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랜드가 행한 모의면접. 사진과 특정 내용은 무관합니다. ⓒ 서울지방노동청 서울종합고용지원센터

‘자유’를 뜻하는 영어의 ‘free’와, ‘근로자’를 뜻하는 독일어의 ‘arbeiter’를 섞어 만든 잡종단어가 있다. 바로 ‘프리터’이다. 정규직을 갖지 못하고 이 일 저 일 하며 되는대로 사는 35세 미만 젊은 층을 일컫는다. 우리보다 풍요로운 일본에서는 산업시대의 역군인 부모세대가 피땀 흘려 장만한 집에 눌러 살면서 슬렁슬렁 번 돈으로 사치스러운 취미활동을 즐기는 게 이들의 생활양식을 일컫기도 한다. 짐작하겠지만 ‘프리터’라는 말은 신조어 만드는 데 천부적 재질을 지닌 일본인들이 지은 말이다.

이 ‘프리터’족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국내의 프리터는 2003년 8월 381만 명이었다가 지난해 8월 478만 명으로 무려 97만 명 급증했다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최근 국내 고용의 특징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냈는데 여기 담긴 것이다. 경기가 부진한 가운데 고용구조가 악화하면서 이 결과가 나온 것 같은데. 특기할 점은 그 규모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취업난, 사실 이게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전 세계적인 현상 아닌가. 더 큰 문제는 이 원인이 경제난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들어서자마자 끊임없이 생산성을 요구받게 되고, 따라서 삶의 질이 크게 악화될 게 뻔 할 취업의 관문을 왜 애써 들어가려 하느냐’ 이런다는 것이다. 취업도 힘들지만 회사에 충성해봤자 돌아오는 건 구조조정 명예퇴직 황혼이혼임을 부모 세대를 통해 본 탓이다. 일본 젊은이 5명 가운데 2명이 월급쟁이가 되는 걸 원치 않으며 5명 중 4명은 자발적으로 직장을 때려치웠다는 일본 후생노동성 통계도 있었다.

이런 가운데 ‘니트’족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머리글자를 딴 신조어 ‘Neet’이다. 1990년, 영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말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없을 ‘무(無)’에, 일 ‘업(業)’자 해서 무업자(無業者)라고 부른다. 실업자는 일할 의지가 있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인 데 비해 무업자는 일할 의욕조차 없는 사람이다. 이건 앞서 언급한 ‘프리터’족보다 더 문제가 있다. ‘프리터’는 그나마 귀찮기 전까지는 일을 하지 않나. 니트는 아예 일할 마음이 없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일종의 풍요병으로 부른다.

정말 남의 나라 얘기 아닌가. 그러나 영국만 남의 나라가 아니다. 미국도 남의 나라이다. 미국에도 니트족같은 이들이 있다. ‘은수저증후군(silver spoon syndrome)’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은수저’는 부잣집에서 은(銀)식기를 쓰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세상 일이 시시해 보이고 스스로 동기 부여가 되지 않아 나이 서른을 넘겨서까지 부모 신세를 지는 이들이다. 권태, 재정적 무책임, 술 마약 섹스 도박에 탐닉하는 중독, 자기중심적 생활 태도, 인간관계의 실패가 이 증후군의 특징이다.

우리도 이걸 상징하는 말이 있다. ‘백수’라고. 사실 백수는 '백수건달(白手乾達)'의 준말로 양반 자제들 가운데 과거를 보지 않거나, 낙방한 뒤 저잣거리를 휘젓고 다니며 무위도식하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백수’는 그리 호강하는 존재들이 아니다. 이제는 ‘백수’가 직장을 잃은 실직자나 미취업 청년들이 자신의 처지를 자조적으로 일컫는 말이 되었다. 이런 가운데 백수이면서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자신만의 생활을 누리는 칩거증후군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을 가리켜 ‘코쿤족’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코쿤’하면 누에고치라는 뜻이지? 집에서 문 걸어 잠그고 게임만하는 이들도 꽤 많다. 이들은 또 ‘디지털 코쿤족’으로도 불리고.

해법은 이것이다. ‘일하는 즐거움’ ‘일하는 보람’ 이것을 키워야 한다는 점이다. 어르신들 이런 얘기 많이 한다. ‘젊은이들이 근성이 없다. 우리는 잿더미 속에서 오늘을 일궜는데’ 이렇게 말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말한다. ‘그때가 차라리 나았다’라고. 왜냐. 그래도 그때 잿더미 속에서 삽을 들면, 그게 바로 ‘기회’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기회가 잘 오지 않는다. 와도 비정규직, 인턴 이런 것이다. 그거라도 붙잡겠다고 들어간들 정규직으로 도약할 수 있는 이른바 ‘신분 상승의 기회’는 매우 작다. 이런 통계가 있지? 상위 10%가 갖고 가는 소득이 나머지 90%와 맞먹고 상위 1% 소득이 전체의 20% 이상을 차지한다고 말이다. 그 10%, 그 1%에 들려고 경쟁하다가 낙오된 사람들, 이들에게 패자부활의 기회를 부여할 수 있는 사회적 해법, 기회의 균형성, 이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