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약물’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야구 선수였던 마해영 씨가 14년 프로 선수시절을 회고한 책을 냈다. 그런데 이 책에 "현역 시절 복용이 엄격히 금지된 스테로이드를 상습적으로 복용하는 선수들을 제법 목격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외국 용병뿐 아니라 일부 국내 선수도 성적에 대한 중압감으로 금지약물에 손을 댔다고 지적한 것이다. 책 내용이 알려지면서 프로야구계는 발칵 뒤집혔다. 선수들 사이에 약물 복용이 만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파문이 커지자 마해영 씨는 한 발 물러났다.

그러나 약물 파동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우리 프로야구에 도핑검사가 도입되기 이전의 문제를 소급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사실관계는 확인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한한 연관된 모든 이들은 거의 ‘톤다운’한 상태이다. KBO는 조용히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했다. 현장의 감독들도 조심스럽게 약물과 관련해 조심스럽게 “더 이상 과거를 얘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투로 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늦기 전에 터뜨릴 건 터뜨리고 바꿀 건 바꿔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는 주장도 나온다.

약물 복용을 하면 효험이 있을까. 이 약물의 정체부터 살펴보자. 대체로 흥분제 그리고 호르몬제를 말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약물을 복용하고 난 다음, 도핑 테스트 때 적발되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세계 반(反)도핑기구가 한 해 2400회나 실시하거든. 이 촘촘한 검사의 그물을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얘기이다. 그런데도 왜 선수들은 도핑의 유혹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걸까. 효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물 복용하는 사라들, 주로 축구 같이 팀 플레이하는 선수들 보다는 육상과 수영 같은 개인 종목에 집중된다.

여러분 기억하실 거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벤 존슨을 말이다. 벤 존슨은 육상 100m 경기에서 9초79의 세계기록을 세우면서 9초92를 기록한 미국의 칼 루이스를 제치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자메이카의 가난한 농사일 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벤 존슨은, 캐나다 국적을 얻어 올림픽에 출전했는데. 대한민국에서 세계 정상에 올라선 것이다. 그러나 그 영광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경기가 있고 불과 사흘 뒤 금지약물인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사실이 드러나, 국제올림픽위원회로부터 금메달을 박탈당하고 2년간 출전정지 처분을 받았기 때문이다.

도핑의 역사도 짚어보자. 올림픽 출전 선수들의 약물 복용 사실이 드러난 것은 1952년 오슬로 동계올림픽이 처음이었다.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들의 탈의실에서 약명을 알 수 없는 빈 앰플과 주사기가 발견된 것이 적발을 가능하게 했던 단서가 됐다. 그러다가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는 덴마크의 사이클 선수가 약물 복용 부작용으로 경기 도중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약물 문제에 대한 세계적인 주의 환기가 이때부터 이뤄진 것이다. 1970년대 IOC의 금지 약물 종류가 4가지 성분 30여종이었으나, 1988년에는 300여종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단속의 범위와 강도가 워낙 넓어지고 커지는데 반해, 선수들의 약물 복용 사례는 좀체 줄 지 않았다. 미국의 여자 육상 선수인 매리언 존스 이야기는 약물 복용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나온다. 그녀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이전에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는 의혹을 받아왔으나 부인해왔다. 그러다 미국 법원과 IOC로부터 3년 동안 조사를 받아온 끝에 약물 복용 사실을 드디어 시인했다. 정말 한 편의 범죄드라마 같지 않나? IOC는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집행위원회에서 존스의 금메달 3개와 동메달 2개를 박탈하고 기록을 삭제시켰다.

결국 ‘1등病’이 문제였다. 2등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치열한 경쟁에도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미국 시카고의 의사 밥 골드먼이란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미국 육상선수 198명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도핑을 해서 5년간 우승한다. 세계반도핑기구가 하는 검사에 걸리지 않는다. 대신 약물 후유증으로 죽는다면 어쩌겠느냐”고 물었더니 절반 이상이 “그래도 약 먹겠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대단하다.

야구 얘기를 하다가 멀리 왔다. 마해영 전 선수가 외국인 용병이 그런다고 주장했는데 미국 메이저리그는 어떨까. 7차례나 사이영상을 받은 클레멘스와 홈런왕 배리 본즈 같은 약물 복용 선수들의 명단이 공개된 바 있었다. 근력과 지구력을 강화시켜야 하는 운동선수들에게 약물은 떨치기 힘든 유혹이라고 한다. 그러나 약물 복용은 선수 생명을 위협하게 되고, 발각되면 엄청난 불명예를 안게 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스포츠에서 진정한 1등은 ‘정당한 1등’이지 ‘부당한 1등’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