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터컨티넨탈호텔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중앙아시아에 있는 카자흐스탄을 방문해, 대통령 별장을 뜻하는 ‘다차’에서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과 사우나 회동을 했다. 두 사람이 교분이 두터운 것은 알았지만 알몸 회담까지 갔다는 점에 언론은 주목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구소련의 영토 아니었나? 러시아 문화의 잔재가 있는 곳이다. 러시아에서는 고급 사우나가 요인들의 사교장으로 통한다. 사우나 사교에도, 사실, 순서가 있다. 먼저 사우나 부속 식당에서 보드카를 두세 잔 들이킨다. 그 다음에 탕에 들어간다. 온탕에서 나오면 또 냉탕에 들어간다. 몸을 식히기 위해서이다. 왜 식히느냐. 보드카를 또 다시 마셔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음주 하게 되면 신진대사가 활발해져 술이 빨리 취한다. 그런 만큼 알코올도 바로 몸 밖으로 빠져나간다. 그러다보니 술을 또 찾는다. 결국 취하기도 빨리 취하고, 음주량은 음주량대로 늘어난다. 한 사람이 그 독하다는 보드카 서너 병을 마시게 된다고 한다고 한다. 러시아 정치인들은 술 마시지 않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고 하지?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 보리스 옐친은, 그래서 늘 코가 빨간 주당 정치인으로 유명했다. 그러면서도 국민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다.

보리스 옐친의 독특한 버릇이 있다. 취기가 돌면 상대가 남자라도 입언저리에 키스를 한다고 한다. 세 번을 하는데 세 번째에 이르러서는 혀를 가볍게 상대 입 속에 넣는다고 한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하지만 그건 러시아에서 매우 친한 사람에게 정을 표시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정상 중에 옐친과 파트너였던 분이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는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입 속에 옐친의 혀가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사우나 문화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일본도 매우 발달돼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메이지 유신을 기점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잘 아시는 대로 일본이라는 나라는 열도라서 매우 습하다. 그러다보니 뭐든 쉽게 상하고 부패한다. 그래서 메이지 유신 당시 권력층은 ‘일본이 살 길은 잘 씻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목욕을 강조했고, 그러다보니 사우나 문화가 보편화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렇게 목욕 문화가 발달하면서,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 없으나, 출산율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러다보니 식량과 삶의 공간이 부족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일본은 대륙 진출의 야욕을 품게 된다. 그래서 “일본은 목욕탕 때문에 남의 나라를 침략했고 그러다 망했다”는 주장을 펼치는 이들도 있다.

고대 로마 역시 사우나의 왕국이었다. 로마 시내에는 수많은 호화 목욕장이 있었다. 목욕탕이 아니라 목욕장이다. 얼마나 큰지 124,400㎡ 즉 38,000 평 넓이에 2100명이 동시에 목욕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말 그대로 ‘대중목욕탕’이다 보니 이곳에서 정치토론을 벌이는 것은 일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목욕 문화의 발전은 남녀혼탕을 크게 늘이는 식의 변태성을 양산했다. 결국 목욕탕이 타락의 온상이 돼 버린 것이다. 그래서 “로마는 목욕탕 때문에 망했다”는 그 전설적인 멘트도 이때 나오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얼마 전에 이른바 ‘목욕당’ 창당 움직임이 있었다. 국회에서 목욕을 즐기는 여야의원들이 친목도모 차원에서 목욕당을 설립한다고 했다. 그러나 여론의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취지는 나쁘지 않다. 목욕당을 여야 간 목욕탕 물밑대화(?)의 창구로 활용해 정치를 부드럽게 하고 쟁점법안을 놓고 조금이나마 갈등을 줄이자는 뜻이 있었거든.

사실 사납게 싸우던 정치인들이 그 분기를 목욕탕까지 가져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말인데, 국회 출입 초년병 기자들이 놀라 자빠지는 풍경이 있다. 본회의나 상임위원회에서 사생결단을 하며 싸우던 정치인들이, TV나 신문 카메라 기자만 안 보이면, 서로 등 두드리면서 “아까 너무 심했어” “미안해, 원내대표가 보고 있었잖아” 이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는 말이다. 이 정치인들, 그러면서 정답게 어깨동무하고는 국회 사우나로 향한다.

국회 목욕탕은 국회 본청 지하에 체력단련실과 함께 의원 목욕탕이 있다. 그러나 남녀 혼탕이 없는 대한민국에서는 사우나에 가려면 남자 들어가는 문, 여자 들어가는 문이 다르다. 여담인데, 국회 내 목욕탕에 여탕이 생긴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여탕 만들자고 한 때는 16대 국회 때였는데, 그때만 해도 여성 의원들은 16대를 상징해서인지 16명이었다. 그래서 당시 국회사무처는 과연 이 적은 인원을 위해 별도의 시설을 만들어야 하느냐를 두고 고민했다고 한다. 물론 그 고민은 41명으로 여성 의원 수가 크게 늘은 지금도 유효하다. 여성 국회의원들이 국회 목욕탕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남에게 몸 보이기 싫어서일까.

어쨌든 격세지감이다. 여성 정치인이 매우 적었을 때에는 화장실도 변변히 없었기 때문이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얘기 하나 더 해볼까. 3선 개헌안 날치기로 유명한 곳이 있다. 태평로 구 국회의사당, 지금은 서울시 의회청사이다. 이 건물엔 숫제 여성화장실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회의가 길어지면 여성의원들은 용변을 억지로 참아야 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박순천 여사 같은 분은 방광염을 앓았다 하지 않았는가.

하여튼 목욕이 여야의 벽을 허물고 민생을 챙기는 수단이라면, 국회 본회의장을 사우나로 개조해도 반대하지 않을 것 같다. 서로 통할 수 있는 길이 이것뿐이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