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척간두에 선, 아니, 그 백척간두에 핀 꽃 앞에 선 ‘한국영화’. 칸 영화제에서 ‘박쥐’의 박찬욱 감독이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상은, 굳이 말하자면 대상 금상 다음 은상 쯤 되는 상이다. 그런데 박찬욱 감독의 심사위원상 수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4년 '올드보이'로 칸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고 이번에 두 번째로 칸의 초청을 받아 두 차례 모두 본상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백척간두라는 표현을 썼는데 한국영화, 얼마 전까지 위기설이 팽배했다. 투자 자본이 떠나고 제작 편수가 격감했다. 일각에서는 ‘내년에도 정상화되지 않으면 영화산업이 붕괴될 우려가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왜 영화에 불황이 올까. 경기침체만이 원인일까. 이것도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관람객들이 영화관에 가지 않더라도 영상을 즐길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늘어났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이른바 신종 미디어의 등장이 원인이란 것이다. 집에 DVD, 큰 화면 그리고 오디오 시살을 갖추면 극장 관람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나와서 보는 게 ‘맛’ 아니냐고 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여유가 있는 관객층은 훨씬 생동감 있는 뮤지컬 쪽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고 한다.

한국 영화의 침체 문제를 일각에서는 멀티플렉스 탓으로 돌린다. 멀티플렉스는 한 시간 한 지점에서 여러 영화를 볼 수 있는 복합상영관을 말한다. 상영불과 10년 만에 멀티플렉스는 스크린을 2,000개까지 늘렸다. 전체의 95%가 넘는다. 5대 메이저인 CGV, 메가박스, 롯데, 프리머스, 씨너스가 멀티플렉스 스크린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관객점유율 역시 비슷하다. 그런데 이 멀티플렉스가 전체 영화의 60% 이상을 직접 배급까지 하고 있다. 욕먹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때문에 멀티플렉스의 핵심적인 문제점은 독과점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독과점이 되는 영화만 집중적으로 선택하는 상영의 왜곡을 낳았고, 영화계 수익구조의 악화를 가져왔으며, 다양성을 해쳤다는 것이다. 상영의 왜곡, 쉽게 얘기해 이런 이야기이다. ‘돈 되는 영화’만 상영하는 것이다. 때문에 실험 영화, 비주류 영화는 설 자리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올해 들어 살짝 회복세에 접어들고 있는 모양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자료를 보면, 4월 한국 영화 관객 수는 총 366만 1040명으로 지난달인 2009년 3월 291만 8624명 보다 25.4% 올랐다고 한다. 지난해 같은 달인 2008년 4월에 비해서는 무려 53.5% 급증한 것이라고 한다. 이유는 무엇일까. 흥행영화와 다양한 기대작이 나온 것이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경제가 어려울 때 서민들은 영화 관람의 빈도가 오히려 높인다. 이점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적은 돈으로 큰 즐거움을 찾는 수단으로 영화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근 2~3년 동안 한국영화가 극심한 침체기를 맞은 것도 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너무 바닥이니 오를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한국영화, 바닥을 치고 도약하기 위해서는 새 판짜기가 시급하다. 거품을 걷어 내고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역량을 모아야 한다. 식상한 소재, 구태의연한 제작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진짜 위기가 온다는 지적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국민의 애국심에 기대는 마케팅에는 한계가 있다. 비관도, 낙관도 할 수 없는 지금이 새판 짜기에 적당한 때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칸 영화제는 우리의 현재를 보여주는 거울이 될 수 있다.

임권택 감독 얘기부터 해볼까. 임권택 감독은 박찬욱 감독보다 앞서 수 년 전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런 말을 했다. "공동 수상자였던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이 사진을 찍으며 나에게 뭐라 했는데, 나는 도통영어라고는 한마디로 모르는 사람이라 뭐라 말하는 지 못 알아들었다. 아마 축하한다는 말이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영어 모른다는 점’에 주목하자. 사실 영화제는 장사와 분명 다르다. 이게 무슨 얘기냐. 영화 계약하는 사람이 영어를 모르면 총 없이 전쟁에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겠지? 그러나 국제 영화제는 다양한 문화를 한자리에 모아놓고 그 풍요로움을 함께 나누는 자리이다. 따라서 영어를 모르는, 그러니까 ‘한국만 아는’ 임권택 감독의 한계가 하나의 빛나는 가치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박찬욱 감독의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문화 평론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읽어봤다. 임권택 감독의 장점과 판이하게 다른 박찬욱 감독의 장점이 있다. 평론가들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 보이는 '원죄와 구원'이라는 서구적 주제를 꼽는다. 여기에 화려한 이미지가 더해지다 보니 빛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칸과 같은 영화제는 인간 내면의 극단적이고 심층적인 부분을 파고드는 영화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어필한다는 것이다. 독창적이며 창의적인 작가주의 영화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는 빛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재미없다’는 비평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영화로서는 일단 각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정리된다. 세계 영화제에서의 한국영화의 경쟁력은 크게 두 가지로 ‘한국만의 정체성’ ‘가공할 실험성’을 들 수 있다고. 그래서 드는 생각이다. 박찬욱 감독이 만약 무명이었더라면 ‘박쥐’같은 실험영화가 현재의 한국영화 시스템에서 과연 빛을 볼 수 있었을까. 영화는 실험성을 창달하는 가운데서 발전했다. 오로지 대중성만을 추구할 때 한국영화에는 미래가 없을 것이란 얘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