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명’ 즉 ‘이름 바꾸기’ 열풍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요즘 이름 바꾸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 개명(改名) 신청 사례가 14만 건을 돌파했고, 허가 건수도 13만 건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과거에는 자신의 이름이 ‘고칠 수 없는 운명’같은 존재로 인식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엔 그런 의식이 희박해지고 스스로의 정체성 및 자존심에 대해 관심 갖는 이들이 크게 늘면서 개명 신청을 하는 이들이 크게 늘고 있는 게 아닌가 풀이 된다.

사실 요즘은 개명이 참 쉽다. 행정 시스템이 전산화됐기 때문에 바꾸는 과정이 과거보다는 크게 간소화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름을 바꿔주는 곳, 바로 법원이, 이름 때문에 고통을 겪는 분들에게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또 인격권에 침해가 없도록 배려해주는 분위기가 성숙해 가고 있다.

우리 주변에는 이름 때문에 고민하는 분들이 꽤 많다. 최근에 법원에 신청서를 낸 분들이다. 유치장, 유령, 마진가, 어흥, 최고다, 김칫국, 강아지, 고양이, 손가락, 박비듬, 안녕, 여성인데 강남제비, 방귀녀, 피바다, 김팔랑, 문문문, 이통커, 변태랑, 지애미, 엄어나, 백김치, 경운기, 이맹똥, 방극봉 이런 이름이 있었다고 한다.

많은 분들은 당사자가 아니면, “이름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으니까 나이 들면 초연해지겠지”라며 짐작한다. 하지만 해당되는 분들, 성인이 돼도 여전히 우울증에 시달리고 심하면, 대인기피증까지 겪는 일이 많다고 한다.

통상 부모님이 자녀의 이름을 지을 텐데 왜 이렇게 지을까. 의도적으로 자녀를 골탕 먹이려는 의도로 이름을 짓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실제 자녀의 이름을 특이하게 지은 부모들 얘기를 들어보면 이렇다. 이름을 지을 때 항렬에 따른 돌림자를 사용하게 되면 선택할 수 있는 건 한 글자뿐이란 것이다．

이 한 글자마저도 친척 중에 같은 이름이 없는지와, 성명학에 따른 획수를 고려하다 보면, 그나마 고를 수 있는 폭이 극히 좁다는 것이다．결국 고심 끝에, 읽기 힘든 독특한 한자를 찾거나, 성과 합쳐졌을 때의 발음 이런걸 미처 살피지 못하고 정하다가, 나중에 자기를 욕하며 이름 고치는 자녀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름 때문에 운명이 좌지우지된다고 믿는 것이다. 실제로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다음, 이런 이야기가 떠돌았다. “박정희. 이 석 자의 한자 이름을 잘게 쪼개서 해석해보면 ‘집권 18년 만에 자신의 부하로부터 변을 당한다’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이런 소문이었다. 그야말로 ‘믿거나 말거나’이다.

이렇게 이름과 운명이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고 믿는 것. 이걸 학문적으로 ‘성명학’으로 표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름에 대한 애착이 유독 심한 편이다. 문중마다 항렬이 있고, 또 음양오행의 법칙을 따지는 풍습까지 있다. 이건 서양에서 찾기 힘든 관행이다.

요즘은 젊은 부부들이 한글 이름을 많이 쓰고 있지? 이것도 문제이다. 초롱이, 슬기, 새봄이, 아람이, 겨울이. 어떤가. 예쁘지? 이것도 어렸을 때나 그렇다. 나중에 어디 직장에 들어가서 부장 국장이 돼 보라. 당사자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 실제로 어떤 분은 ‘똘똘’이라는 이름으로 살다가 성인이 돼서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그래서 한글 이름에서 한자로 바꾸겠다며 신청하는 비율이 100건당 2~3건에 이른다고 한다.

중장년층들도 이름을 바꾸던데. 이름이 흉해서라기보다는 운수 때문에 그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개명을 신청하는 중년층은 한 달 평균 1000여 명으로 전체 개명 신청자들의 70%에 이른다고 한다. 특히 경기가 매우 위축되는 상황에서 재물운 좀 얻으려고 이름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부 운세 전문가들 얘기는 “사주팔자는 정해졌는데 이름 바꾼다고 달라질 게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재물운 타려고 이름 바꾸는 분들 중에 이 말에 주목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자, 그런데 이미 살만큼 살았고 고쳐봐야 번거롭기만 할 텐데 굳이 이름을 바꾸는 노인 분들도 꽤 있다고 한다. 최근에 '대말조'라는 성과 이름을 가진 60대 여성분이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또 이보다 더 앞서서는 '황천길'이라는 성과 이름을 지닌 60대 남성이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결국 바꾸는 이름은 본인이 결정하게 될 텐데, 어떤 이름을 선호할까. 2008년 통계를 보면, 열 살 미만 또 10대의 경우 1위는 민서, 2위가 지원이었다고 한다. 20대는 민서와 서연, 30대는 지원과 서영, 40대는 지연과 지원이었다고 한다. 50대는 수연과 민정, 60대는 수연과 현정이었다고 한다. 보면 다 여성 이름이지? 그렇다. 개명 신청자의 70%가 여성이라고 한다. 한편 70대는 정숙이, 은정이, 금순이, 성희였다고 하고, 80대는 모두 다 달랐는데, 여전히 춘자, 복순이, 무상이같은 좀 고풍스런 이름을 택하는 분들이 있었다고 한다. 또 90대의 경우는 엽분이, 청자, 점순이, 창규 이런 이름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름을 바꿨다가 다시 ‘원상태’로 돌려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 번 바꾼 거 두 번 세 번 못 바꾸랴 하시는 분들이다. ‘원상태’를 원하는 이들의 이유는 이렇다. 고심 끝에 개명을 했지만 주위 사람들이 정작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요”라면서 또 다시 개명 신청서를 들고 오면, 이런 분들에게 법원은 “장난하세요?”라며 싸늘한 대꾸를 한다고 한다. 개명이 쉬워졌다고 막무가내로 이름을 바꾸려는 태도는 지양해야하는 것이다. 그래도 개명 또 하겠다고 한들 소용이 없다. 법원은 개명심사에 있어 신용불량자나 상습적 개명 신청자들은 기각처리 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