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정치권은 정치력을 상실하고 있다. 가장 정치력이 살아 있어야 할 국회는 이미 정치력의 상실은 물론, 고사 직전에 이르고 있다. 그 결과 그처럼 오랫동안 갖은 방법을 동원하며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미디어법을 협상했지만, 결렬되고 마침내 7월 22일 여당이 의장석을 점거한 가운데 한나라당 소속 이윤성 국회부의장은 이날 오후 본회의를 개의하면서 신문법. 방송법. IPTV법 등 `미디어 관련 3법'을 직권상정 했으며, 민주당 의원들의 격렬한 반대 속에 표결 처리에 붙여 각각 통과시켰다.

본회의에 앞서 이날 오후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극한 대치를 벌이던 본회의장 앞 중앙홀에서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미디어법 처리를 위해 본회의장에 입장하기 위해 보좌진들과 함께 민주당 측이 바리케이드를 친 출입문 쪽으로 몰려들면서 양측이 뒤엉켜 난투극을 벌였다. 여당 단독으로 미디어법이 통과된 후 야권은 '직권상정 결사반대', '대리투표 원천무효' 등을 외치는 등 강력 반발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야3당은 의원직 사퇴까지 검토하고 있어 향후 정국에 파장이 예상된다.

어떻게 한국사회가 이처럼 정치적으로 후진(後進)하고만 있는가? 정치적으로 큰 그릇들이 이 사회는 없는가? 비정규직 법 등 처리할 민생법안이 산적해 있는데 어느 때까지 무조건 밀어 붙이기와 무조건 반대하기 싸움으로만 세월들을 낭비할 것인가? 세계 앞에 너무나 부끄럽다. 정치는 무엇인가? 정치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가는 작업’이다. 인간 사회는 자연적으로 다양한 의견과 요구가 분출되기 마련이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사회는 끝없는 의견다툼이나 자기 이기주의가 강하게 표출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정치가 필요한 것이다.

정치는 법 테두리 안에서 그 다양한 의견과 각각의 요구를 조율하고 타협하면서 공동체 사회를 이루어 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상호간에 신뢰이다. 공자가 좀 더 구체적으로 정치의 본질을 언급한 대목도 있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정치에 관하여 묻자, 공자는 정치는 세 가지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 세 가지 기능은 ‘첫째로 백성들이 경제적으로 잘살게끔 하고, 둘째로 백성들이 전쟁의 참화를 당하지 않게끔 군비를 튼튼히 하고, 셋째로 백성들이 믿게끔 하는 것’이라고 상세히 지적했다.

그 세 가지 기능 중에서 우선 순서를 묻는 자공에게 공자는 ‘믿음과 경제와 국방’의 순서라고 밝혀주었다. 이것은 정치의 기능을 묻는 중요한 대목이다. 정치의 요체는 믿음이며, 그것이 바로 나라의 근본 중의 근본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현 정권과 다수당인 여당의 모습은 어떠한가?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정병호 교수는 평가하기를 “이명박 정권은 공자의 가르침과 정반대로 가고 있다. 첫 단추를 끼울 때부터 ‘강부자, 고소영’ 내각으로 국민의 믿음에 깊은 상처를 냈다. 그 뒤 연이어 광우병 쇠고기 수입, ‘미네르바’ 구속, 용산 철거민 강제진압, 노무현 전 대통령 강압수사 등으로 국민의 신뢰를 산산조각 내기에 이르렀다.”고 했다.

너무나 답답한 정치계의 현실이다. 정치가 고사직전까지 이른 것은 무조건 강행하려고만 하는 여당, 무조건 반대만 하는 야당, 모두의 책임이다. 그러나 더 큰 책임은 집권당이요, 다수당인 여당에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나 여당이 무슨 정책이든지 힘으로 밀어 붙이려는 것은 점점 국민의 신뢰를 잃고 말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여당은 어떠한 정책이든지 충분히 설득하고 공론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뿐 아니라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하여 야당이나 반대하는 단체들을 포용하려는 자세가 절대 필요하다.

아울러 야당도 앞으로 집권하는 때를 대비하여 정책대안을 제시하고 설득함으로 국민들로부터 신망을 챙기도록 힘써야 한다. 해방 이후 우리는 너무나 투사적인 삶의 형식에 익숙해 왔다, 흑 아니면 백에 가담하여 상대를 적대시 하며 투쟁일변도의 삶을 살아왔다. 묵화(墨畵)처럼 흑색과 백색이 어우러질 때 가지가지 깊은 색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학습하지 못했다. 이제 한국사회는 다양한 의견들을 조율하여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훈련을 국회부터 보여주어야 한다. 그 길만이 한국 사회를 한단계 성숙으로 나가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