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이지만 저에게는 심각한 수준의 약점이 있습니다. 거절을 잘 못하는 것입니다. 특히 호의로 베푸는 남의 배려에 대하여 거절을 잘 못합니다. 그것이 분명히 나에게 손해가 될 것임을 잘 알면서도 상대방의 호의가 진정이라고 생각되면 거절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나를 아무 음식이나 가리지 않고 잘 먹어서 좋다고들 합니다. 사실 나도 싫어하는 음식이 있습니다만 대접하는 분이 미안해 할까봐 모든 음식이 다 맛있다고 하면서 먹으니 남들이 그렇게 믿어 버렸습니다. 지금도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식품 첨가제가 들어있는 드링크나 당뇨에 좋지 않다는 당도가 높은 음료를 그냥 받아먹곤 합니다. 음식 뿐 아니라 다른 친절에 대하여도 그렇습니다. 어떤 분의 초대가 감사하여 나만이 아니라 아내까지 데리고 가서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치부를 하는 것 같아 무안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건 사역에서도 그렇습니다. 성도들이나 또는 부교역자들의 사역에 대한 제안도 나쁜 것만 아니면 허락을 하는 경향이 있어서 때론 나의 의지나 비전과 상관없는 사역들이 진행될 때도 있습니다.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 기특하고 창의적인 사고나 건설적인 건의를 묵살함으로 사역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리게 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 나쁜 일만 아니면 거의 다 허락합니다. 한 번은 다음주 설교제목이 주보에 틀리게 게제 되었었는데 지적하고 꾸중하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기가 죽고 의욕을 상실할까봐 그냥 제 설교를 그 제목에 맞게 다시 준비한 적도 있습니다. 이쯤 되면 중증(重症)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쉽게 남을 거절하지 못합니다. 그건 나에게 어떤 요청을 하는 경우도 그렇습니다. 가능하면 다 들어주려고 하니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건강도 무리가 옵니다.

제가 늘 이렇게 일이 많은 것은 사실 노회장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실제로 노회장으로서 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지만 거의가 다 거절하지 못함 때문입니다. 설교를 해 달라, 집회를 해 달라, 원고를 써 달라, 강의를 해 달라는 여러 청탁들을 거절하지 못하고 핑계거리가 없어서 “예”라는 대답을 해 놓곤 잠 못 자면서 준비를 해야 하는 곤욕을 치르기도 합니다. 순전히 들러리를 세우기 위함인 줄 알면서도 내가 꼭 필요하다고 강권하면 거절을 못해서 마음에도 없고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직함을 달고 다닙니다. 그래서 손에 책을 놓지 못하고 두꺼운 메모장을 늘 들고 다닙니다. 나이를 생각하라는 충고도 많이 듣고 이젠 좀 쉬면서 일해야 한다는 당위성도 알고 있지만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호의에 상처를 주는 것 보다는 내가 좀 힘드는 것이 마음이 더 편하니 스스로 힘든 길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병은 남을 너무 잘 믿는 다는 것입니다. 진심이 아닌 호의나 인사치레의 초청, 그리고 진심이 담기지 않은 칭찬도 아무런 저항 없이 그대로 받아드린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너무 좋게만 보는 경향이 있어서 의도를 가진 상대방의 전략에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 그리고 시시 때때로 주시는 지혜로 큰 실수를 하지는 않지만 웃는 낯에 침을 못 뱉으니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고 그렇게 어수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에게 바램이 있습니다. 나를 좀 진심으로 대해 달라는 것입니다. 말할 때도 행동할 때도 가식이나 숨은 의도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진심으로 나를 좀 대해 달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착각하게 만들지 말고 호의인줄 착각하지 않도록, 원하지 않으면서 거절을 못해서 따라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공짜를 좋아하고 대접받기 좋아하는 목사라는 그런 오해를 받지 않도록 진심으로 나를 대해주면 좋겠습니다. 칭찬도 비난도 정도껏만 해 주어서 좌우로 흔들리지 않도록 좀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좋은 목사, 존경받는 목사가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신양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