고."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정말 의외라는 듯 아내가 한 말이다. 그러나 아내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렇다고 화장품 선물 몇 개로 미안한 마음을 다 씻을 수는 없었다. 역시 혼자 한 여행에 대한 미안함은 쉽게 지우지 못하고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아내여! 미안하구려, 다음 여행은 꼭 함께 하기로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