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유도원도를 그린 조선 최고의 궁중화원 안견의 그림 벽안도. 400년전 사라진 후 60년전 오원 장승업의 서책을 통해 그 존재가 알려졌다고 하는 벽안도가 화제다. ⓒ 쌈지 아이비젼영상사업단

최근 선임된 이인규 신임 문화재위원장이 이런 말을 했다. "문화재는 일본에서 만들어낸 말이다. 말 그대로 재산의 개념이 강하다. 다른 나라는 '컬처럴 헤리티지(cultural heritage)'라고 부른다. 이걸 풀이하면 ‘문화유산’이다. 우리도 이젠 문화유산으로 써야 한다"고 언급했다. ‘문화재’라는 말도 일제의 잔재였다는 것이다.

일본 이야기도 나오고 문화유산 이야기도 나와서 그런데. 안견(安堅)의 작품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가 오는 9월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된다는 소식을 주목해보자. 몽유도원도는 안견이 1447년 4월 세종 아들인 안평대군에게서 꿈에서 본 도원 이야기를 듣고 사흘 만에 그린 작품이다. 조선 전기에 나온 회화 가운데 그야말로 금자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우리 문화유산을 우리나라에서 전시하는데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이유가 있다. 몽유도원도가 지금 일본에 있다. 일본에서 건너와 전시하는 것이다. 끝나면 다시 일본에 가야 한다.

어찌 된 일일까. 1453년에 계유정란이 있었다.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했던 때의 일이지? 이때 이 몽유도원도가 사라졌다. 불에 타 없어졌나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1893년 일본 가고시마에서 발견됐다. 그 뒤로 오늘날까지 일본에 있다. 당연히 돌려받아야 할 텐데, 그건 어디까지나 빼앗긴 사람의 입장에서 하는 이야기이다. 지금 나라밖으로 반출된 우리 문화유산이 7만6000여점에 달한다고 한다. 예를 더 들어볼까. 둔황(敦煌)에 있던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심경 이것들이 모두 파리 국립도서관에 있다. 언제 빠져나갔느냐. 임진왜란과 병인양요 같은 전란기, 일제강점기 그리고 한국전쟁 같은 사회적 혼란기에 유출된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국보급 또는 보물급이 됐을 것들이다.

사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이나 런던의 대영박물관의 명성도 실은 식민지 확장에 열을 올렸던 제국주의 시대에 약탈해온 것들이다. 이집트나 그리스, 이탈리아, 서남아시아 지역에서 약탈해 온 전리품들을 보관하고 있고 또 전시하고 있다. 문화유산을 빼앗긴 나라들, 가만히 있겠나. 강탈해 간 나라를 상대로 빼앗긴 유물을 되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뜻을 이룬 경우는 많지 않다. 우리가 바로 이 강탈당한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가운데 아주 흥미로운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2월 말이었지? 파리 경매장에서 있었던,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로랑의 소장품 경매 때 청나라시대 토끼와 쥐머리 청동 동상이 경매품으로 나왔다. 청나라 황제의 여름별장인 위안밍위안에 있던 12지신상 가운데 하나이다. 엄청난 가치가 있는 것이지.

이건 또 어떻게 이브 생로랑 손에 들어갔을까. 1860년 중국을 침략한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반출한 것이다. 그러다 복잡한 경로를 거쳐서 이브 생로랑 손에 들어간 것인데. 이게 경매에 나오니까 중국 정부는 경매장 쪽과 프랑스 정부에다가 경매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거절당했겠지? 그러자 한 중국인 수집상이 머리를 썼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불러서 낙찰 받은 것이다. 그런데 대금을 여태껏 지급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왜 지급 안 하느냐. “아니, 장물을 파는 도둑한테 줄 돈이 어디 있나” 이렇게 나오고 있는 것이다. 배짱 좋은 수집상이지?

우리에겐 외규장각에 있던 도서를 반환 받는 문제가 남아있다. 우리나라도 1991년에 외규장각 도서를 돌려달라고 프랑스에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하지만 거절당했다. 거절 당했으면 한층 더 끈기 있게 ‘달라’ 이렇게 압박해야 할 텐데 우리 정부는 “안 줘? 알았어!” 이러고 말았다. 하도 답답해하던 한 민간단체가 모금을 해서 “외규장각 도서가 반환되지 않으면 한국인은 잠들지 못 한다”라는 광고를 르몽드지에 게재한 일도 있었다. 여기서 우리 정부가 자극받아야 할 사례가 있다. 이게 뭐냐.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상인 ‘엘긴 마블’, 이걸 지금 영국이 갖고 있다. 그리스는 영국으로부터 되찾기 위해 독립 직후인 1832년부터 180년 동안 끈질긴 투쟁을 해왔다. 아직 돌려주지 않고 있는 상황이니, 지금도 그 투쟁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하겠다.

실효적 소유를 하고 있는 나라가 “주기 싫다”라고 하면 그만인 상황, 참 안타깝다. 국제법 같은 것은 없을까. 문화유산 반환과 관련한 분쟁에서 가장 많이 원용되는 규정은 유네스코가 지난 1970년에 채택한 ‘문화유산의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이다. 하지만 이건 1970년 이후에 불법 반출된 문화유산에만 적용된다. 또 어긴다고 실효적인 제재를 가할 방법도 마땅히 없다. 결국 가진 자의 아량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이런 가운데, 이탈리아 라치오 지방행정재판소의 판결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이 재판소는 2007년 4월 20일에 ‘문화유산을 본래 있던 곳으로부터 이탈시키지 않는 정책’을 이탈리아가 지켜야 할 전통적 정책 원칙이라고 확인했다. 그러면서 이탈리아가 식민지배 시기에 약탈해 온 리비아 문화유산을 그 나라에 돌려줬다.

끈기 있게 ‘달라’고 한다면,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그리스의 노력 하나 더 소개하겠다. 2년 전, 미국 폴 게티 미술관이 기원전 4세기 유물인 황금화관을 원주인인 그리스에게 돌려줬다. 돌려준 배경, 너무나 놀라웠다. 미국이 1993년에 도굴한 다음 가져갔다는 빈틈없는 증거를 그리스 쪽에 제시한 것이다. 열망 그리고 노력. 일단 이것부터 가져보고, 해봐야 할 것 같다. 길이 있을지 어찌 알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