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기 전, 담임목사로 시무할 때는 예장(통합측) 서울노회 안에 문제가 발생한 교회를 위해 노회수습전권위원회로 많은 활동을 했었다. 이름을 대면 불신자들까지 알만한 대형교회를 비롯하여 중소형교회들, 농촌교회 등 7-8교회의 분쟁들을 수습하고자 힘쓰고는 했었다. 분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한쪽 편으로부터 심한 오해를 받기도 하고, 어느 때는 떼로 몰려와 자기들의 주장을 강요하기도 했다. 혹은 중요한 제직회를 주관하지 못하도록 심한 제지를 당하기도 했다.

타고난 성격이 과격한 행동이나 싸움을 싫어하는 데, 팽팽하게 맞서서 서로 삿대질하고 고함을 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나 가슴이 오그라드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을 때가 많았다. 어느 때는 당장에 수습전권위원장의 자리를 사표를 내고 멀리 피하고 싶은 마음이 일고는 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더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면서 “이 직을 감당할 만한 능력을 달라”고 함으로 고비 때마다 감당할 능력을 주시고 위기 때마다 피할 길을 주시는 것을 생생히 체험하기도 했다.

이제 만66세 은퇴하고 서울로부터 떨어진 덕소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자유스러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끝없이 걸려오던 전화도 거의 줄어들고 오라 가라 하는 곳도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사전 연락도 없이 찾아와 도와달라는 이도 별로 없으니 속된 말로 살맛이 난다. 이제 진정한 휴식을 취하면서 그 동안 하고 싶던 일들도 하고 싶은 여력이 생겨나는 것 같다. 그러나 서울노회 안에 교회들이 그냥 놓아두지 않는다. 소위 대리당회장의 일을 맡기기 시작한 것이다.

대리당회장이란 우리 교단 헌법 제67조 3항에 의하면 “대리당회장은 당회장이 유고할 때 또는 기타 사정이 있을 때 당회장이 위임한 자 또는 당회원이 합의하여 청한 자로 당회장직을 대리할 수 있다. 대리당회장은 결의권이 없다.”고 했고 5항에서는 “대리당회장 및 미조직교회 당회장은 은퇴목사에게도 이를 맡길 수 있다.”고 했다. 5항 조건 때문에 은퇴목사인 내게도 대리당회장을 요청할 수 있게된 것이다.

그러한 관계로 은퇴한지 2년이 흘러가는 동안 5-6교회에서 대리당회장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어느 교회는 담임목사가 안식년 휴가를 다녀오는 관계로 당회를 인도했고, 어느 교회 당회장이 사임하는 과정에서, 어느 교회는 원로목사 추대 과정에서, 어느 교회는 위임목사 청원하는 과정에서 대리당회장의 일을 했다. 최근에는 심한 분규로 위기를 만나고 있는 교회로 인해 수습전권위원회가 대리당회장으로 요청하여 몇 개월 째 일하고 있다.

잠깐 가서 설교를 맡거나 회의를 주관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오히려 대접을 받는 기분이라 돌아올 때는 흐뭇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어느 분이 내게 '대리당회장 달인이십니다.'라고 추켜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분규가 심한 교회는 양쪽을 서너 번씩 만나 봐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사회법정에까지 번진 재판으로 인해서 감정의 골이 점점 깊어만 갈 뿐이다. 앞으로 아무리 주변 분들이 “김 목사님 같은 달인이 이 일을 맡아야지 누가 합니까?”라면서 은근히 추켜세운다 할지라도 분규가 생긴 교회의 대리당회장은 절대 사양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홍익교회 원로목사