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은 어버이날이다. 청춘을 자녀를 위해 바치신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또 할아버지 할머니. 자녀 양육과 생계에 대한 책임이 있었던 때에, 이분들에게 있어 ‘놀이’는 사치였다. 그러나, 이분들, 모든 책임의식을 벗고 여생을 즐길 때가 되자 갈피를 못 잡는다. 뭘 놀아봤어야지. 그러다보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자들은 모였다 하면 장기, 바둑, 여성들은 수다 아니면 고스톱이 전부이다. 뭔가를 새롭게 배우기도 그렇고, 또 격렬하게 하자니 체력이 뒷받침해주지도 않고, 그러다보니 방 안에서 운신의 폭이 넓지 않아도 되는 놀이를 택하는 것 아니겠나.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노년을 새롭게 설계하는 어르신들이 많아지고 있다.

서울 성동구에 있는 70대 장수 축구단의 활약상을 소개한다. 이 축구단은 70대 이상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평균 나이는 74세. 최고령 선수는 82세라고 한다. 여기만 있는 게 아니다. 서울엔 9개, 전국엔 35개의 70대 팀이 생겼다. 단원들 얘기로는 100m를 15초 안에 뛰는 사람도 수두룩하단다.

사고는 없을까. 도리어 성인병·신경통을 모르고 산다고 한다. 이를 위해 필수적인 것은 운동을 거르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도 쉬는 법이 없다고 한다. 게다가 페이스 조절을 위해 일주일 내내 음식을 조절하고 술·담배를 멀리한다고 한다. 게다가 축구는 뛰면서 순간적으로 판단을 해야 하는 운동이라 노인들 두뇌 회전에 좋다고 한다. 그래서 치매 걸릴 확률도 크게 낮아진다고 한다.

할머니들도 마찬가지. 서울 송파구에 70대 할머니로 구성된 댄스팀이 있다고 한다. 이름은 ‘송파구 차밍리더팀’. 요즘은 젊은 가수들이 추는 노바디 춤을 익히는데 한창이라고 한다. 이분들 얘기는 이렇다. “계속 춤을 추니까 몸도 유연해지고, 소화도 잘 되는 것 같다”고. 또 딱히 아픈 데도 없어 병원에도 안 간다고 한다. 강사 얘기도 다르지 않다. “이 분들이 최신 댄스만 골라 배우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효과는 크다. 세대차이도 좁힌다. 춤이 어색하지 않게 비춰지도록 화장과 옷도 곱게 차린다. 그러다보니 자신감이 생기게 되고, 따라서 매사에 긍정적이게 된다고 한다. 그밖에 트로트 부르기, 디카 다루기, 밴드 활동까지 노인들의 다양해지는 여가 활동은 삶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다.

노년층이 급격하게 늘면서 연로한 분들의 취미 생활을 돕는 공간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올 초 서울 낙원동 낙원상가 4층 허리우드 극장에 노인 전용 영화관이 생겼다. 300석 규모이고, 57세 이상은 회당 관람료가 2000 원이라고 한다. 영화는 하루 3회 상영한다. 벤허·자유부인 같은 흘러간 명화부터 최신 영화까지 상영한다고 한다. 서울시가 매달 한 번 세종문화회관 같은 산하 6개 예술단의 우수 공연 리허설을 어르신을 위해 공개한다. 뮤지컬·음악회·무용극·전통 공연 같은 다채로운 공연이 준비돼 있다. 또한 서울 관수동 국일관 2층에 있는 한 카페 이야기도 안 할 수 없다. 이곳은 55세 이상만 입장할 수 있는 라이브 카페라고 한다. 원로 가수 박건·한명숙·남상규·김하정 씨 같은 분이 출연해 노인들 사이에선 명소로 떠오른 곳이다. 점점 손님이 느는 걸로 봐서는 앞으로 이런 공간이 더욱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아쉬운 점은, 여생을 즐기려는 노인들 대다수가 노후 준비를 못했다는 점 아니겠나. 65세 이상 노인의 72%가 노후 준비를 전혀 하지 못했다는 통계가 있었다. 그러나 탓할 수만은 없다. 20~40대엔 일에 치이고, 돈도 벌어야 하고, 아이도 키워야 한다. 그러다 한숨 돌릴 만하면 일할 수 있는데 할 일이 없어지게 된다. 태평양 건너 이야기지만, 미국 버클리 대학 론 리 교수는 이렇게 묻는다. “우리에게 정작 여가가 필요할 때, 그러니까 지금보다 젊었을 때 좀 더 많은 여가를 즐기고, 나이 들면 여가시간이 줄어들도록 인생 스케줄을 다시 짜는 게 어떻겠는가?”라고. 꿈같은 이야기이다. 결국 젊어서 대비하지 못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지금의 기성세대 그러니까 노인 세대의 자녀 뻘되는 이들이 준비를 해줘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자기 자녀를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떠맡기는 문화부터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최근 국내 실버업체가 노인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열에 여섯은 ‘통크족(Two Only, No Kids)’을 희망했다고 한다. 통크족은 손자·손녀를 돌보는 데 시간을 빼앗기는 전통적인 역할을 거부한다. 자신들만의 인생을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도 돈 있고 건강한 ‘노인 신인류’가 등장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평생을 자녀를 위해 살아온 분들인데, 그들에게 “여생마저 (자녀인) 나를 위해 살라”고 강요하는 것은 너무 심하다. 사실 자녀 앞에서 ‘네 아들, 네 딸 못 봐줘’ 이럴 부모 많지 않다. 알아서 부모들의 여생을 위해 챙겨드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 물적 투자 또 시간적 배려도 잊지 말아야 한다. 노인들이 할 일을 찾고 뭔가에 몰입할 때, 치매 같은 노환 걱정, 고부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러면 가정에 활력이 또 평화가 찾아오게 된다. 오늘 어버이날을 맞아 카네이션 하나로 때우기보다, 거시적인 고민, 근본적인 배려의 방법을 찾아봤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