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출몰하는 신조어, 잘 모르는 분도 ‘지못미’ 정도는 아실 거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말의 약자이다. 정확하게 ‘지못미’라는 말을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지난 금요일 한명숙 전 총리가 5월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했던 말이 또 한 번 ‘지못미’ 열풍에 도화선이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일컬어 ‘인터넷 대통령’으로도 불렀는데, 지금도 인터넷에서는 ‘노무현 지못미’ 검색어가 인터넷 상에서 상위 순위에 올라 있다.

어원, 어디서부터 비롯됐을까. 2007년으로 알려져 있다. 이게 컴퓨터 게임 애호가들 사이에서 나온 용어라고 한다. 월드 오브 워 크래프트라는 게임이 있는데, 여기 한 사용자가 난처한 상황에 이르게 되니까, 디지털 카메라 전문 사이트인 DC인사이드라는 사이트의 회원들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이랬다고 한다. 그러면서 파생됐다는 것이다. (이 ‘지못미’는 DC인사이드가 꼽은 2007년 최고의 인기 인터넷 용어 베스트 10에 들어갔다. 1등은 ‘아주 좋다’라는 의미에 ‘우왕굿’ 2등은 ‘최고다, 대단하다’를 뜻하는 ‘킹왕짱’이었다. 3위는 요즘 또 크게 회자되고 있는 단어지? ‘듣도 보도 못한 잡놈’을 뜻하는 ‘듣보잡’이었다.) ‘지못미’는 사회적으로 동정 받을 만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생겨나면 인터넷에서 사용 빈도가 부쩍 늘어난다. 숭례문 화재, 대거 낙선자를 양산한 총선 때 그리고 유명 연예인이 억울한 사연으로 숨을 거두는 일이 발생했을 때 나온다.

이런 줄임말 형태의 인터넷 용어는 ‘지못미’ ‘듣보잡’ 뿐이 아니다. ‘솔까말’이 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하자면’은 뜻을 담고 있다. ‘흠좀무’는 ‘흠, 좀 무서운데’라는 말이고. ‘엄친아’는 ‘유독 나보다 잘난, 엄마 친구의 아들’을 뜻한다. 결국 이런 신조어에는 10대와 20대 젊은이들의 애환과 일상이 녹아 있다. 평소에 자주 쓰는 말, 이 말을 굳이 다 풀어서 이야기하지 않고, 축약해서 표현하는 것이다. 길고 늘어지는 것을 싫어하고 짧고 빠른 것을 좋아하는 세태의 단면이 반영된 것이다. 또 그네들끼리만 소통할 수 있는 언어, 즉 은어를 선호하는 것은 또래 집단의 공동체 의식이 녹아있다고 봐야 한다.

혹시 ‘중도’라는 말 아시나? ‘중도’하면, 보수와 진보 사이를 뜻하는 ‘중도’가 있을 수 있겠고, 춘천에 있는 섬, ‘중도’를 떠올리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중앙도서관의 약자로 쓴다. 야간자율학습은 ‘야자’, 마을버스는 ‘마뻐’, 여자 친구는 ‘여친’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 아셔야 할 필수 암기 신조어도 있다. ‘반반무’이다. 이건 “양념 반 프라이드 반 무 많이”이다. 언어학자 소쉬르가 이런 말을 했다. 기표와 기의는 자의적으로 결합한다고 했다. 누가 막는다고 막아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말 파괴에 관해 걱정하는 시각도 많다. 요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일컬어 ‘노간지’라 하지 않던가. 간지라는 말은 일본어 'かんじ(感じ)'에서 온 말 아닌가? '느낌, 감각'이라는 뜻인데 '살다, 나다'를 붙여 우리 젊은이들은 '멋있다, 태깔 난다'는 뜻으로 쓴다. 심윤경 씨가 쓴 장편소설 <이현의 연애>같은 문학작품에도 ‘간지’가 등장한다. '내가 정말 내 생각만 하는 놈이면 간지 살게 (자동차를)이인승으로 뽑았지 총 맞았다고 사인승 하냐?'라는 대목이 있다. 어쨌든 일본어를 분별없이 사용하는 것은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비교적 인터넷 문화에 열려있는 것으로 알려진 소설가 이외수 씨도 이 부분을 염려하고 있다. 이외수 씨가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제 책을 잘 보시면 'ㅋㅋㅋ' ‘ㅎㅎㅎ’ 이런 것은 없습니다. 이것은 언어가 아니고 기호라서 때문에 안 썼어요. 자음만 있는 것은 아직 완성된 언어가 아닙니다. 저는 언어가 필요에 의해서 탄생하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역기능이 그 기능이나 능력이 상실될 때 절로 없어진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역기능이 없는 신조어에 대해서는 비교적 열린 자세를 취한다. 이외수 씨가 꼽고 있는 ‘좋아하는 신조어’는 무엇이 있을까. 바로 ‘지못미’이다.

이외수 씨는 그 이유로, “마음이 잘 표현돼있어서”라고 한다. 결국 인간미가 넘쳐난다는 것이다. 상대의 아픔에 대해 공감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사람의 아픔과 함께 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자조하는 것이다. 이것만큼 상대를 위로하는 게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 이외수 씨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지못미’말고 또 좋은 신조어로 ‘샤방샤방’이란 말을 꼽았다. 이건 노래 제목이기도 한데,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 예쁘거나 빛이 나는 것을 뜻하며, 반짝반짝하고 예쁘다”라는 뜻이다. 날 선 언어들이 오가는 가운데에서도 상대를 격려하고 칭찬하는 언어들, 이런 것이라면, 어학적 완성도는 떨어져도 매우 의미 있는 신조어라는 이야기이다.

다시 노무현 전 대통령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노무현 지못미’ 현상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대중이 친숙하게 여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없는 이들을 행복하게 해줬다’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권위를 버리고 낮은 이들의 아픔을 권좌에 올라도 잊지 않아준 점, 이것만으로도 ‘지못미’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의 정서도 마찬가지이다. 나이 많은 자랑, 힘 자랑, 돈 자랑 이런 건 독약이다. 권위의식 버리고 비판과 조롱도 견뎌내야 한다. 계급장 떼고 격의 없이 대화해야 하는 것이다. ‘있는’ 척하면 그 자리에서 ‘오~ 흠좀무인데, 하지만 넌 듣보잡이야’ 이렇게 멸시를 당한다. 흉금 없는 소통을 위해서는 빈 몸으로 목욕탕에 들어가듯 격의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바로 이랬던 것 같다. 그러니 ‘지못미’라는 꽃가마 위에 올라 있는 것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